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이는 입 다물고, 외면할 이는 마주 본 청문회장
지난주 수요일, 2020년 2월 19일은 코로나 사태가 예기할 수 없었던 급상승 변곡점을 맞았던 아주 공교로운 시점이었다. 그 전날인 2월 18일 오전까지 코로나 사태는 통제가능한 상태로 진정되는 모드였다. 그러나 질본(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이 2월 19일 오전 9시 기준으로 국내 확진자가 전날보다 15명 더 늘어났다고 밝히면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모든 현안들이 코로나 사태 아래 묻혀들어갔다. 4·15총선과 관련된 사안들은 그나마 이 질병 관련 뉴스들 사이를 비집고 들었지만, 질본 발표의 여운이 갑자기 증폭된 19일 당일 11시에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노태악)임명동의안 심사 국회 인사청문회’는 시청자가 극소수인 국회방송(NATV)에서 중계만 되었고 저녁 뉴스 때까지는 어떤 방송국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날, 2015년 4월부터 8월에 걸쳐 노태악 판사가 서울고등법원 제19민사부 재판장으로 내린 항소심 재판 4건, 그리고 그해 12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한 사건 등, 총 5건의 판결에 영향을 받아야 했던 13명의 원고와 그 원고와 같은 체험을 했던 1,140여명의 긴급조치 피해자들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문답이 이 청문회장에서 오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청문위원 가운데 노태악 판결의 원고와 응당 같은 입장에 서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여당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즉 박범계(간사), 권칠승, 기동민, 금태섭, 송갑석 청문위원들과, 뜻밖에도 노태악 후보에게 호의를 보인 야당의 미래통합당(전 자유한국당) 의원들 중 간사역인 장제원 의원을 제외한 위원 전원 즉 주광덕, 이은재, 강효상, 정점식, 지상욱 의원 등은, 자신이 내린 판결이 참으로 잘못됐다고 지적당하면서도 계속 헤매는 노태악 후보자를 심층적으로 제대로 추궁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민주통합의원모임의 박지원 의원, 그리고 평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이 가득했었는데 유신독재체제를 비판하는 모습 자체가 이색적이었던 장제원 의원만이 본질적인 핵심을 짚어나갔다. 언성을 높일 이들은 입을 다물고, 바라지 않던 이에게서 복음을 듣는 기묘한 풍경이 펼쳐졌다.
정의로움의 영혼 없이 상급의 판례만 쫓아다니는 재판 관료의 면모
박지원 의원은 유신시대 때 법률상 위헌인 긴급조치에 따라 고문이나 강요에 의한 자백으로 부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아 형을 살렸다면 이들에게 당연히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데 후보자는 판사로서 피해자들의 배상 요구를 전부 기각한 것은 부당하고, 이런 판결에 대해 사과하라고 반복적으로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노태악 후보자는 형사상 무죄를 받았다면 당연히 배상해야 하는데,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상당한 보상을 받았으면 이미 손해배상을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민사법리에 따라 이중 배상이 되어 그 청구를 기각했다고 법리적 변명만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긴급조치로 인해 구속, 수감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그 어떤 피해를 받았다고 내세운 증거들이 불충분했다고 입증 책임을 피해자 개개인에게 전가하였다.
