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국책사업이자 첨예한 환경 현안인 천성산 경부고속철도 관통 터널. 1백일이 넘는 지율스님의 단식을 통해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된 곳이기도 하다. 올 6월 초부터 정부와 천성산 대책위는 3개월간 천성산 환경영향공동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 뜨거운 현장인 천성산은 과연 어떤 곳인가?
많은 논란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천성산, 환경단체 녹색연합의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배낭을 메고 흙먼지 날리는 천성산 녹색 순례길에 나섰다. 순례단은 5월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 동안 천성산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로 했다. 프레시안과 녹색연합은 이 순례길을 10일 동안 생생한 현장 르포로 <프레시안>을 통해 연재한다. 편집인.
햇살은 따스한 봄볕에서 이글거리는 여름 뙤약볕으로 변해간다. 순례단의 출발 지역인 울주군 웅촌읍 일대는 농번기라 아침부터 경운기와 트랙터의 요란한 소리를 시작으로 논두렁 곳곳에서 물꼬가 열렸다. 사방으로 펼쳐진 논바닥에는 예외 없이 물이 가득 고여 있고 모내기를 이미 마친 곳도 있다.
순례단이 하룻밤을 신세진 은현리 덕현마을도 아침 일찍 들일을 나가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은현리 이장님께도 하룻밤 고마움의 인연을 잠깐 인사로 나누었다. 그리고 이장님도 논으로 나가셨다. 서울에선 출근도 이르다할 아침 7시 무렵, 주민들이나 순례단은 이미 하루의 채비를 마치고 나서기 시작했다.
***개발 광풍에도 변함없는 정족산 자락**
울주에서 양산으로 넘어가는 발걸음은 농번기의 농민들처럼 다부지고 힘찼다. 울주 쪽의 천성산에 해당하는 정족산 자락은 다행히 옛 모습에서 그렇게 많은 변화를 찾을 수 없었다. 간간히 전원주택도 들어오고 작은 창고 건물들도 들어왔지만 그래도 산림과 농지가 어우러진 모습 그대로였다.
군데군데 농지사이로 40년 이상 된 숲들도 그대로 남아 있다. 느티나무와 상수리를 비롯해 신갈나무, 벚나무,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광은 그 그늘 아래로 그대로 빨려들고픈 마음이 절로 드는 풍경이다. 마을 가운데 혹은 논바닥 사이에 이렇게 숲이 있었던 시절이 그다지 멀지 않았던 우리네 모습이었지만 남쪽지방 울산과 양산뿐만 아니라 멀리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에서도 이제 이런 모습을 쉽게 보기는 힘든 시절이 되었다.
***법수계곡 기암괴석 위협하는 개발 흔적들**
울주를 넘어서면 양산이다. 이곳부터 정족산쪽 천성산은 뒤로하고 제대로 된 천성산의 핵심구역으로 접어들었다. 그 동쪽 자락이 양산시 웅상읍 일대다. 군과 시의 차이인지, 양산으로 접어들고부터는 공장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울러 아파트도 서서히 가까워진다. 논은 적어지고 공장과 택지가 들어서고 있다. 천성산이 개발의 손길에 휘감기는 곳이 바로 웅상읍 쪽의 양산이다.
미타암과 무지개폭포가 어우러진 법수계곡의 기암괴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개발의 흔적들이 밀려들고 있다. 난개발은 양산 시청이 선두에 서고 있다. 천성산 산자락까지 파고드는 아파트 건설을 2016년까지 연차로 허가한 것이다. 이런 내용은 양산시 도시계획에 자세히 반영되어 있다. 현재 웅상읍의 평산리, 주진리, 소주리 같은 천성산 산자락에는 새진흥, 선우, 봉우, 대원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용인, 화성 같은 수도권 인근 경기도에서 벌어졌던 난개발의 광풍이 천성산 자락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주능선으로 올라가는 임도의 진입로 근처에 영산대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이 대학도 천성산의 터널 현안이 처음 제기될 즈음에는 남의 일처럼 여기고 무관심했으나 최근에는 터널공사로 인한 진동으로 대학건물에 영향을 입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법적 대응책까지 검토 중이라 한다.
영산대학교가 자리잡고 있는 해발고도와 비슷한 고도로 산자락의 중간 허리쯤에 또 다른 터널공사가 진행 중이다. 원효터널의 사갱이다. 원효터널은 고속철도가 다니는 터널이라면 사갱은 본 터널의 유지관리와 비상시 대피를 위해 터널 중간 부분에서 옆으로 뚫고 들어가 본 터널과 만나게 되는 곳이다. 길이는 9백31m, 터널의 크기는 폭이 약 8m 가량 된다. 덤프트럭이 교행할 정도라 한다. 이런 터널이 13.2km에 달하는 천성산 원효터널에 3개소가 연결된다. 그래서 천성산에는 5개소의 터널 입구가 생기는 것이다. 환경훼손 논란 때문인지 터널의 진입부 둘레의 절개지에 대한 녹화공사에 한창 땀을 흘리고 있다.
***법수계곡, 천성산 계곡 중 가장 비탈 급하고 험한 곳**
사갱터널 공사 현장 아래쪽의 숲은 위쪽의 공사현장과는 달리 30년은 족히 넘을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점심밥을 나누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이른 아침부터 뙤약볕에 만만치 않은 다리품을 팔았던 순례단원들은 도시락을 한 숨 배씩 돌리고는 저마다 그 자리에서 큰대자로 뻗어서 하늘을 가린 소나무 숲에 온몸을 맡겼다.
산자락을 계속 따라가는 여정은 선선함과 뜨거움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숲 속으로 들어가면 옅은 서늘함마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숲이 사라진 나지나 택지 쪽으로 나가면 뙤약볕이 비지땀을 쥐어짜기 일쑤였다. 웅상읍 주진리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였지만 순례단은 어렵지만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길을 택했다. 바로 법수계곡을 이리저리 타고 올라 무지개폭포 근처에서 미타암 쪽으로 빠지는 길이다. 이 근처에 수직 3백m 아래에 원효터널이 지나간다. 법수계곡은 천성산 계곡 중 가장 비탈이 급하고 험한 곳이다. 곳곳에 암봉과 암릉이 펼쳐지고 돌무더기가 지천으로 깔려있다. 그래서 경관도 탁월하고 계곡물도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천성산의 또 다른 모습이 바로 바위와 숲이 어우러진 모습이다. 계곡의 절정은 법수계곡 일대다. 발아래 확 트인 조망권에 웅상읍 일대의 아파트와 택지, 그리고 마지막 남은 농촌이 애잔하게 눈에 들어온다. 개발의 열풍이 천성산 발아래에서 산을 위협하고 있다.
지율스님이 터널을 반대하면서부터 천성산 지킴이로 나선 것은 아니다. 오히려 1999년부터 아니, 이전부터 천성산의 난개발에 가슴아파하고 분노하며 현안들을 해결해오다 마지막 마주친 장벽이 고속철도 터널이었다. 천성산의 논란은 비단 천성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용인에도 있고, 화성에도 있고, 백두대간에도 있고, 갯벌에도 있다. 우리가 살고 이 시대의 피할 수 없는 논란이 다만 천성산으로 모여 솟아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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