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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시간은 정말 끝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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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시간은 정말 끝난 것인가?"

[이미지프레시안] 서른번째 레퀴엠, '그날'에 대한 망각

망각기계 Forgetting Machines

시간은 흘러간다.
너무 아쉬워 붙잡고만 싶은 시간도, 두려움과 절망으로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간도, 흘러가지 않는 시간은 없다. 시간에는 감정이 없다. 가면 그뿐이다. 거슬러 갈 수도, 멈추게 할 수도 없다.

다만, 우리는 느낀다. 저 시간들을, 이 시간들을, 그 시간들을....
물리적인 시간의 양과 질은 누구에게나 같아도, 상대적인 시간의 양과 질은 그 누구에게도 다르다. 그래서 '재는' 시간과 '느끼는' 시간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오월의 그날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흡혈귀들의 시간도 날이 밝자 과거의 일이 되었다. 흡혈귀들은 그들이 누렸던 영광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투덜거렸으리라. 그들에겐 피를 빨아야 할 시간이 더 필요했으리라. 그래도 날은 밝았다. 흡혈귀들의 시간을 끝내기 위해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다. 흡혈귀들에게 촌음 같았을 그 시간은, 피 흘린 이들에겐 억겁의 시간이었다.

ⓒ 노순택

오월의 그 시간, 멋모르고 놀던 세상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
시간은 흘러갔다. 너무 아쉬워 붙잡고만 싶은 시간도, 두려움과 절망으로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간도, 흘러가지 않는 시간은 없었다.

그날의 폭도들에게도, 어설픈 영광이 찾아왔다.
그날의 폭도들은 이제, 민주열사라 불린다.
빨갱이 가족들은, 민주화운동 유가족이 되었다.
오월의 그날은, 역사의 품격을 갖추었다.
누군가 나타나, 이제는 그 아픔을 잊자고, 모든 걸 덮자고 점잖게 타이른다.
하긴,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가. 날 밝은 지가 언젠데.

어느새 그날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과거지향적인 짓인 양 치부되었다.

허나, 광주의 시간이 정말 끝난걸까?
2006년 오월, 대추리로 출동한 일단의 군인들은 늙은 농부들을 곤봉으로 내리치고, 포승줄로 옭아맸다. 침묵과 방조로 26년 전의 학살에 동참했던 아메리카, 그들의 전쟁기지를 지어주기 위해서였다. 군경합동으로 기획된 이날의 작전명은 '여명의 황새울'이었다. 26년 전 빛고을을 피로 물들였던 자들의 후예다운 작전 명명법 아닌가. 금남로를 피로 물들였던 '화려한 휴가'는 그렇게 부활했다.
하여, 광주는 전라남도 광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오월은 1980년의 그날로 종결된 것이 아니었다.

ⓒ 노순택
그날의 폭도들에게 찾아온 것은, 어설픈 영광일 뿐이다.

2006년 시월, 바로 지금,
대한민국 보수의 대표주자를 자청하는 김용갑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지난 6.15 대축전 행사가 벌어진 이박삼일간 광주는 완전히 해방구였다. 주체사상 선전홍보물이 거리에 돌아다녔다. 그러나 공권력은 없었다"고 자랑스럽게 폭로했다. 김정일 추종사상과 반미의식을 퍼뜨리는 본 고장이, 바로 광주라는 얘기였다. 단어만 몇 개 바꾸면 26년 전 오월의 흡혈귀들과 그를 따르는 찌라시들이 떠벌렸던 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2006년 십일월, 바로 지금,
한국농담을 자처하는 <한국논단> 이도형 대표는 탈북자 임천용의 인터뷰를 대서특필했다. 요점은 이렇다. 오월의 항쟁과 살육은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부대가 개입해 저지른 것이었다!!! 남한에서 벌어진 모든 극렬사태는 북한의 공작결과였다!!! 농담도 진담처럼 하면, 씨알이 먹히는 법이다.

그리고 라디오에서는 전두환의 아들과 초등학생 손자의 계좌로 의문의 뭉칫돈 41억원이 입금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뿐이랴,
2007년 이월, 바로 지금,
살인귀의 고향에서는 살육을 기념하는 공원이 '시민의 이름으로!' 조성되었다.

2010년 오월, 바로 지금,
임진각에서 북한으로 삐라를 날리던 보수단체 회원들은 "광주폭동의 진실을 이제는 말해야 한다"며 "북에서 내려온 간첩의 선동에 의해 폭동이 벌어졌다"는 주장을 담은 유인물을 살포했다.

ⓒ 노순택
귀를 열자니 귀가 더러워지고, 입을 열자니 구역질이 솟구치는, 이 공감각적이며, 초현실적이고, 몰역사적인 수작들을 대체 무엇이라 불러주어야 할까.

누군가는 잊으려 몸부림치지만, 누군가는 뼛속까지 우려먹고 싶은 역사의 기억.
그것이 오월의 기억은 아닐까.

반복되는 악행은 망각에 기초한다. 이럴 때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망각이 보기 좋게 공조한다. 다만 가해자는 자신이 잊고 싶은 것만 골라 잊는 선택적 망각의 자세를 취한다.

결국 망각인가.
결코 잊지 않으리라던 피눈물은 말라버렸고, 야비한 비웃음에는 아직도 침이 고여 있다.

21세기 망월동은 망각의 스펙터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폐허의 스펙터클이기도 했다.
스산한 옛 망월동도, 너무 다듬은 새 망월동도.

우리는 책임지지 않는 사회의 병폐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끈질기게 지속되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또한 역사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 해석투쟁의 장이라지만, 이렇듯 천박하게 굴어도 좋은 것일까. 인간이기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조롱하고, 괴물이기를 자임해도 좋은 것일까. 괴물과 벌이는 해석투쟁은 고단하며, 자괴적이다. 그리하여 냉소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다 지난 일이고, 남의 일일 뿐이다.

"사진은 단지 죽어 있는 것을 전달해 줄 따름이다." (Odilon Redon)

오월에 죽은 이들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얼굴로 전달해 줄 따름이다. 오랜 세월에 녹아버린 그의 얼굴을 담은, 사진의 몫은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누구의 몫인가.

ⓒ 노순택
☞ <서른번째 레퀴엠> 사진 더보기: www.image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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