그 바로 다음 질의에 나선 장제원 의원은 노태악 후보자가 판사로서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5건이나 무더기 기각한 판결에 "실망했다"고 토로하면서 "공무원처럼 대법원판례를 쫓아다닌 영혼 없는 법관의 모습"을 보았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하였다. 후보자가 청문회 인사말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기계적인 법 적용을 통해 형식적인 판결을 한 것이 아닌지"라고 소회를 밝힌 것은 이 긴급조치 판결을 두고 한 것은 아니냐고 묻자, 노태악 후보자는 거의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예!"라고 얘기했는데, 장제원 의원은 아무리 대법원판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의 긴급조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서 국민과의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만 있지 법적 책임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은 인권을 말살하고 사형까지 서슴지 않았던 유신 당시의 작태를 완전히 왜곡한 잘못된 판결로서 명백히 잘못된 것이므로 양식을 가진 판사라면 판례조정을 요구했어야 했는데 노태악 판사는 그러지 않았다고 명확하게 질타하였다. 그러면서 장 의원은 후보자가 여전히 "긴급조치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이기 때문에 국가가 그 피해자 개개인에게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판결문의 진술을 여전히 옳다고 생각하느냐를 반복적으로 질의하였다. 장 의원은 긴급조치9호로 처벌한 589건의 사건들 가운에 289건은 술을 마시거나 수업 도중 유신을 비판하던 단순 사건이었고, 정작 명시적인 시위나 유인물 배포 등은 191건에 지나지 않았다는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제시하였다. 장 의원은 유신체제가 사실상 "민주공화국을 무시한 폭압적 독재"이므로 "국가권력이 국민의 삶을 짓밟은 것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명토 박았다. 상당히 길게 뜸 들이던 노 후보자는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동료 판사들(구자헌, 홍승구)과 토론하여 내린 결론이었다는 구차한 변명으로 배석했던 동료들에게 부담을 전가하였다. 그리고 마지못해 "가혹한 불법행위를 당하고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위로한다"고 하면서도, "불법고문"을 당한 경우만 "가혹한 불법행위"로 한정하는 말장난을 했을 뿐이다.
박지원, 장제원 의원들의 질의 뒤 보충질의가 없어 논의를 종결지으면서 청문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노태악 후보자에 대해 "권력의 불법적 탄압에 의해 받았던 피해자들의 극심한 고통에 대한 공감과 국민의 기본적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재고하여 차후 이 문제에 대한 보충 답변을 주문하였다. 하지만 노태악 판사는 국회의 동의안 표결을 기다리는 현재까지 아무런 언명이 없으며, 사전에 작성된 서면답변에서는 이 긴급조치 피해자 손해배상에 대한 5건의 기각 판결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했을 뿐 권력에 야합한 판결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 영혼 없이 판례를 추종하는 재판 관료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냈다.
정의를 갉아먹은 판례 바이러스: 대통령의 부당한 국가 행위에 대해 사법적 판단을 포기한 2015년 3월의 대법원 판결
노태악 판사가 그 무슨 성경처럼 매달리는 대법원 판례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이, 유신독재 시절 대통령 박정희가 발령한 대통령 긴급조치 1호, 2호, 4호, 9호를 위헌, 무효, 불법이라고 판정했던 2013년의 헌법재판소 및 대법원의 결정을 사실상 뒤집은 2015년 3월의 대법원 판결을 가리킨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 재판부는 1975년 5월 13일 발령된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 즉 보통 긴급조치9호라고 불리는 것은 "위헌·무효"라고 일단 판단하기는 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그 발령 근거인 유신헌법 제53조에 비추어" 긴급조치를 발령하려면 안보, 재정, 경제 등의 위기나 천재지변 같은 국가긴급상황이 있어야 했는데, 긴급조치9호는 이와 같은 "발령 요건을 결여"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 긴급조치9호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이자 유신헌법과 현행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와 신체의 자유, 주거의 자유, 청원권, 학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대통령 박정희가 발령한 긴급조치들에 대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2013년 판결들은 전적으로 올바른 것이었다.
