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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명들에게 물어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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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명들에게 물어보았는가"

천성산 녹색순례 <3> 공사 한창 중인 개곡리를 지나면서

대표적인 국책사업이자 첨예한 환경 현안인 천성산 경부고속철도 관통 터널. 1백일이 넘는 지율스님의 단식을 통해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된 곳이기도 하다. 올 6월 초부터 정부와 천성산 대책위는 3개월간 천성산 환경영향공동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 뜨거운 현장인 천성산은 과연 어떤 곳인가?

많은 논란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천성산, 환경단체 녹색연합의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배낭을 메고 흙먼지 날리는 천성산 녹색 순례길에 나섰다. 순례단은 5월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 동안 천성산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로 했다. 프레시안과 녹색연합은 이 순례길을 10일 동안 생생한 현장 르포로 <프레시안>을 통해 연재한다. 편집인.

***5월20일, 천성산 녹색순례 3일째**

경남 양산시 동면 개곡리.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이미 붉은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순례단의 머리 위에선 60번 국도를 잇는 다리 공사가 산봉우리 높이만큼이나 솟아 있었다. 다리를 머리 위에 이고 사는 마을이었다. 왼쪽 편에선 하늘 향해 솟아오른 송전탑 공사가 이어지고 있어 굵은 철근이 하늘을 어지럽게 수놓고 있었다. 오른쪽 편에선 천성산 구간 고속철도 터널공사의 마무리 구간인 개곡리 공사가 한창이라 포클레인 바퀴 아래 붉은 흙과 돌이 흩뿌려져 있었다. 말 그대로, 보는 그대로 현기증 나는 공사마을이었다. 개곡리에서 고속철 공사가 진행되면서 마을에선 터널 발파 진동으로 건물 곳곳에 굵은 금마저 생겼다.

노트북이 생기면서 일하기 참 편해졌다 한다. 컴퓨터를 들고 다닐 수 있게 되니 어느 곳이든 사무실이 되고, 많은 자료를 늘 들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어디서든 일을 하게 된다. 늘 일만 하게 된다. 일과 쉼의 구별이 없어져 언젠가부터 더 피곤해졌다. 고속철을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반에 도착하면서 '꿈의 시간혁명'이 이루어졌다고 좋아들 한다. 예전에는 서울에서 부산 출장을 다녀오면 꼬박 하루가 걸려 다음날 출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일을 해야 한다. 빠른 고속철을 타면 여유가 생길 것이라 기대했는데 왠지 마음만 더 바빠졌다. 고속철을 타려면 새마을호 기차보다 돈도 더 내야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빨리 도착해서 그 남은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빠른 고속철을 타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건 아닌가?

천성산 터널을 둘러싼 논란거리는 세 가지다. 터널을 완공 뒤에도 수천 년 고층습지가 그대로 물기를 머금은 채 남아 있을 것인가? 고속철이 달릴 때도 경남지역 주민들의 마실 물인 계곡수가 지금처럼 흐를 것인가? 세 번째 여러 활성단층으로 이루어진 천성산이 구멍이 생긴 뒤에도 안정되게 유지될 수 있는가이다. 정부와 고속철도공단, 공사업체, 지율스님과 환경단체의 주장이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고속철도가 지나간다고 마을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쉽지 않은 이 세 가지 주제를 마음에 담고 녹색순례단은 양산시 웅상읍 주진리 마을회관을 출발해서 다시 천성산 자락으로 접어들었다. 장흥저수지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천성산 언저리를 걸으며 터널공사의 마지막 구간인 개곡리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천성산 공사의 핵심인 물과 터널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그 맑은 물길을 따라 걸었다. 이 깊은 산 어느 곳에서 물을 머금었다 내뿜는 것인지 차고 맑은 물이 계곡으로 쏟아졌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으니 물소리가 숨 막혔다.

