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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노동자들, 최저임금 1000엔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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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본 노동자들, 최저임금 1000엔을 외치다

[최저임금 연속기고 ⑥·끝] 최저임금 1000엔과 1만 원

101만5740원. 아르바이트생들이 최저임금인 시급 4860원을 받고 하루 8시간씩 주 5일을 꼬박 일했을 때 받는 돈이다. 알바연대는 100만 원으로는 살 수 없다며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1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너무 무리한 금액 아닐까? OECD 회원국의 평균 최저임금이 바로 시급 1만 원이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 수준을 고려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프레시안>은 알바연대를 통해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이라는 주제로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20대 아르바이트생 등에게 기고를 받아 6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최저임금 연속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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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첫봄, 2001년 춘투를 기하여 일본의 각 단체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액수의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액수는 지역별 격차 없이 시급 1000엔이었다. 각 단체를 발표 날짜대로 나열하면 수도권청년유니온,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연합), 전국노동조합총연합(전노련) 등의 순이다. 청년 계층을 주 조직 대상으로 삼은 첫 일반노조로 당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청년유니온과 양대 기성 노조의 뉴밀레니엄 맞이는 이후 일련의 흐름을 촉발시킨다. 그 해 일본의 전국 평균 최저임금은 659엔이었다.

일본의 최저임금 책정 방식

먼저 일본의 최저임금 책정 방식부터 살펴보자. 일본의 최저임금은 후생노동 대신과 각 지방의 노동국장이 중앙최저임금심의회와 지방최저임금심의회의 최종 의견을 참고하여 결정한 후 공시를 통해 효력이 생긴다. 노사 양측의 의견서 접수와 의견 청취는 조사 기간에 이뤄진다.

한국과는 다르게 일본에는 지역별, 산업별로 최저임금이 따로 있다. 지역별 최저임금은 각 도·도·부·현(都·道·府·県)에 거주하는 ①노동자의 생계비 ②임금 ③사업장의 지급 능력 등 노사의 경제적인 능력을 고려하여 산정한다. 따라서 각 지역에 지방최저임금심의회가 있다. 산업별 최저임금은 지역별 최저임금보다 우선하는데, 주로 광업법에 따른 광산 노동자들이 이 원칙을 적용받는다. 현재 액수에 따라 지역별로 47종류, 산업별로 246종류의 최저임금액이 설정되어 있다.

워킹 푸어(Working Poor)와 최저임금 1000엔

한국보다 먼저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탑승한 일본은 90년대 초 정부와 기업 주도로 노동시장을 유연화했다. '파견 노동 규제' 등의 법령을 단계적으로 완화했다. 이와 더불어 파트타이머와 계약직 등 비정규 고용의 전체 노동 시장 점유율은 90년대 중반 이후 계속 증가했다. 또한 90년대가 시작하자마자 산업 전체가 장기 침체하면서 대량 해고 사태(リストラ)가 이어졌다. 이 시기 정규직으로 취업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일본의 고용 관행으로는 졸업 직후 정사원이 되지 않으면, 이후 안정된 취업 형태를 얻을 기회가 희박하다. 따라서 많은 청년 계층은 매우 긴 시간을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노동 시장의 유연화와 산업의 장기 침체라는 복합 요인, 그리고 낮은 시급은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빈곤선 이하 노동자를 낳았다. '워킹 푸어(working poor)' 제1세대의 출발이었다.

2001년 당시 최저임금이 가장 낮았던 지역은 아오모리, 이와테, 아키타, 야마가타, 오키나와현으로 604엔에 불과했고, 가장 높은 지역은 도쿄도로 708엔이었다. 통계적으로 인구가 많고 현민 소득이나 거주비가 높은 도심부에서 최저임금이 높고, 농업종사자가 많은 지방에서 최저임금이 낮다. 이는 결국 임금 수준이 최저임금의 영향을 많이 받는 청년계층의 이촌 향도를 불러일으켰고, 지역 간 경제적 불균형과 도시 노동 시장의 공급 과잉을 일으켰다.

이런 배경을 고려할 때, 전국 어디에서나 적용되는 원칙으로서 최저임금을 1000엔으로 올리자는 주장은 일본 사회의 제 문제를 관통하는 요구다. 2001년 이래 일본의 진보 진영은 다양한 경로로 이를 관철하기 위해 움직였다.

▲ 일본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일터를 원한다, 워킹 푸어를 없애자, 지역 경제 재생을, 최저임금을 1000엔으로"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교토부직업노동조합 홈페이지

일본 사회의 움직임

2013년 현재 전국 일률 최저임금 1000엔은 진보진영 내 지형을 막론하고 매우 공통적인 요구가 되었다. 시민·노동단체가 지역별로 다양하게 편제된 일본의 특성상 이를 주장하는 단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에 앞서 열거한 세 단체인 수도권청년유니온, 연합, 전노련으로 대상을 압축하여, 이들이 지난 10여 년간 어떻게 활동해왔는지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수도권청년유니온은 2000년 12월 결성되었다. 가입 대상은 만 35세 이하의 청년이며 주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이들은 결성 한 달 후 즉각적인 최저임금 1000엔 인상을 주장했다.

