메인화면으로
남편 고문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남편 고문하기

김승호 칼럼 "내말이 그말이야" <37>

***남편 고문하기**

임동창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장사익의
찔레꽃이라는 노래를 듣노라면 왜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물방울 떨어지듯 딸랑딸랑 시작하는 반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되어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퍼서 목 놓아 울었다는 대목이 시작되면 가슴이 두근거려,
때마침 들려오는 엷은 북소리 반주는 내 심장 뛰는 소리같이 느껴진다.

찔레꽃 본지도 오래지만 어려서야 꽃보다 찔레순 뜯어먹는 재미에
꽃은 어찌 생겼는지도 어렴풋한데,
잊지도 않은 순이 생각이 나는걸 보면
노래 부르는 이와 반주하는 이의 감정이 내게 스며들었음이 분명하다.

나도 저렇게 악기 다루는 일이나 노래하는 법을 배웠더라면
젊어서 연애 할 때 얼마나 폼이 났을까?
지금도 친구들 모여 있는 자리에서 피아노 반주라도 멋지게 해 보인다면
친구 아내들이 펜클럽이라도 결성해 주지 않을까 하는 요란한 욕심을 가져 본다.

인생이 한결 다감하고 정열적일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 안타까워
아내가 아이들에게 학교 특별 활동으로
바이올린을 가르치겠다고 나섰을 땐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그 결정을 후회하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 좋아서 하는 바이올린도 아닌 것이라서
연습시간마다 짜증이 담긴 바이올린 소리는 머리 속을 긁어 놨다.
바이올린이라는 것이 다른 악기와 달라 숙련된 사람이 연주하면
물 흐르듯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지만 내 아이들이 연습하는 소리는
명주 천 찢는 소리나 칠판에 부러진 분필 긁히는 이상한 소리부터
종이 찌꺼기 붙은 연필 지우개로 공책을 비비는 소름 돋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몇 주 연습을 한 후에 학교에서 연주회가 있다 해서 가 보았더니
고만 고만한 녀석들이 양복을 입고 사십 여명이나 나와 연단에 자리 잡아 앉아 있다.
학교에 몇 명 되지도 않는 동양 아이들이 꽤 많은걸 보면
동양 사람들은 아이들 음악을 가르치는 것이 신분 상승처럼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300여개의 좌석이 들어가는 초등학교 강당에는
시작도 전에 지루해진 녀석들은 벌서부터 퍼져 있고,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할머니 선생님만 정신없이 뛰어 다니고 있다.
나처럼 악몽을 이겨낸 부모들은 미리 자리를 잡고
카메라와 비디오를 돌리는데 벌써부터 정신이 없다.

연주 목록을 보니 Lightly Row 와 모짜르트의 May Song 이라는
그럴듯한 노래 제목이 적혀있다.
그 사이 저런 천방지축 개구쟁이들을 데리고 바이올린을 가르친
할머니 선생이 대단해 보인다.

드디어 연주가 시작 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옆에 친구와 바이올린 보우로
칼싸움을 하던 녀석들이 진짜 연주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래를 들어 보니 Lightly Row 라는 곡은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라 오너라’ 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어렸을 때 배운 동요다.
웃음이 나왔지만 하도 진지해 웃을 수가 없었다.

일분도 안되는 사이에 한 곡을 마친 녀석들은
피아노 반주 선생의 신호에 맞추어 인사만 다섯 번을 받아먹는다.
부모들은 어이없음을 감추려는 듯 미국인 특유에 환호 섞인 박수를 보내준다.
카네기홀의 5분짜리 기립박수가 따로 없다.
박수소리에 기분이 고조된 아이들은 자신들의 명연주에 만족했는지
다음 곡을 연주하기 시작 한다.

그러나 역시 두 번째 곡인 May Song 이라는 것도 모차르트 곡이라는 하지만
‘솔솔 부는 봄바람 쌓인 눈 녹이고…….’라는 어렸을 때 배운
윤석중이 가사를 붙인 ‘봄바람’이라는 노래다.
모짜르트가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교향곡만 작곡한 게 아니다.
이런 곡도 만들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대단한 작곡가다.

하여튼 이 도둑놈들은 두 번째 노래를 연주하고
또 인사를 서너 번씩하며 박수를 받아 먹는다.
이어진 곡은 설명이 필요없다.

그나마 몇 년을 더 배운 아이들이
바하의 ‘두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중 제1악장 중 제 2바이올린’ 이라는
이름도 긴 연주와 비달디의 ‘협주곡 가단조 제 3학장’이라는
다소 법률적인 느낌의 제목이 붙은 노래를 연주해서
어설프게라도 연주회라는 소리를 들으며 막을 내렸다.

해가 두세 번 바뀌어도 여전히 아들 녀석들의 바이올린 소리가
귀에 거슬려 녀석들이 집에서 연습하는 시간을 피해 다녔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음악을 그만 두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건설적인 의견은
여태껏 배운 것이 아까워서 그럴 수 없다고 버티는 아내에게 번번이 거부당했다.

한번은 아이들 두 놈이 할머니 생신날에 양복을 차려 입고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제 3악장’이라는 노래를 연주 했다.
아내는 자랑스러워 기가 살았지만 죽지 못해 끌려온 놈들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억지로 연주하는 모습은 참석한 손님 수준과 맞지도 않았거니와,
끝난 후에 잘했다는 소리는 해도 앙코르라는 소리가 없었던 걸 보면
내심 나처럼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이듬해 할아버지 생신 때는 아내를 부추겨 아이들이 남행열차를 연주하게 했는데
다들 일어서서 환호를 질러가며 앙코르를 외친 걸 봤을 땐,
가르쳐 놓길 잘 했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들에게 연습을 시켜
이젠 제법 바이올린 키는 소리가 듣기 좋다고 생각하는 아내는
내가 아직도 퉁퉁거리고 다니는 게 영 마땅치 않은 표정이다.
요즘은 나에게 은근히 심술이라도 부릴라치면 아이들에게 바이올린 연습을 시킨다.

아내 여러분! 그걸 혹시 아는가?

미운 남편을 고문하기에 가장 좋은 것은
아들 바이올린 키는 소리다.
아들 바이올린 키는 소리보다 더 무서운 고문은
아들 둘이서 바이올린 키는 소리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