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수단으로서 세탁업은 늘 대표자리를 차지해 왔다. 미국환경청(EPA) 2002년판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세탁업소를 약 3만4천여개로 추정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한인 세탁인 총연합회에 확인된 한인 소유 세탁업소는 1만7천개다. 게다가 환경법에 크게 영향을 받는 도심지의 세탁소는 대부분 한인 소유다. 대뉴욕지구 (뉴욕, 뉴저지, 커네티컷)에 약 6천개의 세탁업소가 있는데, 85%에 해당하는 5천개의 세탁소가 한인소유로 확인되었다.
그런데 한인 사회에서는 요즘 세탁업에 대한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지난 30년대에 개발돼 현재도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일명 '퍼크'(Perc. 과염화에틸렌)라는 업소용 세제를 앞으로 쓰지 못하게 하려는 규제가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미주 한인들이 많이 사는 남가주 대기정화국(SCAQM)에서는 퍼크가 공기에 유출돼 대기오염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오는 2020년부터 완전 추방키로 결정하고 지난 1월1일부터 신규업소의 경우 이 세제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SCAQM의 조치가 나온 이후 시카고와 뉴저지, 워싱턴D.C, 뉴욕 등에서도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어 미 전역의 한인 세탁업소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1년간 환경법의 변화추이와 세탁업의 미래에 대해 연구를 한 경험으로 볼 때 지난 15년간 연방정부, 주정부에서 입안되어 시행하고 있는 퍼크세탁에 대한 규제법들은 매우 상세한 규제항목을 담고 있는 반면에 세탁업소를 많이 운영하고 있는 미주 한인에 대한 배려는 거의 전무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현재 EPA에서 세탁업계를 대상으로 발행한 수많은 문건 가운데 오직 두 건만이 한국어로 쓰여져 있는 것도 그 예다. 이민자들이 영어를 접하고 있다고 해도 아무래도 복잡한 내용은 한글이 더 익숙하다는 점에서 정부에서 한인들에게 정부 방침을 제대로 알려주는 배려가 아쉽다는 얘기다.
***세제 규제로 위기에 봉착한 한인 세탁업자들**
그러나 필자 개인적인 견해로는 우리 한인 세탁인들의 대응자세도 무사안일 하다. 세탁업계의 사업환경은 단순히 세제와 관련한 환경규제만을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선 퍼크는 오랜 연구 끝에 발암물질로 규정된 상태라는 것이다. 미 독극물 연구소 (National Toxicology Program)에서 2년에 한번씩 발행하는 발암 물질 보고서 (Report on Carcinogens)에 퍼크가 암 발생 물질의 하나로 규정되어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퍼크는 지난 1992년에 발행된 제 5차 발암물질 보고서에 최초로 거론이 되어 10여 년 간 변동사항 없이 발암 가능물질로 올라 있었다. 최근 업계에서 발암물질, 발암 가능 물질, Class A, Class B 등급이라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 이는 모두 정부와 여타 연구 기관의 전문 용어를 한국어로 번역했거나 연구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인데 퍼크가 20개의 극독성 발암물질이 아니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Class A, B, C 등급의 여부가 연방정부의 공식 입장을 10년 지난 현시점에서 바꾸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사료가 된다.
두번째. 인체에 유해한 독성 (Toxic Level)에 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가 2004년 초에 있을 예정으로 EPA에서 밝히고 있다. 필자는 이 보고서가 일반에 공개가 되면 훨씬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이미 한차례 소동이 1996년에 있었다. 당시 뉴욕 맨해튼 고급 동네에 위치한 한인 소유 세탁소를 상대로 젊은 부부가 자신의 신생아가 퍼크로 인해 정신지체자가 되었다고 뉴욕시에 진정을 하면서 야기된 사건이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기사를 통해 개인 세탁인의 책임이라기보다 감독을 소홀히 한 뉴욕시 환경국의 과실이라고 따끔하게 지적을 했다 (New York Times Feb. 18, 1996). 그러나 6개월 후 세탁소 영업 정지를 명한 법원의 판결이 있은 다음 같은 사건에 대해 가십성 기사를 주로 다루는 데일리 뉴스에서는 퍼크는 중추신경 마비, 간 콩팥 경화, 암, 백혈병을 유발시키며 뉴욕시 99%의 세탁소가 사용하고 있다는 보도를 하였다 (Daily News Sept. 17, 1996).