그러나 긴급조치9호가 위헌적이고 그에 따라 무효라고, 일단은 - 아주 정당하게 - 판정한 양승태 시절 대법원의 이 2015년 판결의 문제점은 그 다음 구절에 나타난다. 즉 이 대법원 재판부는, 긴급조치9호가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되었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참조)"고 판정했다. 그때문에 이 대법원 판결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 그 자체"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것은 곧 대통령 박정희의 긴급조치 자체가 법적 판결의 대상이 되지 않는 법 초월적 성격을 갖는다고 보아 대통령의 부당한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부로서의 판단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2015년 대법원 판결의 특이점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 대상이 이미 2012년도에 제기되었던 재판건이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건을 제기하였던 원고들은 긴급조치9호 당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상당 기간 구금된 상태에서 가혹행위를 당하고 조사를 받다가 어쩌다 긴급조치로는 처벌받지 않고 방면되었다. 그런데 긴급조치로 처벌받기를 면했던 피해자의 이런 상태를 두고 2015년 3월의 대법원 재판부는 "중앙정보부 소속 공무원이 수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고가 대통령의 긴급조치를 위반하였다는 혐의로 체포·구금한 행위는 불법행위에 해당"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법적 판단의 차원을 넘어서는 대통령 긴급조치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공무원으로서는 '국가배상법' 제2조에서 규정한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것이 아니고, 따라서 배상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아주 기묘한 이유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원고인 피해자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 아니어서" "재심을 걸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고", "원고의 체포·구금상태가 종료된 후 이 사건을 재판하기까지 30년 이상이 경과"했기 때문에 그동안 충분히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으므로 "재판을 방해받을 만한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누가 듣더라도 - 속된 말로 - 억장이 무너지는 언명을 판결이랍시고 제시했다.
사법적 판단을 포기한 2015년 3월 대법원 판결의 악성 법리를 추종하면서 또 다른 악성 법리, 즉, 생각없이 '불법국가'를 계수한 치명적 작태 : 1심에서 인정받은 배상을 무더기로 부인한 노태악 재판부의 생각없는 판례모방
이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 2014년 긴급조치9호의 또 다른 피해자 13명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긴급조치피해 손해배상소송 5건을 제기했는데, 이들은 1심에서 모두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었다. 그런데 이 2015년 3월 26일의 대법원 판결이 있던 시점에 (박근혜 정부 하의) 검찰은 피해자들의 승소에 불복하여 모두 항소를 제기하였다. 이참에 당시 대법원 재판부는 3년이나 끌었던 사건을 서둘러 끌고 나와 앞에서 소개한 판결을 내렸는데, 그 직후인 2015년 4월3일부터 12월 11일까지 노태악 판사가 재판장이었던 당시 서울고법 민사19부는 이 대법원 판결을 적극 추종하여 5건의 항소심에서 원고인 긴급조치 피해자들에게 모조리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이 판결들에서 노태악 재판부는 본래 양승태 대법원의 대법관들이 판결한 것보다 더 악화된 방향의 법리를 추가하였다. 즉 노태악 재판부는, 긴급조치에 근거하여 이 피해자들을 연행하고 수사한 당시 수사기관원들이나 이 피해자들이 처벌받도록 재판한 당시 판사들의 행위가「국가배상법」제2조에서 규정한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것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그 근거로 "제1항과 제2항의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하여 대통령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를 면제한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을 들었다.
하지만 유신헌법의 이 조항이야말로 전세계 사법계에서 헌법을 비롯한 그 어떤 실정법에 대해서도 그 법의 정당성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적용되는 '라드브루후 공식'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법무상을 지냈던 독일의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브루후가 2차 대전 이후 나치체제에서 제정된 법률들과 나치 사법부에서 행한 판결들의 불법성을 판정하기 위해 제안한 이 공식은 다음과 같은 3개 명제로 구성된다.
즉, "정의와 법적 안정성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그 해결방식은 다음과 같다.
1. '규약과 권력에 의해 그 집행이 보장된 실정법들'은 그 내용상 설령 정의롭지 않고 합목적성을 갖지 않더라도 일단 정의의 원칙보다 우선성을 가진다.
2. 그러나 실정법과 정의의 모순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ein so unerträgliches Maß)'에 도달하였을 경우 그 실정법은 '부정의한 법(ein ungerechtes Recht)'이 되면서 그 실정법에 대해 정의가 우선성을 가진다.
