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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生死에 관한 아주 유별난 보고서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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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生死에 관한 아주 유별난 보고서 <29>

지옥도 분할됐는가

유고의 작가 밀로라드 파비치에게는 사전 편집하듯 쓴 소설 하나가 있다.
제목하여 ‘카자르 사전’이다.

카자르.
흑해북부 카프카스 지방에서 7세기 이후 한때 세력을 떨쳤던 나라지만 10세기 러시아에 몰락 당한 후 11세기 무렵 역사의 무대에서 그야말로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제국으로 지금은 역사도 민족도 언어도 남겨진 것이 없
다 한다.

9세기경 카자르 전통종교는 접어둔 채 당시 주변국 종교인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가운데 하나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세 종교 가운데 하나를 택한 다음 나라가 기울기 시작, 결국 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때 카자르가 어느 종교를 택했던가는 분명치 않고 다만 주변 세 종교가 서로 자신들의 종교를 택했다고 주장하는 흔적만을 찾을 수 있는 모양이다.

그 카자르를 소재로 쓴 소설 ‘카자르 사전’에는 9세기부터 얼키고 설킨
세 종교의 밀고 당기기가 현대까지 이어지며 세 종교의 지옥 악마들도 모두 인간 세상에 섞여들어 맹활약, 소설의 신비성을 더해주고 있다.

그런데 소설 ‘카자르 사전’에는 사탄이 카자르제국 바로 아래에 지옥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사탄의 설명은 이렇다.
-고대에는 죽은 자의 세계에 세 개의 강이 있었는데 아케론, 플레게톤,코퀴토스였습니다. 그것은 지금 각각 이슬람 유대 기독교의 지하세계에 속합니다. 그 강은 각각 세 개의 지옥, 유대인들의 지옥인 게헨나, 기독교의 지옥인 하데스,그리고 이슬람교도의 얼음지옥으로 흘러들어가며 세 곳은 모두 한때 카자르 민족의 영토였던 땅밑에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죽은 자의 나라 세 개가 한 곳에서 만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사탄의 나라에는 기독교 하데스가 그리는 아홉개의 원과 루키페로스의 왕좌와 암흑왕의 깃발이 있습니다. 이슬람의 지하세계에는 에블리스 왕국의 얼음고문이 있습니다. 제프라의 영토는 성전의 왼쪽에 있는데 그 성전 안에는 악과 탐욕과 굶주림을 관장하는 유대신이 게헨나에서 아스모데우스의 명령에 따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 개의 지하세계는 서로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쇠쟁기로 경계선을 그려 놓았으며 아무도 그 경계선을 넘어갈 수 없습니다.-

옛날에는 하나로 통일돼있던 지옥도 땅 위에 세 개로 갈라진 종교 때문에 역시 세 쪽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일까.

더 들어보자.
-이 땅 위의 이슬람 세계, 기독교 세계, 유대교 세계와 관련된 일에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렇게 해야만 그것들의 지하세계에 연관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 종교에 관심 갖지 않으면 지옥 가지 않는다는 사탄의 말이 그럴 듯해보인다. 덧붙여 유대 지옥에는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들이 불타고 있고, 기독교 지옥에서는 이슬람교도나 다윗을 받드는 유대교도들이 고통을 당하며, 이슬람 지옥에는 기독교와 유대교도들이 가게 되어 있다는 설명이 또한 재미있다.

지금까지 세 종교의 저승, 또는 지옥의 모습이 전혀 새롭게 드러난 것 같다.

소설 ‘카자르 사전’에는 어느 종교든 사탄에 해당하는 사람이 ‘영양가
있는 말’을 많이 한다. 이슬람의 사탄, 능숙한 류트주자로 소설에서 야비르 이븐 아크샤니란 이름으로 나오는 사람은 죽음에 대해 속담 여러 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르되,
1.죽음은 잠의 성(姓)이지만 우리는 그 성에 대해 알지 못한다.
2.잠은 하루치 인생의 끝으로 죽음에 대한 연습이다. 잠과 죽음은 자매 사이이지만 형제자매가 똑같이 가까운 것은 아니다.

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가 하늘이라고 부르며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이 공간이, 어떻게, 무엇으로 그리고 어째서 제한되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뿐일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죽이는 것이지요.....우리의 죽음은 그 존재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죽음은 혀와 마찬가지로 그 존재가 우리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도구입니다.....그렇게 해서 우리는 최후의 순간에 죽음이라는 열려진 문을 지나 새로운 땅과 또다른 지평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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