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지사 선거판을 좌우할 시간은 이제 닷새 남았고, 앞으로의 '레이스'는 진보신당을 제외한 '야권 단일후보'인 유시민 후보의 '추격전'으로 요약됐다.
여론조사 공표 기간 마지막 날인 27일 언론이 일제히 쏟아낸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는 유시민 후보를 넉넉한 차이로 따돌리고 1위를 고수했다. 그러나 "방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김문수 캠프의 반응이었다. 유시민 캠프는 MB정부 심판 여론, 천안함 사태에 대한 역풍, 그리고 민주당 지지층 흡수 효과가 더디게 반영될 뿐 '뒷심'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변수가 하나 있긴 하다. 유시민 후보와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의 단일화다. 그러나 낙관적이지는 못하다. 이를 제외하면 더 이상 변수가 될 이슈가 새로 튀어나올 일이 없다는 것이 양 캠프의 공통된 분석이었다. 천안함 사태, 노풍, 후보단일화 효과, 무상급식 등 굵직한 이슈는 굳건한 여야 지지층에게 모두 어필한 상태다. 문제는 그 효과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 여부다.
▲ 왼쪽부터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 ⓒ뉴시스 |
"천안함은 국제 이슈" VS "안보무능·전쟁세력 MB"
김문수 후보는 이날 케이블연합회가 주관 TV 토론회 모두 발언을 통해 "통일 시대를 열어가는 경기도를 위해 국방안보를 튼튼히 하는 동시에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태를 언급하며 북한을 앞장서 비난하던 평소 태도에서 확연히 달라진 뉘앙스였다. 반면 유시민 후보는 이번 선거를 "전쟁 세력 대 평화 세력"으로 규정하고 "한나라당에게 투표하면 전쟁으로 갈지 모른다.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안함 이슈 부풀리기를 통한 '북풍'은 유독 경기도에서 기승을 부렸다는 평가가 많다. 유 후보가 정부의 천안함 사태 진상조사 결과에 의구심을 표하자 김 지사를 비롯해 한나라당 지도부는 "국가관이 의심스럽다"며 처음부터 맹공을 폈기 때문이다. 또한 경기도가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천안함 이슈는 애초에 경기도의 이슈이기도 했다.
김 후보 캠프 관계자는 "북풍이 역풍이 될 가능성은 적다. 천안함 사태는 우리나라에서 빚어지는 현상이라기보다 국제 사회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떠들썩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몽준 대표가 '천안함 정쟁 중단'을 선언한 이후 나타난 변화다. 천안함 사태를 '국내 안보 문제'가 아니라 '국제 문제'로 확산시키는 것은 또한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의 주장이기도 하다. 이는 '안보 무능'에 대한 국내 비판 여론이 거세지는 사태를 경계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이 관계자는 그간 지지율 상승 이유로 "천안함 사태의 영향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면서도 향후 이 이슈를 무리하게 끌고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우리는 '북풍'과 차별화를 시킬 것이다. 안보와 북풍은 다르다. 안보 쪽에 방점을 찍고, 북한 동포들의 문제 등을 부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유시민 후보는 반면 이를 적극 활용해 MB 정부의 '안보 무능'과 함께 "한나라당=전쟁 불사 세력"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각인시킨다는 전략이다. 유 후보 캠프 관계자는 "이는 안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좁히면 '국방'의 문제다. '안보가 뚫였다'는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무능으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천안함 사태에 따른 충격은 지지율에 반영이 됐다. 남은 기간동안 이명박 정부의 '국방 무능' 그리고 '북풍 몰이'에 대한 역풍이 반영돼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 특별한 변수 없다" VS "마지막 이틀, 지지층 결집할 것"
한나라당의 지지층은 이미 결집했다. 유 후보의 지지율이 김 후보를 위협하는 순간까지 가는 등 요동쳤던 추세를 보인다면 김 후보의 지지율은 그간 큰 기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적다면, 귀추는 유 후보의 지지율 반등 여부로 주목될 수밖에 없다. 야당 성향의 민심을 한데 모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김문수 캠프는 '방송3사', <동아일보>, <한겨레> 등 각종 여론조사에서 12.1%p~17.0%p 차이나는 '상승세'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경기도 선대위 박흥석 대변인은 "대부분 변수들은 다 반영이 됐다"며 "천안함, 무상급식, 김상곤 교육감 효과, 노풍은 오래전에 나온 것들이고, 앞으로 특별한 이슈가 새로 창출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방심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긴장을 놓지 않았다.