3. 하지만 더 나아가, 하나의 실정법이 제정될 때 정의의 핵심을 이루는 평등이 의도적으로 무시되어 정의를 이루려는 일체의 노력이 애초 단 한 번도 추구되지 않을 경우, 그 실정법은 단지 '정확하게 법답다고 할 수 없는 법' 정도가 아니라 아예 법으로서의 본성을 전적으로 결여한 것, 즉 '법 아닌 것(不法, Unrecht)'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법, 그리고 실정법 역시, 그 의미상 정의에 봉사하도록 규정된 질서와 규약 이외의 것은 아니라고 정의되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기준은 보통 "근본적으로 정의를 부정하는 실정법은 법이 아니다"라고 요약되는데, 1974년 1월 8일 긴급조치1호를 시작으로 1979년 10.26 사건으로 대통령 박정희가 격살될 때까지 당시 판사들이 그것에 따라 재판하였던 대통령 긴급조치들은, 민주주의 권력 운영의 모든 원칙, 즉 독재와 폭력지배를 배제하면서 정기적 선거, 정당정치의 자유, 국민 기본권 특히 신체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무엇보다 유정회라는 꼭두각시 의원조직을 자의적으로 임명하여 국민의 대표여야 할 국회의 입법권을 완전히 통제하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완전히 부정하여 삼권분립의 원칙을 송두리째 원천적으로 부정한 '법 아닌 법' 즉 '불(不)-법(法)' 그 자체였다. 그리고 대통령의 긴급조치에 대해 일체의 사법심사를 면제한 유신헌법 제53조야말로 헌법의 겉모습을 하고 불법을 조장한 '불법국가(Unrechtsstaat)'의 문서 증거이다.
불법국가의 체제범죄를 법의 모습으로 포장해준 법심부름꾼들로서 유신 판사들을 그 오류까지 베낀 논리역량 0(=제로)의 판결문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정의로운 국가질서를 수호하고 국민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 대법관이 되고자 하는 노태악 판사가 가장 가슴 아파해야 할 일은, 그가 유신헌법의 논리로서 감싸고자 하는 긴급조치시대의 대한민국 판사들이 법도 아닌 긴급조치를 갖고 재판이라는 것을 해갖고 폭력을 지배수단으로 하는 독재자의 하수인 역할을 했음을 한없이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번듯하게 공부해서 기껏 한다는 것이 법도 아닌 것으로 폭력지배의 벌주기 심부름이나 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내놓고 잘못 없다고 변명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법원의 대법관들이 쓴 판결문이라는 것이 논리학 개론에서 가르치는 기본적인 오류론조차 제대로 감별하지 못했음을 확인하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는 2015년 3월 대법원 판결문은 그보다 7년 앞서 거창양민학살 피해자들이 국가에 대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을 참조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대법원의 이 2008년도 판결은 6·25 전쟁 당시 국가가 거느리는 통치력의 한 고리인 군(軍)이 불법적으로 자행한 거창양민학살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해 "국회"가 국가로 하여금 그 배상을 의무로 규정하는 법을 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으로서 제대로 직무를 이행하지 않아 손해를 끼쳤다고 하여 국회의원들에 대해 그 손해에 대해 배상을 청구한 것은 이유가 없다고 판시한 것이었다. 이 판결에서 거론한 "국회"의 위상에 관해 2008년 당시의 대법원 재판부는 "다원적 의견이나 각가지 이익을 반영시킨 토론과정을 거쳐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통일적인 국가의사를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으로서 그 과정에 참여한 국회의원은 입법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2015년 3월 대법원 판결은,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에 대해 2008년 대법원 재판부의 판결문이 국회에 대해 언급한 것을 그대로 유신 대통령에게 적용하여, 그 판결문에서 "국회" 글자 대신 "대통령"이라는 글자를 집어넣어 사실상 모방 판결을 행하고 있지만, 논리적으로 제대로 모방조차 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유신헌법에서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토론없이) 무기명투표로 선거"(유신헌법 제39조①)됨으로써 사실상 영구집권을 보장받았다. 그리고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의 국회의원 후보"를 "일괄 추천"하여 "후보자 전체에 대하여 찬반 투표로 그 당선을 결정"하도록 하여(유신헌법 제40조 ① 및 ②) 권력 행사에서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도록 권력 구도를 짰다. 결론적으로 거창양민학살 사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을 입법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국회'와 유신헌법에 의해 국가권력을 독점하고 그 집행을 독단하는 '대통령'은 헌법적 성격이 전혀 다르다.
