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녹색순례 7일째, 천성산의 절정 내원사 계곡**
천성산 주능선을 걸었다. 벅찬 감흥의 달빛을 받았던 안적암을 뒤로 한다. 순례단은 원효산을 향하여 천성산의 등줄기를 이어간다.
정족산부터 원효산 정상까지 천성산 주능선의 임도가 개설되어 있다. 1990년 초반부터 1997년까지 양산시청이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 개설한 도로다. 중간에 차량진입을 막는 차단막이 있으니 물론 열려 있다.
천성산의 난개발 주범에 결코 뒤쳐질 수 없는 이들이 양산시청이다. 오늘의 지율스님이 고속철도 터널 논란의 중심이라면, 어제의 지율스님은 양산시청의 불법적인 산림훼손에 대한 대응이었다. 2000년 당시 지율스님은 천성산의 대표적 지역주민이자 역사의 증인인 내원사의 산감이었다. 우리 전통 사찰에는 사찰림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소임이 따로 있었다. 이 직책을 산감이라 하였다. 주지스님, 총무스님, 재무스님 등이 있듯이 큰 절집에는 산감이 있었다. 이 직책을 가장 충실하게 수행하던 결과가 네 번 단식과 나라 전체를 뒤흔든 고속철도 논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가장 자신의 직분에 열심히 살았던 결과가 정부 주도의 국책사업과 불협화음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원효산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가다보면 중간에 숲으로 가려진 작은 골이 있는데 이곳이 밀밭늪이다. 무제치늪, 화엄늪과 함께 천성산을 대표하는 고층습원 중의 하나다. 두 곳은 법적 보호지구로 지정되었으나 밀밭늪은 지정되지 않았다. 순례단원들이 40여명 가까운 인원이라 이탄층이 있는 늪 안으로 들어가면 혹여 훼손으로 이어질까 이탄층 바깥쪽에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언제 설치했는지 현대건설과 철도공단에서 모니터링을 위한 굵은 파이프와 측정시설이 있다. 일부 훼손도 이어졌다. 과연 제대로 모니터하는지 궁금하다.
천성산이 국내의 대표적인 고층습원이 자리잡은 산이지만 환경부에서 제대로 관리하는지 의문이다. 고층습원의 기본적인 생성원리를 비롯하여 이탄층에 대한 어떤 설명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들어가지 말라, 라는 위압적이고 단순한 안내판 세 개 정도가 고작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없으면 몰라도 휴일이면 등산객들도 제법 찾아온다. 하지만 왜 고층습원이 국가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하여 엄격하게 제한하고 관리하는지 제대로 설명이 되어 있지 않고 적극적인 교육과 홍보도 없다. 오히려 지율스님의 네 번에 걸친 단식을 통해 비로소 막연하게 고층습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환경부는 이 대목에서 정말 반성해야 한다. 예산이 없다는 변명 이전에 자연의 입장에서 시민의 입장에서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2 천성산으로 알려진 봉우리에서 원효산 정상을 바라보며 내원사와 주변의 여러 계곡을 관찰하였다. 원효산 바로 아래 턱밑까지 다가갔으나 하늘은 순례단에게 '오늘의 접근은 미루라' 하였다. 화엄 늪은 변화무쌍한 날씨로 인해 내일로 미루고 바로 아래에서 바로 내원사 계곡으로 내려갔다.
5월이 깊어가는 내원사 계곡은 천성산 식생의 진수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굴참나무를 비롯하여 서어나무, 신갈나무, 고로쇠나무, 층층나무, 산벗나무, 노각나무 등의 남부지방 산림생태계의 전형을 구현하고 있었다. 순례단 앞에는 마치 '천성산의 울창한 숲은 이런 것이야'라고 훈계하듯 바람에 흔들려 더욱 생물다양성이 도드라지는 숲이 펼쳐지고 있었다.