김 후보 측은 경기도 주민들과 접촉을 늘려 바닥 민심을 안정적으로 다져가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박 대변인은 "사람들이 김 후보의 서민성, 진정성 등을 많이 알아주는 것 같다. 바닥 민심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특히 김 후보의 '신뢰도'가 어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유시민 캠프 측은 "변수는 다 나왔지만 아직 완전히 반영된 것은 아니다"라며 "남은 선거 기간동안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캠프 관계자는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한나라당에 입당하기 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단일화를 했다가 파기한 뒤 위기감을 느낀 지지층이 즉각 반응했던 사례를 보면, 지지층 결집 효과라는 것은 단기간에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천안함 효과로 한나라당이 재미를 봤겠지만 너무 나가는 바람에 남북관계 경색, 주가 폭락 등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역풍도 반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시민 캠프 김민기 대변인은 "선거 때만 되면 간첩도 잡고 하는데, 그런 '50년 전통'을 이제 사람들은 식상해한다.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표심의 공황'이 있지만 추스르는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는데, 지금 추스르는 도중이고, 이게 아직 표심에 반영이 덜 돼 있다. 앞으로 반영되는 계기는 마지막 주말이 될 것으로 본다"며 "마지막 주말이 가장 중요하다. 이 때 제 2의 '폭발'이 있을 것이다. 충분히 반전을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최후의 '변수'로 남은 진보신당 심상정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 김 대변인은 "그것은 제가 알지 못 한다"고 말했다. 유시민 후보도 27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열어두고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야당의 진로, 유권자들의 요구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심상정 후보가 결정하지 않으면 누구도 이 문제를 풀지 못 한다"고 했다.
부동층, 민주 지지자 결집으로 막판 뒤집기 가능할까?
인계동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50대 남성은 "난 골수다. 물어도 소용없을 것이다. 무조건 파란색이다. 김문수 지사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경기도에 바라는 게 뭐냐'는 질문에 그는 "개발을 너무 많이 해서 경기도가 좀 피폐해진 것 같은데, 앞으로는 쾌적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별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또 다른 30대 시민은 "투표를 할지는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굳이 바꿔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반면 유시민 후보 지지자들은 선거 얘기가 나오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김문수 캠프 사무실이 있는 수원시 영화동에서 유시민 캠프 사무실이 있는 인계동까지 가는 택시 안. 40대 택시기사는 '선거에 관심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마자 "선거, 무지하게 관심 많다. 이번에는 무조건 바꿔야 한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선거는 복잡하더라. 김문수가 1번이고, 유시민이 8번인 것만 기억하는데, 번호 잘 찾아 찍어야겠다"고 했다.
골수 지지층만의 문제라면 김문수 후보가 다소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 후보가 김진표 후보와 단일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층을 전부 흡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40대 여성은 "수원시장은 딱 정했는데, 경기도지사를 누굴 찍을지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시민 씨가 김진표 씨랑 단일화를 하긴 했는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든다. 유시민 씨는 말을 너무 막 하지 않느냐. 바꾸긴 바꿔야겠는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유 후보가 김대중 전 대통령 비판한 부분에 대해 사과했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그랬나? 여하튼 사과할 짓을 왜 했더냐"라고 반문하면서도 "여하튼 투표일에는 무조건 가서 누구든 찍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지역 유력지 정치부 기자인 A 씨는 "경기 북부는 김 후보가 압도적인 것 같은데, 경기 남부 지역은 김 후보에 대한 여론이 썩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남부 지역에서 유 후보에 대한 여론이 '압도적'으로 좋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김 지사가 약간 유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유시민 캠프 관계자는 "움직이지 않고 있는 '부동층'이 20% 정도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이 막판 움직임이 관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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