노동권 침해 사례를 수집하고 해결하면서 꾸준히 세를 불려 온 수도권청년유니온은 일본의 군소 사회단체들이 합심하여 2006년 결성한 반빈곤서로돕기네트워크, 반빈곤네트워크 등에 참여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계약직, 프리터(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 <편집자>) 등 노동 형태의 문제에서 보다 범주를 넓혀 워 킹 푸어, 넷카페난민(일정한 주거지 없이 PC방 등에서 지내면서 생활하는 사람 <편집자>) 등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목소리에 박차를 가한다. 같은 해 7월, 반빈곤네트워크의 제 단체들은 NHK 다큐멘터리 <워킹 푸어-일을 하고 또 해도 풍족해지지 않는>에서 주도적인 스토리 텔러를 맡는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워킹 푸어와 최저임금 1000엔이 일본 사회에 전면적으로 부상했다.

이듬해 2007년, 민주당은 앞서 이야기한 연합과 함께 격차 시정 프로젝트팀을 가동했고, '격차 시정을 위한 긴급 조치 등에 관한 법률안'을 중의원에 제출했다. 이 법안의 최대 쟁점은 최저임금을 점진적으로 1000엔으로 설정한다는 부분이었으나 좌초됐다.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워킹 푸어로부터의 탈출'을 강령으로 내세웠고, 다시금 '전국 최저임금을 800엔으로 설정하며 경기 상황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1000엔까지 상향한다'는 매니페스토를 발표한다. 그 해 민주당은 선거에서 승리했고 첫 총리대신을 배출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민주당은 경제 복구를 이유로 해당 매니페스토와 기타 노동조건의 개선 등에 관한 법안 추진을 미뤘다. 민주당은 이를 연합에 통보하고 연합은 이를 수락했다. 이와 달리 전노련은 일본공산당과 함께 2001년 이래 주장해 온 전국 최저임금 1000엔이야말로 경제 복구에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민주당의 후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은 작년 연말 자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2012년 10월 개정된 일본의 전국 평균 최저임금은 749엔이다. 가장 높은 곳은 도쿄도로 850엔, 가장 낮은 곳은 코치현과 시마네현으로 652엔이다. 10여 년 전 전국 평균 최저임금이 659엔이었으니 원으로 환산하면 그간 1000원이 오른 셈이다. 코치현과 시마네현은 아직 10여 년 전 전국 평균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하다. 평균 임금 대비 최저임금은 OECD 가맹국 중 한국과 더불어 뒤에서 수위를 다툰다.

최저임금 1000엔, 여전히 가능성 높은 운동

현재 일본에서 전국 일률 최저임금 1000엔 인상안은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작년 말 중의원 선거를 통해 54석을 얻은 일본유신회는 애초 공약으로 '최저임금 제도 폐지'를 내걸었다. 선거 종료 후 폐지에서 개혁으로 수정하였으나, 수정안의 핵심은 '시장 메커니즘을 중시한 유연한 제도'라는 점에서 애초의 입장과 별 차이 없다. 현재 원내에서 '즉각적인 전국 일률 최저임금 1000엔'을 주장하는 정당으로 일본공산당이 있으나 8석에 불과하다. 민주당의 매니페스토 포기와 중의원 의석의 대규모 축소, 그리고 올해 참의원 선거 이후 자민당과 일본유신회가 헌법 개정을 목적으로 연립 정권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장차 최저임금제도가 어떤 형태로든 보수화될 전망이 크다.

전국 일률 최저임금 1000엔을 주장하던 가장 큰 조직은 조합원 675만여 명의 연합이었으나, 연합은 민주당과 매니페스토 포기에 합의한 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합원 119만여 명의 전노련은 일본공산당과 연대하여 꾸준히 관련 정책과 방안들을 생산해낸다. 수도권청년유니온은 애초 수도권 주변부에 머물렀던 것에서 벗어나 10여 년간 수도권미용원노조 등의 업종별 노조를 만들고, 전국 26개 부·현·구(府·県·区)에 걸쳐 청년유니온을 건설하며 더욱 커진 목소리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전국의 제 사회단체들을 엮어낸 반빈곤네트워크는 사회 제 문제에 대해 다양한 담론을 지켜나가는 한편, 이를 관통할 수단으로 꾸준히 전국 일률 최저임금 1000엔을 외치고 있다.

한국처럼 일본의 진보 진영도 조직을 막론하고 '비정규직 철폐'라는 구호를 공유한다. 다만 일본에서는 '최저임금 1000엔' 또한 지난 10여 년간 모두가 공유하는 구호로 성장했다. 법이 명시하는 대로 "노동자가 건강하고 문화적으로 최저한도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일본 최저임금법 9조)" 수준을 구축하자는 주장은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또한 심각하게 분열된 일본 진보 진영 내에서 조금이나마 소통의 경로가 되어준 계기이기도 하다.

한국의 4860원에서 1만 원, 일본의 659엔에서 1000엔으로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안은 일견 닮았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일본에서는 야당이 재야 단체와 정책 연대를 통해 집권당이 된 후, 최저임금 1000엔이 핵심 매니페스토로 기능했으나 예기치 못한 변수로 좌초되었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 운동이 지난 10여 년간 끼친 파급력은 대단히 컸다. 그리고 가능성이 높은 운동으로서 지금도 '최저임금 1000엔' 요구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국의 이후 10년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구호에 거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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