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자 앤 S 굿리치가 쓴 ‘중국지옥(Chinese Hells)’에는 옛 중국의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소개돼 있다.
중국에서 지옥 입구가 있다고 알려진 산동지방의 태산(泰山)과 사천성의 풍도(豊都) 가운데 풍도쪽 이야기다.
풍도 가까운 곳에 지옥으로 연결되었다는 우물이 하나 있어 마을사람들은 이 우물에 ‘지옥에 내는 세금’에 해당하는 돈을 정기적으로 바치고 있었다.만약 그렇지 않으면 아프거나 다른 불운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느날 이 마을에 원님이 새로 부임해와 우물과 세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이를 그만 두도록 금지시켰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말하길 “지옥왕의 허락 없이는 감히 이를 그만두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새로온 원님은 마을 사람들을 설득 시키려면 ‘우물 밑에 있다’는 그 지옥
왕을 찾아가 담판을 벌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는 단단한 줄 하나를 잡고 우물로 내려갔다. 처음에는 캄캄하던 우물 속이 아래로 내려가자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고 마을과 건물도 나타났다.
그곳에 닿으니 지옥 관리가 나타나 “당신은 위 세상의 관리인 것 같은데, 아래 윗 세상이 엄연히 갈라져 있거늘 무슨 일로 왔는가”라고 물었다. 고을 원은 지옥에 내는 세금 때문에 왔다 전하고 그곳 왕을 만나 담판을 하게 된다.
“풍도는 몇 년 동안 흉년으로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어 지옥 세금을 낼 수 없다”고 하자 지옥왕 왈, “너는 정말 올바른 관리로구나. 지옥세금을 생각해낸 쪽은 어리석은 승려나 도사들이지 우리가 아니다”라는것이 아닌가. 이승의 돈이 저승에서 무슨 소용 있겠느냐는 이야기겠다.
그렇다해도 수많은 중국 기괴담에는 저승에서도 돈이 먹혀든다는 이야기가 더 많다.
10세기 송(宋)나라 때 편집된 중국 역대 소설선집인 ‘태평광기(太平廣記)’에 나온다는 이야기 하나.
중국 양양땅에 이여라는 사람이 괴질로 죽자 아내가 죽은 남편 곁에서 밤샘을 하고 있었다.
그날 밤이 깊어 가는데 갑자기 시체가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아내가 팔에 끼고 있는 금팔찌를 더듬어 만지기 시작했다. 눈치빠른 아내는
그 뜻이 무엇인지 알아채고는 재빨리 팔찌를 벗겨 죽은 남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새벽이 되자 송장의 가슴이 조금씩 따뜻해지며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
다. 하룻밤만에 살아난 남편이 아내에게 전해준 말은 이렇다.
“저승사자에게 끌려 가다 살펴보니 일행 중에 뇌물을 주고 풀려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나도 사자에게 아내의 금팔찌를 주겠다 하고, 팔찌를 전해주니 풀어 놓아 주었다”는 것이다.
저승길 노잣돈이란 우리말도 있듯 저승에서도 돈이 요긴하게 쓰인다는 것은 동서양 어디서나 주장돼 온 이야기다.
조선시대 빼어난 여류,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시 ‘죽은 아들을 곡함’에는
...묘지에 명멸하는 도깨비불들.
지전(紙錢)을 던지며 너의 혼을 부르고...
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지전은 종이를 돈 모양으로 오린 것으로 장례식때 흔히 저승길 노잣돈으로 생각했던 것인데, 옛날에 썼던 진짜 돈이 후세에 오면서 이처럼 돈 흉내만 내는 것으로 변한 것인지....
사자의 입안 또는 손안에 동전을 쥐어주는 것은 동양 아닌 서양의 그리스적에도 있었다 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죽은 자를 매장하면서 그 입속에 은전 몇 닙 넣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우선 그리스 신화에는 저승으로 건너는 강인 아케론강, 스틱스강의 뱃사공 카론(혹은 케이론)에게 돈을 내야 강을 건널 수 있다고 나와 있으니 말이다.
돈이 없어 배삯을 내지 못한 사람들은 영원히 저승세계로 가지 못하고 이 강가를 헤메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고집 세기로도 유명한 카론이 살아있는 인간을 태워준 적도 있는데 배를 탄 사람은 네 사람. 헤라클레스와 오르페우스 그리고 테레우스와 페이리로스라고 하던가.
아케론 강은 저승강의 본류인 스틱스강의 이승 가까이 있는 지류다. 코퀴토스강 역시 이승과 가깝고 스틱스강을 지나면 플레게톤강과 망각의 강인 레테가 있으며 영혼들은 마지막으로 레테강 물을 마신 다음 다시 태어나기 위해 유성처럼 위로 날아 올라 사라져버린다 한다.
그런데 스틱스강의 뱃사공 카론은 그 돈들을 받아 어디 쓰는 것일까. 그런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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