계곡을 내려다보이는 바위조망대에 서면 다양한 수종의 활엽수들이 형형색색 푸름을 뽐내고 있다. 특히 팥배나무에 꽃이 피어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계곡이나 사면을 뒤덮은 숲의 중간 중간 한 다발 하얀꽃처럼 점점이 흔들리고 있다. 천성산의 진면목은 주능선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접어드는 내원사 계곡과 노전암 계곡 쪽이다. 이 골짜기 안에 공룡능선을 비롯한 주요 암릉도 날이 서 있으며 곳곳에 희귀동식물이 터를 잡고 있다. 서어나무 군락이 인상적이다. 백두대간이나 국립공원 등의 산림생태계 우수한 곳에 나타나는 울창한 서어나무의 무리가 계곡을 따라 길게 분포하고 있다. 단단한 근육질과도 같은 서어나무의 힘있는 줄기를 가진 서어나무 숲이 이끄는 천성산 계곡으로 내원사를 향해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그러나 내려가는 중간에 안타까운 현장을 목격했다. 천성산 곳곳에 등산로로 인한 산림훼손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산, 울산, 양산 등 대도시에서 휴식과 여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천성산을 찾지만 이에 걸맞는 산림관리 시설의 부재로 등산로 중 곳곳이 침식과 토양유실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관리기관인 경상남도나 양산시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천성산 일대도 상당한 면적이 가지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도립공원 수준에 걸맞는 실질적인 관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천성산의 자연생태계는 국내 어떤 산지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관리상태는 전국의 어떤 산에 비교해도 손색이 많다. 많은 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천성산을 이대로 둘 것인지 최소한의 훼손을 막을 수 있는 관리대책과 이미 훼손된 곳에 대한 생태복원이 절실하다.
드디어 내원사 도착했다.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비구니 선방 내원사. 경남 양산시 상북면 용연리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 천성산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지킴이다. 천성산 핵심지역의 반 이상이 내원사 땅이다. 그러나 자신의 소유권에 집착하지 않고 자연과 산림의 보전을 위해 사찰림 전체를 국가에 내놓았다. 바로 보전지구로 지정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일언반구 반응이 없었다. 요즈음 그 누가 자신의 땅을 보호지구로 지정해 달라고 하는가. 이는 거의 사유권의 포기나 다름없다. 한국적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의 전형이다. 이런 내원사의 자기희생적인 중심에 주지인 혜등스님과 지율스님이 있었던 것이다. 신도를 받지 않고 포교보다는 수행에만 전념하는 전통이 1천년이 넘는 내원사의 기풍이다.
절집을 둘러쌓고 있는 곳곳이 원효대사의 역사와 전설이 서려있다. 내원사는 울창한 숲과 천연의계곡이 둘러쌓고 있다. 하늘에서 보면 그 위치의 절묘함에 원효대사의 혜안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녹음을 담고 있어 절집의 은은함을 더해 준다. 내원사를 방문하는 이들은 누구나 이런 기운에 젖어든다.
내원사는 거느리고 있는 암자도 만만치 않다. 성불암과 금봉암을 비롯하여 금강암, 안적암 등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면 위치와 분위기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금봉암의 탁월한 조망과 성불암의 휘어돌고 있다. 금봉암은 천성산의 변화무쌍한 능선과 골 깊은 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불암은 시리도록 푸른 계곡물을 거슬러 들어가면 가파른 비탈에 절묘하고도 아름답게 공존하고 있다.
이렇게 깊고 푸른 절집 내원사가 우리사회의 가장 첨예한 화두를 부여안은지 5년이다. 내원사 앞마당에서 천성산의 주능선을 바라보며 생명과 개발의 공존이 무엇인지 한없는 질문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천성산 녹색순례 8일째, 천국으로 가는 길 '화엄늪'**
내원사에서 화엄늪으로 가는 길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다. 신갈나무숲에서 서어나무숲으로 변해가더니 소나무와 털진달래, 철쭉이 나타나다 갑작이 초지대의 드넓은 벌판이 눈앞에 펼쳐지니, 거기가 곧 천상의 세계 화엄벌이다. 이곳은 원효대사의 역사와 전설이 곳곳에 베어있다.
