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인간 生死에 관한 아주 유별난 보고서 <26>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인간 生死에 관한 아주 유별난 보고서 <26>

저승은 공정했다-1




<제26화>저승은 공정했다 -1


어느 저승이나 저승의 심판은 지금까지 공정했다. 그 공정한 심판을 증거하는 옛날 저승 이야기를 중국 포송령( 1640-1715)의 괴기(怪奇)소설 모음인 ‘요재지이(聊齋志異)’에 나오는 ‘염라대왕 대리’에서 시작해 볼까 한다.

산동성에 사는 이백언은 성격이 청렴 강직하며 성실한 사람이었다. 갑자기 급한 병에 걸려 죽게 되자 집안 사람들이 그에게 약을 먹이려 했다.

그러나 이백언은 약을 물리치며 “저승의 염라대왕이 잠시 자리를 비워 나더러 그동안 대신해 달라는 명령이니 내가 죽더라도 매장해서는 안된다. 그대로 두고 기다려야 한다”하고 곧바로 죽었다.

그가 죽자 저승사자들이 그를 안내, 예복과 왕관을 씌워주고 염라대왕의 자리에 앉게 했으며 염라대왕의 부하관리들이 앞에서 열을 지어 읍을 하고 서 있었다.

책상 위에 쌓인 서류를 차례로 처리하다 보니 이백언과 인척관계에 있는 왕모(王某)라는 사람이 나와 슬그머니 좀 봐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백언에게 그런 마음이 들자 갑자기 염라궁전의 처마끝에서부터 불이 붙기 시작하더니 들보와 도리로까지 번져 갔다.

그때 부하 한 사람이 이백언에게 오더니 “명계의 법관은 약간의 사심을 품어서도 안됩니다. 당장 그릇된 생각을 버리시면 타던 불도 그냥 꺼질 것입니다”라는 것이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그가 인척을 봐 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냉정을 되찾자 불은 곧 꺼졌다.

이백언이 염라대왕을 대신한 일을 다 마치고 세상에 돌아와 살아간 이야기는 여기서 생략하고 ‘명계의 법관에게 사심은 없다’는 점에 주목하려 한다.

저승은 어쨌든 무법이 판치는 이승 같아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그렇게 굳게 믿으려 하는 것이다. 명계의 법은 공정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설혹 지옥 벌을 받는다 하더라도 불만이 있을 수 없다.

지옥이든 천상세계든 적어도 저승은 바르게 다스려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믿고 싶었던 것이다. 불가 도가에서의 지옥 시왕(十王)도 공정을 위해 한 사람을 차례로 10번씩이나 검증해 보는 것일 것이다.

저승의 판결이 공정하다는 것은 이집트의 저승에서도 강조된다. 미국의 비교종교학자 앨리스 터너가 쓴 ‘지옥의 역사’에 나오는 그 재판과정을 옮겨 보자.

-재칼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 신이 당신을 ‘심판의 방’에 안내할 것이며
당신은 순수하고 깨끗해야 할 것이므로 흰옷과 신발을 신고 검은 색으로 눈화장을 하고 몰약을 바르게 될 것이다.... 심판의 방에는 ‘정의의 저울’이 놓여있고 그 아래 작은 괴물 암미트가 도사리고 앉아 있다. 당신은 이곳에서 전생부터 계속되는 자신의 존재를 변호할 기회를 갖는다. 따오기 머리를 한 지혜의 신 토트는 검사역이다. 재판장 오시리스는 두 여신인 이시스와 네프튀스가 보내 준 왕좌에 앉아 있다. 당신의 자기 변호에도 불구하고 결국 당신의 심장은 저울의 한쪽 접시위에 놓여지게 되는데 나머지 한쪽 접시에는 진실의 여신 마아트의 머리장식에 달린 깃털 하나가 올려진다. 만약 당신의 심장이 올려진 접시가 죄의 무게로 인해 아래로 처지면 저울 아래 도사리고 있던 괴물 암미트가 그 심장을 먹어 치운다. 이것이 당신의 종말이 된다. 만약 이 심판에서 살아 남는다면 등심초의 들판에서 새로운 육체를 입게 된다. 그렇다고 이것이 고난의 끝은 아니다.-

소설 ‘람세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 이집트의 고전 ‘이집
트 사자의 서’에서 가져 온 이야기들이다.

가장 먼저 죽은 자인 재판장 오시리스와 그 누이동생이며 부인인 이시스, 그리고 저울질에 관여하는 호루스는 한 가족이다. 하지만 진실의 여신 마아트는 가족이 아니다. 그의 깃털은 절대 공평하다는 것이 여기서 수없이 강조된다. 옛 이집트 그림에서 머리 장식에 커다란 깃털 하나를 꼿꼿하게 꽂고 있는 여신이 바로 마아트다.

그런데 앨리스 터너는 “지옥의 역사‘에서 이집트 신화가 기독교에 미친 영향을 지적하고 있어 흥미롭다. 예를 들면 오시리스와 예수는 자신의 희생에서 부활했다는 점이 같고, 사람들이 오시리스와 예수를 자비로운 분으로 믿는다는 것도 같다. 이집트의 사자(死者)들은 죽은 뒤에도 육체를 갖는다.

기독교 역시 최후의 심판에 원래의 육신으로 부활키 위해 매장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듯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