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라는 것이 있다. 독일의 문화인류학자 게르노트 프루너가 쓴 ‘중국의 신령’에 보면 중국의 경우 네 명의 저승사자가 있다.
즉 백오창(白五猖),흑오창(黑五猖),우두(牛頭),마면(馬面)인데 이들은 영혼을 잡으러 갈때 먼저 그 고장 토지신에게 가서 죽을 사람의 집으로 가는 길을 안내받고 그 집에 이르러 아궁이신으로부터 영혼을 넘겨받는다고 한다.
아궁이신에게서 영혼을 넘겨받은 저승사자들은 그 영혼을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城隍)신에게 호송해가며 서낭신이 그를 저승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중국의 저승은 방위에 따라 배치되어 있으며 큰 바다 아래 있는 신화 속의 산 옥초석(沃樵石)의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다 전한다.
어떤 설에 의하면 그 옥초석은 사천성의 풍도(豊都)에 있다 하고 다른 설에서는 산동지방의 거룩한 산 태산(泰山)의 어느 기슭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태산의 신령은 중국 본토 출신의 가장 오래된 신령 가운데 하나인 동악대제(東岳大帝)다. 그는 7번째 지옥 법정의 판관으로서의 기능 외에도 전 지옥의 통치자로서 숭배된다.
그는 삶과 죽음의 군주로서 인간의 출생과 사망날짜를 결정하며 또한 지옥에서의 체류 기간도 그가 결정한다. 물론 불교쪽과는 좀 다른 도교적 구도다. 음력 3월 27일이 그의 생일이며 지위 또한 옥황상제에 버금간다.
풍도 역시 도교쪽에 가깝다. 그곳에 있는 서낭신을 위한 사원에는 지옥의 도시 풍도에 이르는 지하통로가 있다고 전한다. 서낭신이 영혼을 저승으로 보낸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출발하는 모양이다.
이곳의 지옥 통치자는 풍도대제(豊都大帝). 지옥에 발을 들여놓는 죽은 이의 영혼은 모두 그에게 먼저 면접을 받고, 명부에 등록되며 이후 지옥법정으로 간다.
열명의 지옥판관은 재판정에서 일어난 일을 그에게 보고하며 그는 이 정보를 옥황상제께 전한다. 아무래도 동악대제보다는 격이 한결 낮은 것 같다.
한국에서는 저승사자를 두명 아니면 세 명쯤으로 보았다.우두(牛頭)나찰,마두(馬頭)나찰 , 즉 사람몸에 소머리,말머리를 한 벌거벗은 저승사자 두명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 같은데 보면 보통 저승사자는 검은 두루마기에 검은 갓
을 쓰고 얼굴을 회칠한 으스스한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동안 이미지가 변한 것인가.
한국 굿에는 사재(使者)놀이라는 것이 있다. 두 명 또는 세 명의 사재(저승사자)를 상정해 놓고 그들을 대접한다. 사재밥, 사재를 위한 짚신 등이 그것이며, 사재가 죽은 이의 저승길을 잘 안내해 달라고 돈도 몇푼 함께 놓아둔다.
25화에서도 얘기한 바 있는 소설 ‘천사들의 제국’에는 죽은 자를 맞으러
오는 이름들이 이집트의 아누비스, 인도의 야마, 스틱스강의 뱃사공 카론, 로마의 메르쿠리우스, 기독교의 성 베드로 등으로 나온다.
대부분 죽음의 신이다. 동북아시아쪽에서 보면 염라대왕이 직접 영혼을 맞으러 나오는 셈인데 그런 법은 없다. 저승사자라면 아무래도 ‘죽음의 신’의 졸개들이어야 어울린다.
요즘 서양의 저승사자 이미지로 굳어진 ‘그림 리퍼(Grim Reaper)’도
죽음의 신이라기보다 졸개역이다. 해골에 검은 망토와 후드를 둘러 쓴 그림 리퍼는 어딘가 스틱스의 뱃사공 카론을 닮은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들고 있는 연장은 배를 젓는 노가 아니라 창처럼 기다란 자루가 달린 서양식 낫이다.
그런데 벼나 풀을 베어야 할 이 낫의 날은 바깥으로 나있다. 죽음을 가져다 주기 위한 낫질은 풀베는 것하고는 좀 다른 모양이다.
흑,백 오창이든 우두,마두나찰이든 그림 리퍼든 저승길, 그 황량해
보이는 곳을 혼자 가서 외롭게 터벅거리기보다 비록 무서운 존재이긴 하나 저승사자가 나와 영혼을 맞아 준다는 것은 그래도 안도감을 준다.
그렇게 영접을 받아 가게 되는 저승의 주소는 중국의 태산과 풍도처럼 서양에도 구체성을 띄고 지적된 곳이 여러 군데 있다.
16세기 가톨릭교회의 트리엔트공의회에서는 ‘지옥은 지구의 중심에 있
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는 다시 1876년 가톨릭 교회에 의해 추인되기도 했다. ‘지구중심 지옥’증거의 하나로 화산 분화구에서 솟아나는 연기를 들기도 했다.
그리스의 하데스. 그 지하왕국의 입구는 남부 펠로폰네소스와 마법의 숲 부근 그리고 또 한 군데 동굴이라 전해져 오기도 했다. 로마시대, 지옥 위치는 나폴리 근처에 있는 한 동굴이 의심받았다.
한국에는? 글쎄 강원도에 저승골굴이라는 동굴이 있지만 그냥 이름이 그럴 뿐, 저승입구가 한국에는 없다.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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