천성산(千聖山)의 이름도 천명의 성인이 화엄벌로 모였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화엄벌 앞에 서니 천명의 성인이 모였고 여기에서 원효대사가 설법을 했다는 전설이 실감이 난다. 원효산 정상부터 아래의 환경청 초소까지 길게 이어진 능선부 안으로 펼쳐진 늪에는 이삭귀개, 끈끈이주걱 등 온갖 희귀식물이 사는 남한 최고의 산지늪원이다. 물론 고층습지의 가치로 따지면 민통선의 대암산용늪이나 지리산왕등재가 더 탁월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역사적 의미나 경관적 가치는 화엄늪이 으뜸이니, 가히 남한 최고의 산지늪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늪은 하늘에서 보면 의외로 작아보이지만 화엄늪은 하늘에서 봐도 그 크기나 펼쳐진 풍광이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오늘 다시 순례단이 화엄늪에 올랐을 때 날씨가 좋아 다행히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2004년 3월에 발생한 산불로 소나무와 일부 관목류들은 아직 회복이되지 않았다. 특히 털진달래와 철쭉은 이제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습지 안쪽의 초본식물들은 거의 회복되었다는 사실이다.
화엄늪이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것은 지난 2002년이고 이 지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지율스님이다. 2000년부터 양산시청이 화엄늪에서 철쭉제를 비롯한 어이없는 행사들을 하는 바람에 내원사가 근심이 많았다. 이에 지율스님과 녹색연합이 공동으로 양산시청의 화엄늪 유원지화에 대응하면서 환경부에 강력한 보전대책을 요청하였다. 이 결과 환경부도 습지의 생태적 가치에 주목하여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한 것이다.
그런데 화엄늪에는 새로운 근심이 하나있다. 습지 바로 위쪽 원효봉의 대인지뢰 문제다.
지율스님의 단식과 고속철도 터널논란으로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천성산에 대인지뢰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적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천성산 정상인 원효봉 일대에는 대인지뢰가 매설되어 있었다. 과거 공군이 후방지역 방어를 위해서 전국에 36개의 주요 방포기지에 대인지뢰를 매설했다. 주로 나이키 미사일을 보유한 기지였다. 지금은 나이키 미사일이 고물취급을 받아서 이들 기지들이 통폐합되거나 축소 조정중이다.
특히 지난 1999년부터 녹색연합과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가 공동으로 대인지뢰반대 캠페인을 하여 정부도 후방지역대인지뢰는 제거하기로 했다. 현재 국방부는 천성산 정상도 대인지뢰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대로 꼼꼼히 전부 제거를 못했는지 아직도 위험하다는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양산시청과 공군이 공동으로 설치한 안내판에는 '지뢰를 제거했으나 아직 안심할 수 없으니 안전에서 주의하라'라고 되어있다. 정확히 말하면 지뢰를 제거했지만 완전한 제거인지는 장담을 못하니 안전은 국민들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말이다. 지뢰가 많기로 유명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같은 말이다.
한국의 대표적 기업인 삼성은 기업의 사회공헌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분쟁지역에 지뢰피해자를 돕는 사업을 할 정도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후방지역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해 놓고도 안심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국방부의 수준과 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 군의 지뢰의 매설은 잘해도 제거하는 기술이나 능력이 부족하면 예산을 들여서 영국이나 독일, 미국, 스위스 등의 국제적인 지뢰제거 기술을 보유한 나라들과 협력하면 된다. 특히 대인지뢰에 관해서 제거에 관련한 사항은 유엔의지뢰대책기구에 최종검증과 사찰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정부가 이런 흐름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정책을 추종한 결과다.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지뢰금지협약을 가입하지 않은 나라다.
우리 정부는 미국을 따라간 결과 지뢰문제에 있어 아프리카분쟁국이나 아프가니스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 생생한 현장이 천성산의 정상인 원효봉 일대다. 지뢰제거하기 위해 외국의 전문가를 찾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대표적 생태보고 언저리에 대인지뢰가 완전히 제거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부끄러운 것이다. 천성산의 대인지뢰는 유엔의 사찰을 통해 완전히 제거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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