잘못된 유비추리의 오류, 은밀하게 재정의하는 오류, 그리고 범주착각의 오류
국민의 보통선거로 선출되는 정상적 의미에서의 '국회'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국민에 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갖는다. 하지만 유신헌법에서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하여 선출되는 것은 국회나 대통령이 아니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지만, 이 기구는, 정당에 가입해서는 안되는 30세 이상의 2000인 이상 5000인 이하의 대의원으로 구성되며 그 의장이 대통령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이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토론 없이 추대되다시피 하는데(이상 유신헌법 제36~39조), 앞서 말한 대로 바로 이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대통령이 일괄 추천한 국회의원 정수 1/3에 대해서도 일괄적으로 찬반 투표하게 되어 있다. 유신헌법상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국민주권까지도 대신 행사하는 기관이었는데(유신헌법 헌법 1조 ②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대통령이 의장인 상태에서 그 자체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거나 통제하거나 아니면 국민의지를 관철시키도록 하는 어떤 긍정적·부정적 권한도 부여받지 못했다. 하다못해 의장인 대통령이 열려고 하지 않으면 회의조차 열지 못한다. 따라서 유신헌법에서 대통령은 국민에 대하여 그 어떤 정치적 책임도 지게 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국민에 대하여 정치적으로 원천적으로 '무(無)'책임하다.
유신대통령은 국가기구를 자신의 사적 폭력의 도구로 휘두른 범죄자였고, 이것은 긴급조치 피해자들 중 의식적으로 저항을 감행한 소수의 선각자들, 부산-마산의 시민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라고 세워놨지만 결국 거꾸로 자기를 최종적으로 처결한 통제부의 총탄을 통해서만 그 범죄적 행태가 중단될 수 있었다. 2015년 3월 대법원 판결과 그것을 추수한 노태악 재판부가 대통령 박정희에게 "정치적" 책임만 진다고 했을 때, 그들은 2008년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모방·인용했는데, 정상적인 민주주의 체제에서 작동하는 '국회'의 역할을 불법·비정상 국가에서 그 직책을 찬탈한 '대통령'에 빗대는 '잘못된 유비추리의 오류(fallacy of false analogy)'와 아울러 유신대통령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은밀하게 재정의하는 오류(fallacy of illicit redefinition)'까지 범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2015년 3월의 대법원 판결을 추수하는 노태악 재판부의 또 다른 논리적 실책이 튀어나온다. 즉, 대법원과 노태악 재판장의 법리에 따라 설사 대통령 박정희가 그 긴급조치를 통해 국민에게 "정치적" 책임만 진다고 했다면 국민에게 직접 나서서 "정치적" 방식으로 응대했어야 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과 그것을 "존중"했다는 노태악 재판부는 "국민"에게 "정치적" 책임을 진다는 대통령 박정희가 긴급조치를 통해 자신의 '반대자 개개인'을 색출하고 수사하고 심문하고 취조하고 재판하여 국민에 대하여 '사법적으로' 응대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단 한 번이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이것은 전형적인 '범주착각의 오류(fallacy of category-mistatke)'인데, 노태악 재판부의 법관리들은 법을 공부할 때 '논리학 개론'은 전혀 수강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법적 국가기구를 사용하여 저항자 개개인을 개인적으로 탄압한 불법국가의 체제범죄와 그 개인적 피해