물론 3류 언론의 무책임한 처사를 나무랄 수 있겠다. 하지만 이에 의문을 느낀 필자는 퍼크의 유독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데일리 뉴스의 보도가 전혀 근거가 없는 사실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고로 1996년 이후 미국의 정통 언론이라 할 수 있는 뉴욕타임스에 실린 퍼크 관련 기사는 총 15건이다. 물론 모든 세탁인들이 쉽게 상상하실 수 있으시겠지만 이들 기사는 퍼크 사용과 일반인의 건강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환경규제로 공해산업으로 규정된 세탁업**
현재 뉴욕시의 경우 지난 1998년 입법된 규제법에 따라 밀실 설치, 탄소 흡착기 부착 등이 의무화돼 특히 뉴욕주와 뉴욕시의 4천여 개 세탁소 중 3세대 머신을 사용하고 있는 1천2백개 업소는 설비를 무조건 갈아야 한다.
현재 입안 초읽기에 들어간 뉴저지주의 경우 2세대 트랜스퍼 머신과 3세대 퍼크머신 사용을 허용은 하되 5년마다 받아야하는 허가 (Permit) 갱신 시 현재 형식적으로만 이뤄지던 점검을 공해 산업계의 기준에 맞춰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4세대 이상의 퍼크 머신 (개조머신은 안됨)과 대체 솔벤트 머신 사용 업체에 대해서는 7백50달러의 허가비용으로 5년 기한 허가를 서류 전형만으로 내준다는 방침이다.
연방정부는 퍼크 사용 세탁업소를 공해 발생 업체로 규정하여 대형 공해 방출 업계에 적용하던 엄격한 규제를 가하겠다는 법(Title V)을 이미 94년에 만들었다.
1999년 1차 공청회를 거쳐 일단 2004년으로 연기되었으나 EPA 공식문건을 분석했을 때 내년 12월부터는 예외 없이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규제보다는 연방규제가 약해 보이지만 연방 정부의 퍼크 세탁업에 대한 공식 반대 입장이 천명될 경우 실제 규제보다 대외적으로 끼칠 영향이 실로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현 퍼크 사용 세탁 업소가 가장 신경을 쓰는 법은 공기정화법(Clean Air Act)일 것이다. 그러나 연방정부는 세탁소의 오염이 밝혀졌을 때 알려진 모든 소유주에게 책임을 묻는 일종의 연좌제까지 시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필자가 아는 어떤 한인은 세탁업에서 은퇴지 15년이 지난 올초 느닷없이 환경청으로부터 시정 명령장을 받았다. 15년 전에 매매가 끝난 세탁소에서 오염이 발견되었으니 이를 청소하는 비용을 부담하라는 통보였다. 그리고 현재 그 분 소유로 되어있는 주택을 정부가 차압을 하겠다는 통보도 곁들여져 있었다고 한다.
***환경관련 규제는 법적 대응 어려워**
환경법에 관련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해결이 곤란하다는 것도 미리 미리 대비를 해야 하는 또하나의 이유다.
우선 환경 전문 변호사를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의 법률제도에 따르면 대형 환경 소송일 경우 변호사가 소송비용 전액을 부담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런데 이렇게 액수가 큰 환경 소송일 경우 한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은 천문학적인 숫자가 된다. 만일 소송을 이기거나 혹은 합의했을 때 합의금의 40%가 변호사의 몫이다.
물론 이 비용은 변호사의 지출비용을 이미 제한 액수이다. 소송 지출비까지 합할 경우 변호사의 몫이 60-70%까지 달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식 표현대로 소위 잭팟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소송에서 지게 되면 변호사가 본인이 투자한 소송 투자비용 전액을 날리게 된다. 흔히 잘나가던 변호사가 망했다는 말은 큰 소송에서 졌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환경법의 저촉 여부와 토질, 수질, 대기 오염 등을 밝혀내는 검사비용 만으로도 수십만불에서 수백만불을 호가한다. 일반 개인 변호사로서는 실로 엄두를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환경 전문 로펌을 찾아야 하는데 개인 소송의 경우 소송 액수가 작게 마련이고 결과적으로 의뢰 당사자에게 소송비용 부담을 요구하게 된다.
필자의 조사 결과 뉴욕시의 환경전문 로펌에서는 시간당 5백달러~1천달러의 소송비용을 요구한다. 뉴저지 협회에서 몇몇 환경 변호사를 일괄 초청하여 금액을 시간당 3백 달러까지 내렸으나 여전히 개인 부담이 되기에는 액수가 너무 크다.
