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에서 사람을 심판하는 신, 염라대왕이나 오시리스(이집트)는 이 세상에서 최초로 죽은 자라 한다. 저승에 가장 먼저 가서 가장 먼저 자리잡았음으로 다음에 오는 이들을 심판할 수 있었던 것일까.
죽음의 신 야마는 처음으로
우리의 거처를 찾아 냈도다.
결코 빼앗길 수 없는 그 곳을.....
힌두교 리그 베다에서는 이처럼 야마신이 인간의 영혼이 머물 저승의 거처를 처음으로 찾아내 마련해 둔 것으로 읊는다.
그런데 역사가 비교적 오랜,그래서 많은 종교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조로아스터교에서도 저승을 관장하는 이를 야마로 부르며 이를 최초로 죽은 사람이라 했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역시 최초로 죽은 사람이다.
신화시대 이집트를 다스린 왕으로 시기심 많은 동생 세트의 농간에 의해 살해 당한 오시리스는 누이동생이며 아내이기도 한 이시스에 의해 흩어진 뼈가 한데 모아지고 잠시 육체적 생명을 부여받아 이시스와 함께 아들 호루스를 갖는다. 호루스는 뒤에 세트를 굴복시키고 왕국을 복원하고 저승과 이승 모두에 영향력을 지닌다.
오시리스는 저승으로 가 뒤에 오는 자들의 심판자가 되는데.... 이집트의 경우 모든 파라오(왕)가 죽으면 오시리스와 한몸이 되거나 오시리스가 되므로 옛날에는 저승왕의 세대교체가 자연히 이루어졌다고나 할까.
그러나 종교가 좀 복잡해진 현대의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를 누가 계승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면 염라대왕은?
힌두교 불교 도교권에서 염라대왕은 아직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힌두교에서의 죽음의 신 야마는 마음이 그리 모질지 못했던 것 같다. 결혼 1년만에 죽어야 하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잠도 자지 않고 죽음의 신을 기다리던 어느 공주의 애원을 들어 죽음을 미루고 아들까지 낳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마하바라타에 전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때 야마는 공주 남편의 몸에서 엄지 손가락만한 영혼을 꺼내다 들켰다던가....
산스크리트어로 죽음의 신 야마(yama)가 불교에 묻어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한자로 옮겨지는 과정에 염마(焰魔) 또는 염라(閻羅)로 음역, 염라대왕이 되고 이후 중음(中陰 또는 中有)의 세계에서 죽은 자를 심판하는 신으로 자리매김된다.
하지만 여기서 중국인들의 자존심 같은 것을 엿볼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난다. 염라대왕은 지옥왕을 대변하고 있기는 하나 유일한 신이 아니고 지옥 시왕(十王) 가운데 다섯 번째 법정 판관으로 등장한다. 힌두교 죽음의 신에 물을 타도 많이 탔다.
그 뿐인가. 더러 오전한염라(五殿韓閻羅)란 간판을 붙인 염라대왕은 6세기 수나라 문제시절 승상을 하던 한금호(韓擒虎)란 인물로 ‘죽어서 지옥왕이 되겠다’는 소원이 이루어져 염라대왕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 불교에서는 부처님 제자 가운데 아귀지옥에서 고통받는 어머니를 구
한 목련존자가 죽어 지장왕이 되고 그를 곧 지옥왕, 염마왕으로 보기도 하고, 8세기 신라 왕자 김교각 스님이 중국 구화산에서 도를 이루어 지장보살이 되었다는 것인데 지옥 시왕 가운데 염마왕은 바로 그 지장보살의 화신이라고도 한다. 인도 야마신이 중국에 건너와 변모한 이미지들이다.
조선에서도 야마(yama)적 염라대왕을 판갈이 한 것이 있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나오는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에는 아예 주인공 박생이 꿈에 염부주라는 곳에 가서 그곳 왕과 불교 유교 귀신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차기 염마왕을 맡으라는 염마왕의 선위문(禪位文)까지 받는다.
꿈에서 깬 박생은 죽을 일을 염두에 두고 날마다 집안일을 정리해 나가다 문득 병이 드니 의사와 무당을 물리치고 죽음을 택한다. 현실세계에서 새로운 이상세계로 올라간 것이다.
그가 막 떠나려하던 날 저녁에 이웃집 사람의 꿈에 어떤 신인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너의 이웃집 박생은 장차 염라왕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다. 물론 소설이다.
어쨌거나 옛 동서양 종교가 만든 저승세계는 당시 이승세계를 거울에 비추듯 반영하고 있다. 제도며 위계질서며 형벌이 그렇고 의식주며 패션까지 반영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민주화된 현대사회가 비추어낼 수 있는 저승세계 역시 변화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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