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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션 욕망, 거부할 수 없다면 사랑해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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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션 욕망, 거부할 수 없다면 사랑해야 하는 것

[오래된 아름다움을 찾아서]<9>

"인생에서 살아갈 만한 가치를 부여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일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말이다. 보통 미술 애호가들은 플라톤이 남긴 이 말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컬렉터들도 그럴까? 흔히 사람들은 미술품 컬렉션의 목적이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 있다고들 하지만, 나는 단언컨대 컬렉션의 묘미를 조금이라도 아는 대다수 컬렉터는 그 목적이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데 있다고 말할 것으로 믿는다.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소유하겠다는 의지와 욕망의 강약에 따라 애호가와 컬렉터가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감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겁다면, 굳이 무엇 때문에 컬렉터들은 수집하는 것일까? 그런 즐거움이 가득하더라도 마음 한 편에는 채워지지 않는 또 다른 욕망의 공간이 있는 것일까?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다는 컬렉션이란 욕망의 공간, 그 세계로 들어가 보자.

인간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그 무엇에 대한 동경심이 있다고 했다. 그 무엇이 반드시 값이 비싸거나 희소성이 있는 물건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러한 동경심은 대상물에 담긴 아름다움, 인간의 미술 정신에 대한 사랑과 경의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감정이 그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으로 발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그러한 감정의 발전은 인간 본성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수집의 욕망은 거부할 수 없는 악녀(femme fatale)의 손길처럼

그러나 그러한 소유 욕망에 대한 인간의 감정은 이성적이지 못할뿐더러 때로는 충동으로 치달아 예상치 못한 행동을 초래하기도 한다. 뛰어난 감식안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의 영혼을 유혹하는 명기(名器)나 명화(名畵) 앞에 서면 이성은 마비되기 마련이다. 전후 사정을 가리지 않고 일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컬렉터는 소유 욕망과 그것을 억누르는 이성 사이에서 번뇌한다. 그렇다면 컬렉션으로 가는 길은 인간의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는, 소유 욕망으로 뒤엉킨 번뇌 덩어리를 한 가닥씩 풀어가야 하는 힘든 여정인 것이다.

이렇듯 컬렉션은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는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속성을 갖고 있는 탓에 물건의 수집은 늘 상식의 영역을 벗어나는 위험을 안고 간다. 상식을 벗어난다는 말은 인간의 평균적인 가치판단 기준이나 행동 규범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행태적 속성은 때로는 위험으로 때로는 행운으로 작용하면서 컬렉터들을 수집이라는 욕망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헤어날 수 없는 운명의 나락으로 빠뜨리는 악녀(femme fatale)의 손길처럼 그 유혹은 참으로 은근하고 끈질긴 것이어서 거부하기 힘들다. 단언컨대 그런 컬렉션의 유혹을 이성으로 통제하고 거부할 수 있는 자, 그는 컬렉터가 아니다.

물건을 즐겨 모으거나 한 분야에 몰입하는 사람을 우리는 '마니아'라고 부른다. 수집마니아를 '수집광'으로 부르듯 그 말에는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오히려 순수한 의미의 '병적이거나' '미치광이'라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 한다(불광불급, 不狂不及)"는 말도 아마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처럼 컬렉션의 세계에서는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욕심이 병적일 정도로 과도해지면 비도덕적인 지경까지 가기도 하는 것이다. 책을 수집하는 장서인이 사랑하는 여첩과 진서(珍書)를 교환했다는 중국 이야기처럼 욕심, 욕망은 그것을 이성적으로 절제하기보다는 때로는 혼탁하고 천박한 마음을 조장하여 인간을 타락시키기도 한다는 점에서 컬렉션은 비극적이다.

컬렉션의 현장에서는 그러한 유혹의 손길을 거부하지 못하고 물건 욕심에 눈이 멀어 도난품과 같은 부정한 물건에 손을 대기도 하고, 심지어 직접 도적질을 범하기도 하는 사례를 본다. 소유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박증이 되어버리면, 소유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수단이 정당한 것이 된다. 우리가 흔히 생사를 앞에 둔 사람의 과거 잘못을 용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1990년대 중반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172곳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대상으로 한 미술품 절도범행에서 239점의 작품을 훔친 스테판 브라이트비저(S. Breitwieser)는 법정에서 그 동기가 돈 때문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미술품을 소유하고 싶은 간절함과 통제할 수 없는 열정 때문이었다고 진술했다. 물론 이런 사례는 아주 드문 일이긴 하겠지만, 이를 단순히 눈에 들어온 물건을 탐내는 컬렉터들의 병적인 심리상태가 빚어내는 비극이라고 하기에는 찜찜한 그 무엇이 남는다.