따라서 유신헌법에 의거하여 발령된 긴급조치는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 경찰, 군, 그리고 검찰과 법원을 자신의 수족처럼 부려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매뉴얼에 따라 감별된 저항자들 개개인에게 개별적으로 폭력과 탄압을 가하도록 대행시켰기 때문에 단지 형사법적으로 불법일 뿐만 아니라 민사법적으로 그원상복원을 해야할 정도로 광범하고도 심각한 피해를 야기했다. 이때 입은 피해는 피해자 개개인의 일생에 지금까지도 심대한 지장을 초래하였고, 그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신체적, 물질적, 정신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안겨왔고 경우에 따라서는 원치 않은 죽음을 앞당기기도 하는 필생의 우환을 안겼다. 이들이 받은 피해는 개개인 차원에서 산발적으로 입증할 것이 아니라 유신 매뉴얼에 따라 가동된 탄압의 통제메커니즘을 객관적으로 디테일하게 재구성하면 이 통제장치를 통한 탄압 끝에 각 개인에게 어떤 인생 모습이 펼쳐질지는 구태여 일일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충분히 추적구성이 된다. 다시 말해서 긴급조치는, 대통령 박정희 개인이 피해자 개개인을 겨냥하여 국가기구를 폭력적으로 총동원하여 제압하기 위한 매뉴얼과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박정희 개인이 개인적으로 손해를 가했다고 봐야 하며, 단지 형사법상으로 불법일 뿐만 아니라 민사법상으로도 막대하다고 판단할 정도의 '개인적' 손해를 끼쳤다고 보아야 논리적으로 정합적인 판단이다.
대법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노태악 판사와 대다수 국회의원이 보인 사법적 불감증, 그리고 그것을 불감증으로 못느끼는 '무증상 불감증'
대법관 후보로 나선 노태악 판사의 청문회와 그의 서면 소명을 보면서 우리가 경악하는 것은 이렇게 국가 자체가 국가로서의 정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법도 아닌 것을 법으로 다루라고 안겨준 문건으로 재판 코스푸레를 벌인 선배 법관들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않는 그 법적 무감각, 정의공감의 부재이다. 나치독일에서 나치가 안겨준 실정법에 따라, 그것도 국가 행위라고 나치들의 반인륜 행태를 정당화시키는 판결을 내려준 나치판사들처럼 '불법국가의 체제범죄(regime-criminals of Unrechtsstaat)'에 대한 사법적 불감증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게 던져진 이런 의문을 상기시킨다. '너의 개인적 성실함이 체제 차원의 범죄를 정당화하여 억울한 피해자들을 양산시킬 수 있다는 비극의 가능성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나는 유신시대 재판관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府)의 판사(判事)가 아니라 유신독재자 통치부의 한 부서로서 사법부(部)의 법률 대서사(代書士)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되물었다. 입법과 행정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한 개개인의 생명과 신체와 재산에 직접 그리고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저들을 왜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로 뽑지 않고 법관으로 별도로 길러낼까?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의원, 대통령 심지어 도지사 시장, 군수까지 선거로 뽑는데 왜 판검사는 대학에서 법이나 공부하게 하고 기껏해야 시험이나 처서 뽑을까?
오랜 시간 이 유신시대의 법률 대서사들이 찍어놓은 낙인 안에서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피해의 고통을 묵수하면서 도대체 현대 민주주의의 설계자들은 왜 사법부만큼은 '미선출 권력'으로 남겨두었을까 오랫동안 불만스럽게 의문으로 뭉쳐두었다. 그런데 반세기의 나이를 살고 민주화도 엔간히 되었다는 21세기 두 번째 십년기를 다 보낸 이 시점에 검찰과 법원의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독단적 처사들을 보면서 비로소 크게 깨달았다. 그리고 서초동 검찰청과 법원 건물 안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왜 두 눈을 가렸는지, 신화에 잠긴 그 깊은 뜻을, 대한민국 법조삼륜(法曹三輪)이라는 검사-판사-변호사가 똘똘 뭉쳐 생겨난 법조독재(法曹獨裁 juristocracy)의 행태를 보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노태악 판사를 대상으로 한 대법관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내가 느낀 가장 뼈저린 실망은 후보자 본인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회의원이 체제범죄의 비극적 후과에 대해 사법적 불감증의 반응을 보이면서 자신들이 이런 불감증을 갖고 있음을 전혀 체감하지 못하는 이른바 '무증상 사법무감각'을 체화하면서 그것을 사방에 뿌리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무증상 코로나 감염자가 사방 바이러스를 뿌리고 다니는 것처럼!
