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손길이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법기 저수지"**
천성산의 진면목은 산속 깊은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자락 여러 생태보고와 아름다운 풍광이 곳곳에서 우리를 반긴다. 천성산의 이 아름다움은 자연 스스로가 빚은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손길이 빚은 뒤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더 자연스러워진 곳도 있다. 바로 법기 저수지다. 천성산 녹색순례단의 4일째 아침은 법기 저수지에서 시작되었다. 양산시 동면 법기리 골짜기 끝에 규모가 제법 되는 큰 저수지, 부산 금정구 일대의 식수를 공급하는 상수원이다. 1927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농사용으로 물을 쓰기 위해 설계하고 공사했다.
댐으로 물을 가두기 전에는 상류에 몇몇 사람들이 살았는데 지금은 산에서부터 저수지까지 사람이 살지 않아 오염이 없다. 1927년 9월에 착공해서 1932년 완공했으며, 마을사람들이 지게를 지고 흙과 돌을 날랐다. 저수지 아래에는 물을 머금고 있을 수 있도록 6백92그루 나무도 심었다. 편백나무, 히말라야시다, 소나무 같은 나무들이 80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아름드리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물은 인근마을의 농사용으로 공급하고 있고, 부산시 금정구 청룡동 일부 사람들이 마시고 있으며 공업용수로도 쓰고 있다. 담수량은 1백57만t이고, 하루에 최고 8천t을 흘려보낸다. 저수지에는 겨울 철새들이 쉬어가고, 원앙도 살고 있다. 2004년 4월 무렵에는 원앙 서식지가 천성산 고속철도 환경영향평가서에 누락되었다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법기 저수지는 상수원이라는 고유의 기능은 물론이고, 생태교육장으로 손색이 없다. 상수원보호 때문에 전면개방은 어렵고 미리 예약하여 방문하는 수고를 거쳐야 하지만 양산과 부산은 물론 울산까지 포함하여도 이런 데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저수지의 둑 아래에 울창한 숲은 물론이고 수변을 따라서 이어진 소로길도 우리의 가슴과 발길을 잡는다. 저수지 둘레에는 그 어떤 상업시절도 없고 오직 숲과 물이 만나는 풍경만이 어우러져 혹 태고부터 자연이 빚은 호수가 아닌가 착각이 들곤 했다.
***"천성산 주능선 낙동정맥을 넘어"**
법기 저수지를 꼼꼼히 살펴본 순례단은 천성산의 맨 남쪽권역에 해당하는 산자락을 넘었다. 해발고도 3백m 내외의 낮은 고갯길이지만 그 고도와는 달리 의미와 가치는 영남 땅 전체에서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낙동정맥이다. 백두대간 태백산에서 시작되어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생태축이자 생명의 중추가 바로 낙동정맥이다. 간단히 표현하면 영남의 백두대간이다.
우리 땅은 한반도는 남북으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이 있고 여기에 다시 사방으로 뻗은 13개 정맥들이 있다. 낙동강과 조화를 이루며 경상남북도를 아우르는 중심산줄기가 바로 낙동정맥이다. 천성산이 그저 하나의 산으로서 생태가치에 머무르지 않고 지형지리면에서도 깊은 의미를 내포하는 중요한 까닭도 바로 천성산의 주능선이 낙동정맥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천성산의 북쪽 정점에서부터 정족산, 남쪽 끝자락까지 모두 낙동정맥의 주능선이다. 그래서 천성산은 영남 땅 전체를 아우르는 생태보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순례단은 양산시 명곡동과 동면 법기리 사이의 가장 낮은 고갯길인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고갯마루에서 낙동정맥의 주능선을 따라 올랐다. 비록 무명봉이지만 둘레 조망이 한 눈에 들어오는 5백34봉까지 한 달음에 올랐다. 여기에서 다시 1km 이상 낙동정맥을 따라 걸으니 멀리 천성산의 정상봉인 원효산은 물론이고, 법기저수지의 상류에 해당하는 계곡도 한 눈에 들어온다. 천성산의 본 산마루에 오르자 남쪽으로 금정산이 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영남알프스의 산줄기가 들어온다.
***"11km 지방도로 건설에 1천5백억원이라니…"**
천성산은 어디든 주능선에 서면 산세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천성산의 아픔과 고뇌 역시 느낄 수 있다. 순례단이 낙동정맥의 마룻금이자 천성산의 주능선에 올랐을 때도 이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한번에 느낄 수 있었다. 천성산의 고민이 고속철도만은 아니다. 지난 몇 년 사이 많은 개발사업이 천성산 자락으로 밀려들었다. 아파트와 공장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도로와 골프장 같은 생태계를 아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업들이 줄지어 천성산 자락을 파고들었다.
이 중 도로건설은 천성산을 가장 훼손하고 왜곡한 사업이다. 천성산 자락이자 낙동정맥 한가운데인 양산시 명곡동-동면 사이에 4차선 지방도로건설이 한창이었다. 양산시 시내와 동면간 도로공사다. 건설되는 도로의 전체 길이가 11.43km이며, 터널만 2,126km, 총사업비가 1천5백71억이나 되는 대규모 토목공사다. 또, 11km 지방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1천5백억 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4차선도로를 만들다 보니 2km나 되는 터널이 겹으로 뚫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지방도로는 마치 고속도로처럼 건설한다. 2차선도 아니고 4차선으로 건설하며 터널도 뚫곤 한다. 그것도 2km나 되는 장대터널이다. 유럽 사람들은 일본을 토건국가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토목과 건설을 만능으로 여기는 일본사회에 대한 조롱과 비웃음이 담긴 표현이다. 그런 일본마저도 이런 식으로 도로를 건설하지는 않는다.
경제가 어렵다는데 국민의 혈세를 1천억 원 이상이나 11km 도로를 건설하는데 쏟아붓는 나라의 경제가 정말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서민들의 경제는 어려워도 관리들은 국가의 세금을 내 돈이 아니니 마구 쓰고 보자는 심보인지 알 수 없다. 천성산의 남쪽을 절단하는 도로공사는 고속철도 빰칠 정도로 무리한 절개지와 터널 공사들이 이어진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천성산은 대형토목 공사 때문에 너무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산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변화와 위기를 호소했던 사람이 바로 지율스님이다. 제발 천성산을 그대로 두라는 바람은 스님이나 순례단이 다를 리 없다. 천성산을 그대로 두라, 아름다운 천성산을 제발 그대로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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