▲ 미술품 절도범의 대명사 브라이트비저. 그는 법정에서 미술품 절도의 동기가 돈 때문이 아니라 오직 혼자서만 미술품을 소유하고픈 욕망 때문이었다고 진술했다. ⓒ한길아트
죽어서까지 애지중지했던 그림을 독점하려는 컬렉션 욕망

또 자신이 사랑하고 애지중지하는 물건을 혼자만의 소유로 독점하려는 극단적인 소유 욕망은 사후 무덤에 그 물건을 부장케 함으로써 영원히 이어가고자 한 경우도 여럿 있다. 중국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동진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 307∼365)가 쓴 불후의 명작 <난정서(蘭亭序)>를 죽어서라도 함께하기 위하여 부장케 하였고,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서화 컬렉터 상고당 김광수도 명나라 대표화가 구영(仇英)이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를 부장하게 하려고 했다고 전한다.

최근 중국과 대만이 분리 소장해온 수묵화 한 점이 분단 62년 만에 한 몸이 돼 전시된다고 하여 화제가 된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도 한 컬렉터의 극단적인 소유욕망에서 빚어진 희생물이었다. <부춘산거도>는 원나라의 유명화가인 황공망(黃公望 1269∼1354)의 작품으로, 중국의 10대 명화로 꼽혀왔다. 황공망이 72살 때 무용사(無用師) 스님을 위해 그리기 시작해 3∼4년에 걸쳐 완성했으며, 절강성(浙江省)의 부춘강과 부춘산을 배경으로 한 수묵산수화다. 명나라 말에 이 그림을 소유하고 있던 오홍유(吳洪裕)는 그림을 너무 애지중지한 나머지 임종하면서 그림을 태워 함께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그림은 결국 불에 던져졌고 이를 안타까이 여긴 그의 조카가 구해냈지만, 이때 일부가 불에 타 큰 부분과 작은 부분으로 분리되고 말았다. 길이 51.4cm의 앞부분은 <잉산도권(剩山圖卷)>으로 불리며 중국 항저우의 절강성박물관에 소장돼 있고, 639.9cm 길이의 뒤쪽 부분은 장개석의 국민당이 1949년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쫓겨 가면서 가져가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는데, <무용사권(無用師卷)>으로 불린다.

▲ 황공망이 그린 <부춘산거도>. 죽어서라도 사랑하는 작품과 함께하고픈 욕망 때문에 두 쪽으로 나뉘어 중국과 대만에 따로 소장되었다가 최근 대만에서 합체, 전시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한길아트

아무튼 산 것이든 훔친 것이든 관계없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을 손에 넣는 순간 컬렉터는 더없는 성취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갈증의 충족에 불과할 뿐. 그래서 모든 컬렉터들은 또다시 소유의 갈증에 시달리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도 그 갈증을 해소하려 하기 때문에 그 욕망의 고리는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사연으로 컬렉션 세계에서는 밖으로 드러나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면에 죄를 지고 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컬렉션의 열병을 앓아본 사람은 그 심리를 이해한다. 유혹이 없고 욕망이 없으면 컬렉션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또 그러한 내면의 심리적 갈등이나 도덕적 해이도 없겠지만, 컬렉션의 욕망이란 그토록 지독한 데가 있는 것이다.

그 거부할 수 없는 컬렉션 욕망, 그로 인한 내면의 번뇌와 갈등, 무엇으로 풀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이성과 양심 도덕을 이야기하자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 그런 교과서적인 논리나 세속적인 잣대로 컬렉션 세계의 내밀한 심리를 다스리고 재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 세계를 너무 쉽게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컬렉션 욕망, 거부할 수 없다면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컬렉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컬렉션은 본성이 욕망이라고 했다. 욕망이 있어 컬렉션이 존재하게 된다 하더라도 욕망 그 이상의 무엇이 없으면 컬렉션의 의미는 희미해진다.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잊고 세상일의 이해타산을 따지는 속된 감정을 초월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을 때 욕망으로 인한 번뇌는 사라지고 컬렉션의 의미는 뚜렷해진다는 것이다. 자신을 비운 마음 그곳에 물건에 담긴 아름다움을 담아보고, 그것을 만든 작가와 장인의 영혼을 사랑하고 인간 본성의 순수함을 그리워할 때, 우리는 진정 그를 아름다운 컬렉터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저자 김치호

195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77년 연세대학교상경대학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통계학 석사(1983), 경제학 박사(1987) 학위를 받은 뒤 20여 년 동안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등에서 한국의 거시경제, 통화정책, 금융위기를 연구했다. 정리금융공사 사장을 역임했고,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한국의 거시경제 패러다임>(2000, 한길사) , <고미술의 유혹>(2009, 한길아트) 등을 저술하고 논문 50여 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유망 미술작가 해외진출 후원모임'을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는 등 우리 미술시장 저변 확대를 위한 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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