검판사를 왜 선거에서 경쟁시켜 뽑지않을까? : 정의로운 질서를 만드는 이는 아해관계에 눈감고 높이 날아올라 굽어보며 그 이해를 조정해야 한다
핵심은 우리 대한민국 국가와 주권자 시민을 위한 정의(正義)다! 한 나라 안에서 자기 삶을 사는 개개시민의 일상이나 각기 자기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야 하는 정치는 자기 생활의 부산함이나 그 자체의 이해관계에 골몰하다 보면 이 국가와 세계 '전체'를 볼 수 있는 역량을 갖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 모든 '개인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주고 나면 이들 모두가 더불어 사는 '국가 안에서' 이 다양한 자유들이 서로 평등할 수 있도록 '공정하게 균형'을 맞추어야 나라도 살고 개개인도 탐욕이나 억울함이 없을 것이다. 정의의 여신이 '날개'를 달고 있는 것은 인간들 개개인의 바쁜 일상과 조밀한 사회관계에 말려들어 같이 다투지 말고 높이 날아 그 전체를 굽어보라는 뜻일게다. 그러면서 두 눈을 가린 것은 이 일상의 세속적 이해에 말려들지 말고 스스로 초연한 위치에서 판관 자신의 이익을 개입시키지 말고 각자의 몫을 공정하게 정해주는 분별력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사는 우리 삶에서 개개인이 직접 겪는 문제와 국가라는 둥지 안에서 더불어 사는 모습을 모두 살피는 거인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하바드 로스쿨의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그의 저서 <법의 제국>에서 하늘을 들어올린 "헤라클레스"로 판사를 비유했다. 사실 판사 개개인이 이렇게 헤라클레스 같은 존재로 커갈 길은 우리 헌법에 이미 명시되어 있다. 즉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한다."(현행 대한민국헌법 제103조) 과연 노태악 판사는 독립적으로 심판했는가?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바로 세운 민주공화국 국체를 재정비하기 : 법을 악용하여 억울한 이를 괴롭히는 일을 중단하고 국회, 정부, 사법부가 각자 소임을 다할 일
우선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으로 있는 문재인 정권의 법무부와 검찰은 과거 불법국가의 체제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재판에서 지난 정권들이 검찰을 앞세워 걸어놓은 일체의 항소와 상고를 포기하여 피해자들의 패소나 기왕에 지급된 배상금을 환수하려고 계속 괴롭히는 법적 핍박을 당장 중지시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실정법을 악용하여 억울한 피해자를 탄압하는 최악의 법치주의 교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20대 국회, 안되면 다음 21대 국회에서, 3·1혁명 이래 대한민국 현대사 100년의 역사를 놓고, 민주공화국 국체 재정비 차원에서, 일제강점체제와 박정희-전두환의 군부체제에서의 국가를 불법국가로 선언하고 그 안에서 행해진 부정의한 국가행위 전반에 대해 광범위하고도 정밀한 조사를 체계적으로 시행하여 국회 차원에서 현재의 민주주의 정치과정을 측정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국가와 국민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현재 상태를 살피는 '민주주의 성숙과 보완 지표'를 입법화하고, 이런 민주주의 기준에 미달하는 과거의 체제범죄에서 발생된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체계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정부와 국회뿐만 아니라 사법부 역시 과거 불법국가의 체제범죄를 방조하고 온존하는 판례들을 일괄 재심사하여 발전적으로 재판결함으로써 사법부 차원에서 국가와 시민의 정의를 확립하는데 기여할 구체적인 방안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불법국가로서 유신체제 안에서 긴급조치라는 법도 아닌 법으로 재판을 벌여준 과거를 정확하게 통찰하고 수많은 판례 안에 온존하는 체제범죄의 방조 요인들을 척결해야 하고, 대표적으로 긴급조치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들을 파행으로 몰고간 2015년 3월의 대법원 판례를 최우선적으로 파기해야 한다.