필자 생각으론 한인 세탁인 중 몇 년씩 시간을 끌기가 일쑤인 환경 소송을 끝까지 버텨낼 사람은 없다고 본다. 또 세탁협회나 개인 세탁인을 돕고 있는 한인 변호사들도 실제 환경조사까지 해가며 정확한 법적 대응을 할만한 사람도 거의 없다고 추정된다. 결국 집단 소송 (Class Action Suit)으로 나가야 하는데 필자 개인적으로 이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다. 만일 악덕 사업체, 영리기업을 표적으로 한 소송이라면 명분도 좋고 재판부의 호의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를 상대로 하는 집단 소송은 완벽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명분도 없고 일반인의 지지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현재 연방정부가 권장하는 차세대 세탁 방법은 CO2, Greenearth, Wetcleaning이다. 정부의 공식 발표에 입각하여 2003년 2월 호 Consumer Report에서도 위의 세 가지 세탁기술과 퍼크 세탁을 비교했을 뿐 탄화수소(하이드로카본)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필자가 컨수머 유니언에 공식 확인한바 정부의 권장 방향에 따랐을 뿐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하이드로카본 기계를 설치하고자 하는 많은 세탁인들에게서 흔히 접하는 불만은 지역 소방서에서 허가를 잘 내주려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발화점 3등급으로 실제 설비 사용 시 화재의 위험이 거의 없는데도 사용허가가 잘 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초창기 하이드로카본 기계가 폭발을 했다는 사실과 박테리아가 기생을 한다는 사실도 하이드로카본 기술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는가 추정된다.
일단 연방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하이드로카본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유보하고 각 지방자치단체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EPA 공식문건을 인용하자면 하이드로카본에 대한 지자체의 결정은 "지방분권주의 Federalism"에 입각하여 스스로 내리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하이드로카본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현존하는 대체 용매 중 그나마 가장 세탁인에 친근하고 설비 투자 및 운영비용도 가장 저렴하다는 면에서 권장할 만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대량 주문 시 가격을 조절할 수 있다는 선례를 뉴욕 협회 공동 구매에서 확인한 만큼 한인 세탁업계가 힘을 합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연방정부가 차세대 세제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은 액화이산화탄소다. 대규모 공장에서 이미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수집해서 이를 고압으로 농축시킨 다음 이 이산화탄소 농축액으로 세탁을 한다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즉 이산화탄소 자체가 오존층을 파괴하고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고 기존에 이미 발생된 기체를 재활용한다는 이론이다. 특히 이 재활용 과정에서 독성이 없는 탄소와 산소로의 분해도 이루어진다고 한 연구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뉴욕, 시카고 등의 오래된 대도시 한복판에서 고압 밀폐 설비시설가 필수인 CO2 머신에 대한 허가가 나올지 의문이다.
또다른 대체 세제로 꼽히는 일명 Greenearth (액화 규산염)는세척력, 옷감 보존도에서 퍼크 세탁을 앞선다고 보고서는 발표하고 있다. 규산염(실리케이트)는 매우 안정된 화학물질이다. 자연 상태에서 환경을 파괴하는 일도 거의 없지만 인체에 대해서는 발암물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어 실용화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기존 시장에 연연해서는 시장 자체를 잃을 수도**
결론적으로 퍼크의 발암성이나 독성에 대해서는 이미 논란을 계속할 시기는 지났다. 정부의 규제가 날로 심해지고 있는 것은 차지하고라도 퍼크 용재 가격 부담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현재 퍼크 1 갤런 당 8불로 불과 2-3년 사이에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랐다.
앞으로 퍼크 사용이 점차 줄어들면 공급도 줄어들 것이고 가격도 계속 오를 것이다. 시장성. 경제성이 모두 나빠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현재 미국 세탁업계의 연간 매출액은 20억 달러가 넘는다. 매출액만으로 영세 소매업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그런데 현재 업계의 과당 경쟁으로 가격은 지난 15년간 제자리걸음을 해오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할 때 세탁 가격이 오히려 떨어졌다고 보면 되겠다. 현재 세탁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는 죽을 노릇이지만 정부 입장에서 보면 더 바랄 나위가 없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소비자 물가를 끌어내리는데 공헌을 하기 때문이다.
한인 세탁업소를 방문할 때마다 현재 잘 가동되고 있는 멀쩡한 기계를 3만~4만 불의 생돈을 들여 갈아야만 하느냐는 불만의 소리를 많이 접한다. 단기간 자금 압박이 걸림돌이다.
하지만 위에서 밝혔듯 시장성이 나빠졌고 계속 나빠질 퍼크 클리닝은 장기적으로 시장 자체를 고사시킬 가능성이 다분하다. 세탁업을 통해 한인 사회도 꾸준히 커왔고 또 그 자본력을 바탕으로 크게 발전해왔다. 그러나 시장성을 잃어 가는 상품에 대해 연연해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논리 그 자체에 역행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필자 서영민씨는 미국 뉴욕시립대 라구아디아 칼리지 사회과학과 교수로 경제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필자와의 연락은 youngmin1@msn.com으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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