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기 의견을 가질 수는 있지만, 자기만의 사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올해 3월 초 개최된 연례 미국 임상약리학회에서 초청 연사 중 한 명인 존 기어하트 박사가 강연 중에 한 말이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교수인 기어하트 박사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줄기세포 연구자다. 당연히, 그가 이번 미국 임상약리학회에서 발표한 연제도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였다.
강연 중반에 이르러 기어하트 박사는 활기차고 자신 넘치던 이전의 어조에서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어,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추문이 전세계 줄기세포 연구에 미친 부정적 영향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우리 정부가 황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발간한 기념우표와 이미 <사이언스>가 직권으로 철회한 논문의 제목이 담긴 슬라이드를 보여주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기념우표에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이 벌떡 일어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슬라이드를 가리키며 기어하트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줄기세포 연구자는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 (척수장애자가 휠체어에서 일어나는) 이 상황이 줄기세포 연구가 지향하는 장밋빛 미래인 것은 맞지만, 아직은 가능성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 같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정직한 연구자라면 엄밀한 과학적 성찰이 결여된 일방적 희망을 곧 내일이라도 이루어질 꿈의 기술인 양 부풀려 환자들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결국은 사기극으로 들통난 논문조작을 저지름으로써 마치 줄기세포 연구자들이 허언과 거짓말을 일삼는 삼류 과학자처럼 보이게 만든 황 박사에 대한 서운함이 기어하트 박사의 발언에 배어 있었다.
계속해서 기어하트 박사는 말했다. "누구나 자기 의견을 가질 수는 있지만, 자기만의 사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의견의 울타리 안에서나 통하는 선택과 관점의 자유로움을, 엄밀한 사실만을 기록하고 증언해야 할 과학 연구의 영역에까지 확대한 것이 황우석 박사의 가장 큰 잘못이라는 단호한 언명이다.
그때 그 사람들을 기억한다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가 마침내 발표됐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논문조작만으로도 이 사건은 오래 전에 '게임 종료'를 했어야 할 사안이다. 검찰의 수사 결과는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따라서 황 박사를 아끼던 분들에게는 안된 말이지만, 이제 자신들의 생업에 충실할 때가 됐다.
이 사건 외에도 과학계를 경악케 한 여러 건의 논문조작 추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일반인들이 들고 일어나 거짓말을 반복한 과학자를 옹호하고 나선 예는 일찍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주 저자와 교신 저자로서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논문이 거짓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에 조작의 주모자와 배후를 밝혀 주십사 읍소하고 나선 사람이,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필칭 '최고과학자'로서 각종 연구비 혜택과 영향력 행사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은 또 얼마나 희극적인가? 물론 그 결말은 비극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과학계의 생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야 그렇다 칠 수 있다. 또 논문조작이 사실로 드러나기 전에는 황우석 박사를 두둔할 수도 있었다. 표심의 향방에 주목해야 하는 정치인 중 일부가 이러한 행태를 보인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하지만 사리 판단이 엄정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들이 엄연한 논문조작 사실이 밝혀진 다음에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경제효과와 특허에 매달려 황 박사를 옹호했다는 것은 분명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명색이 진리 탐구를 업으로 삼는다는 대학교수들이 과거 독재정부 하에서나 있을 법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황 박사를 파면한 서울대의 조치를 취하하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비윤리적 난자 채취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그래서 스스로 근신함이 마땅한 의료계에서도 황 박사를 지지하는 정체불명의 집단이 생겨나기도 했다. 또한 앞뒤 재지 않고 황 박사 지지에 올인한 어느 웹사이트의 대표 논객 중에는 내 수련 후배로 짐작되는 의사 선생도 있었다. 명석함이 올바른 사리 판단의 충분조건이 결코 아님을 잘 보여주는 예들이다.
한 술 더 떠 황 박사를 옹호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한 모 방송국의 피디는 내용부실과 법적분쟁의 소지 때문에 해당 프로그램의 방영이 부결됐음에도 이를 언론탄압이라며 방송 테이프를 갖고 잠적했다. 그러면서 남긴 말이 걸작이다. "나는 지금 죽지만 다시 살 것이다." 이 말이 마침 기독교의 부활절을 1~2주 앞둔 시점에서 나온 것은 이래저래 황 박사 사태의 극적 긴장감을 높여주는 절묘한 플롯이 아닐 수 없다.
연구윤리와 절차적 타당성 확보는 왜 중요한가?
도대체 어떻게 하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우리 사회에 잠재된 어떤 속성 또는 성향이 황 박사 사태에 이토록 기형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외연을 형성했을까? 아울러 이 건강하지 못한 사회적 병리 현상을 치유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결국 우리 사회에 남겨진 과제는, 진작에 마무리됐어야 할 황 박사 논문조작 '사건'이 여러 사람의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 '사태'로 확대되기에 이른 이유를 파악해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이다. 또한 이러한 작업은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만큼 황 박사 사태가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친 지계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황 박사 사태는 건전한 담론을 통해 과학적 발견 또는 발명의 효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어떠한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대원칙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특히 이는 과학적 성과의 혁신성이 돋보일수록 더욱 도드라지는 선결조건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는 연구자의 윤리나 정직성과 같은 절차적 타당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에 사회적 혼란은 가중되고, 심지어는 아예 과학적 발견(발명) 자체가 없던 일이 돼 버릴 수도 있다는 뼈 아픈 교훈을 얻었다. 자격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어설픈' 연구자들의 섣부른 시도 때문에 판 자체가 깨져 버리는 상황은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리는 분들께 드리는 마지막 부탁이다. 원하는 것을 부모가 해 주지 않을 때 애가 울고, 발버둥치고, 땅바닥에 뒹구는 것을 정신과 용어로 '지랄침(temper tantrum)'이라고 부른다. 과학적 사실이 떼를 쓴다고 바뀌지 않음을 이제는 받아들일 때도 됐다. 부모의 일관적인 양육태도에 따른 철저한 무시와 엄격함이 지랄침에 대한 가장 좋은 치료법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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