성실한 아히히만? 아니면 하늘을 걺어진 헤라클레스
민주공화국 국체 정비라는 이런 막중한 역사적 과제를 앞에 두고 대법관 후보로 제청된 노태악 판사는 자신도 모르게 생각없이 불법국가에 성실하게만 복무하는 '아이히만 타입의 법관리'가 될까, 아니면 아슬아슬하게 파행을 겪는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굽어보면서 자신의 오류까지 고칠 용기를 내는 '헤라클레스 판사'가 될까?' 불법국가의 체제범죄를 총체적으로 통찰하지 못하고 유신시대의 전례들을 은밀하게 온존시키는 대한민국 법조계, 그리고 그것을 대표하는 대법원이 국가와 시민 정의의 최후 보루로 거듭나려면 '우리 안의 불법국가'를 철저하게 청산해내는 작업이 긴급하게 필요하다. 불법국가의 체제범죄를 극복한 대한민국 법치주의에 대한 거시적인 안목은 없이, 잘못 되었더라도 판례라면 생각없이 추수하는 근시안적 법관료가 부정의한 합법성에 매몰되어 관료적 성실성 안에서 무증상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사법적 불감증을 주변에 퍼트려 국가 정의를 잠식시키는데 자신도 모르게 일조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나만 느끼는 걸까?
이런 걱정에는 긴급조치로 인해 평생 피해를 입었던 많은 이들의 의구심이 섞여 있다. 그것은 지금 이 나라 민주주의를 실제로 운영하는 현존 정치권력과 사법권력의 행태에 대한 좌절감 직전의 실망스러움을 담고 있다. 즉 촛불정부 출범한 이후 여러명(정확한숫자는 모르겠음)이 있었지만 이렇게 사법농단의 대표적 사례인 긴급조치9호 국가배상소송재판에서 양승태 시절 대법원의 충복을 대법관후보로 지명한 사례는 없었다. 사법농단의 청산과 사법개혁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짊어진 김명수 대법원 체제가 사법농단의 하수인을 구성원으로 채우겠다는 것은 사법개혁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긴급조치9호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한 판결을 내린 인물이 대법관으로 임명되고 나서 대법원이 전원회의체에서 판례변경을 시도할 경우 고등법원 판사 시절 자기가 내렸던 기존 판결을 뒤짚는 새로운 판결에 동의할까? 그리고 문재인 정권이 출범 때부터 그토록 사법개혁을 내세웠건만 이번 인사 청문회에서 봤듯이 민주당은 사법개혁에 대해 입으로만 떠들지 사법농단 최대의 피해자인 긴급조치9호 피해자의 원상회복문제에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스스로의 역사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민주당의 이같은 한심한 자세는 사법개혁이 용두사미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여야의 율사들이 총망라되었다는 청문회에서 당색 자체가 유신독재자에 덧대고 있다고 공언하는 야당의 주광덕, 이은재, 강효상, 정점식, 지상욱 의원 등은 그만 두고라도 명색이 민주화를 선도했다는 여당의 박범계, 권칠승, 기동민, 금태섭, 송갑석 의원들이라도 노태악 판사의 판결에 내재된 이런 무증상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사법적 불감증을 짚어냈다면 노 판사가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더 쉽게 용기를 내도록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민주당 청문위원들이 박지원-장제원 의원의 추궁에 가세했다면 어쩌면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소집하여 15.3.26사법농단을 재심의해야 한다고 (노태악 자신은) 생각한다"는 답변 정도는 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이번 청문회가 우리 민주공화국의 질과 격을 높이는데 거의 기여하지 못했고 노태악 판사도 자신의 오류를 극복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왜 이리 내 속을 태울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