아래로 아래로 세차게 쏟아지는 이 물은 장흥 저수지와 법기 저수지에 머물렀다. 양산과 부산지역 마실 물로 이어진다. 천성산 둘레인 저수지가 40여 곳이 있는데 예전부터 부산·경남지역 식수원으로 써 왔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맑은 물길을 앞에 두고서도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씻을 수도 없고, 손수건을 씻어서도 안 되고, 발을 담궈서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계곡물은 오직 한 모금 고맙게 마시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발길을 돌렸다. '오늘 한번인데, 내가 한번 더럽힌다고 해서 뭐 큰일 나겠어', 하는 마음이 한번 싹 트면 물줄기 전체가 오염되는 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위태위태한 바위를 지나 서로 손을 끌어주어야 넘을 수 있는 언덕을 지나 느릿느릿 자연의 속도로 걸었다. 연둣빛 고운 싹에 기운이 올라 초록으로 꼿꼿이 서는 풀, 두 사람이 조용히 걸어갔을 오솔길, 푸른 하늘 흰 구름도 쉬어가는 오월 신록의 숲을 지나 꿈길을 걷듯 걸어만 갔다. 웅상읍 아파트단지 뒤편에서는 건물을 짓기 위해 아름드리나무를 베어낸 벌목현장도 보았고, 다시 개발의 손길을 기다리느라 쓰레기만 어지러운 공터도 보았다. 정족산, 원효산, 천성산을 가운데 두고 띠를 두르듯 공장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거미줄처럼 도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마음에 차지 않았는지 산 가운데 구멍을 뚫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13.27km 터널을 뚫고 있다. 그 긴 터널을 완공하기 위해 산 가운데 본 터널과 이어지는 9백m 사갱을 뚫느라 산허리 곳곳에도 구멍을 뚫고 있다. 산을 울리는 폭발음이 들리고, 바위와 흙을 실어 나르는 대형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분주하게 내달렸다.

개곡마을은 대구-경주-울산-부산을 잇는 경부고속철도 터널 구간의 마지막 구간으로 터널이 시작되는 원효터널을 향해 공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 공사 초기에 지율스님이 1백일 가까이 현장농성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금 공사는 9~10% 정도 진행 중이라 했다. 개곡마을은 고속철 공사 뿐 아니라 법기리와 양산시로 이어지는 60번 국도공사가 한창이라 마을로 들어오는 작은 산 가운데 하늘높이 콘크리트 다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고속철은 바로 그 아래에서 부산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옆에는 생산한 전기를 울산과 부산 같은 도시로 이어주는 송전탑 철골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었다. 국도와 고속철이 계획되면서 원래 있던 낮은 송전선을 옮기는 '선형이동' 공사중이었다. 작은 산 아래 나지막하게 자리잡은 마을은 이런 많은 공사 덕분에 한눈에 보기에도 마음이 어지러웠다.

고속철이 지나가고 국도가 이어진다고 해서 마을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게 아니라 그 소음과 먼지만 고스란히 뒤집어 쓸 형편이 되었다. 붉은 흙이 맨살을 드러낸 듯 파헤친 공사현장 바로 옆에서 채소를 기르느라 잘 다듬어진 밭이 서글퍼 보였다. 천성산 관통터널이 완공되면 22분이 더 단축되어 대구에서 부산까지 더 빨리 닿을 수 있다고 한다. 22분을 줄이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참고 고통받고, 너무 많은 뭇 생명들이 희생하고 있다. 봄기운이 한창 무르익어 여름의 더운 기운으로 머무는 오월 끝자락, 순례단은 생명의 속도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생명의 속도는 기다릴 줄 아는 것, 그리고 생명가진 모든 것들을 진정으로 배려할 줄 아는 게 아닐까?

***"천성산의 진정한 주인들은 개발을 허락한 적 없다"**

순례 3일째, 흙먼지 날리는 길을 발바닥이 얼얼해지도록 걸으면서 우리는 다양한 생명들을 만났다. 사람을 피해 풀숲으로 스르르 사라지는 유혈목이와 독사, 언제 들어봐도 '홀딱 벗고, 홀딱 벗고'를 외치는 검은등뻐꾸기와 직박구리, 푸른 하늘 가운데 바람을 가르며 유유히 날아오르는 붉은배새매, 느릿느릿 반달팽이, 신갈나무와 물푸레나무가 뜨겁게 껴안아 이제 한 몸이 되어버린 모습, 물기 머금은 보드라운 땅을 빼곡히 채워버린 조릿대, 쪽동백, 때죽나무, 오동나무, 층층나무…. 그 아래에서 수줍게, 때론 소담스럽게 앉아 있는 얼레지, 삿갓나물, 족도리풀, 꿩의다리….

꼬리치레도롱뇽이 산다고 해서 유명해진 천성산에는 도롱뇽뿐 아니라 그들의 다양한 친구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풀잎 뒤에 그늘을 즐기는 온갖 곤충과 우리 발길에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수많은 벌레들. 천성산의 본래 주인은 이렇게도 많았다. 사람의 눈과 마음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명들이 있었다. 본래 이들의 땅이고 보금자리이고 고향인 천성산에 터널을 뚫으면서 이들에게도 물어 보았는가? 큰 구멍을 뚫고 요란한 소리를 내지르며 사람들이 마구 내달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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