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그런 건 존재하지 않소. 천국 아니면 지상이 있을 뿐이오. 잘못을 저지른 자들은 지상에 돌아가 환생토록 되어있소.”
요즘의 프랑스 인기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천사들의 제국’에서 하늘의 심판관인 세 명의 대천사, 가브리엘, 미가엘, 라파엘이 “지옥으로 가야 하느냐”는 주인공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지상에 사는 사람들이 만약 ‘지옥 없음’을 안다면 사악한 짓을 거리낌없이 행할 것이고 인생이 괴로울 땐 누구나 죽어버리려 할 것이므로 ‘지옥 없음’은 누설되어서는 안될 하늘의 비밀, 즉 ‘천기(天機)’인 것이다.
주인공 팽송은 소설 ‘천사들의...’의 전편에 속하는 ‘타나토노트(영계탐사자)’에서 이미 그 천기누설의 죄를 범한 바 있다.
어쨌거나 ‘천사들의....’에는 제법 동서양 저승을 비빔밥으로 섞어 저승의 세계화(?)를 시도한 흔적이 보인다.
“우리를 맞으러 오는 인물이 있다. 천국의 열쇠 관리자, 천국의 수위인 그에게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신 아누비스, 인도 사자(死者)의 신 야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틱스강의 뱃사공 카론,로마인들이 영혼의 안내자라 믿었던 메르쿠리우스, 기독교의 성 베드로 등이 바로 그 이름들이다.”
이만하면 완벽하진 않으나 비빔밥의 맛은 어지간히 낼 수 있을 것 같다. 또 보자.
“나는 세 심판관이 누군지 알고 있다. 이들 역시 신화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테미스, 타나토스이며 이집트 신화의 마트, 오시리스, 토트, 일본 신화에서 이자나미, 이자나기, 오모이가네이다. 또 기독교인들은 이들을 세 대천사 가브리엘, 미가엘, 라파엘이라 부른다.”
역시 완벽하진 않으나 비빔밥은 비빔밥이다.
내용면에서도 그렇다. 주인공 팽송은 기독교 문화권에 살았던 탓인지 다름아닌 기독교 대천사들에게 심판 받는다. 그러나 가브리엘 대천사가 “당신 영혼의 무게를 달겠소”라고 한 부분은 죽은 자의 심장 무게를 달아 보는 이집트식을 빌려 온 것 같다. 죄 지은 자는 지상으로 가 환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기독교적이 아니며 힌두교적, 불교적이다.
환생의 벌을 받은 주인공에게 느닷없이 수호천사가 나타나 지엄한 대천사들을 몰아 세우며 주인공을 변호해서 천국에 남게하는 것 역시 ‘저승의 역사적 발전상’을 말해주는 것일까.
하긴 이승에서도 이젠 고문같은 형벌은 거의 없어져 가고 민주화된 세계 각국에서 ‘사형제 폐지’주장이 나오고 있는 판에 저승에서 불변의 권위만 있고 영혼들을 괴롭히는 지옥고가 있다면 글쎄....아무래도 “저승, 너도 변해야 산다”가 되는 것은 아닐까.
기왕 ‘천사들의...’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이 책을 좀더 살펴보기로 하자.
소설 ‘천사들의...’에는 저승 이야기 말고도 천사와 인간이 어떻게 교감하는가의 방법도 나온다. 천사가 인간의 삶에 개입할 수 있는 다섯가지 수단은 직감과 꿈과 징표와 영매 그리고 고양이라 한다. 이 부분 역시 저승과의 교감법의 세계적인 예가 다 포함돼 있다.
천사들은 첫째, 아주 완곡한 방법으로 인간의 직감에 개입, 나쁜 길로 접어드는 것을 막아준다.
두번째, 꿈은 인간이 꿈꾸고 있을 때 천사의 지시를 상징적인 형태로 넌지시 끼워 넣는 우회적인 방법을 쓴다고 한다. 위급할 경우 며칠이고 다른 형태의 상징을 써서 알아채게 한다는 것이다.
세번째, 징표는 첫번째의 직감과 비슷한 방법을 써야 하나 짖어대는 개라든가 녹슨 문이라든가 여러 방법이 있지만 이제는 그 징표도 바꾸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네번째, 영매다. 영매는 절제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영매가 천사들의 말을 곡해할 수도 있고 때로는 능력을 이용,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가지려 하기 때문이다.
다섯번째, 고양이다. 원래 영매끼를 가지고 있는 고양이가 인간 영매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함부로 영향력을 써먹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단점은 말을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직접적 경고를 할 수 없다는 점이라 한다.
‘천사들의...’에서 천사들은 이런 교감법으로 성공하기도 하고 엉뚱하게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도 만드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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