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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生死에 관한 아주 유별난 보고서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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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生死에 관한 아주 유별난 보고서 <34>

<제34화>죽음의 노래, 죽음의 춤

고(故) 박정희 대통령 등 국장(國葬)이 치러질 때면 한국의 TV, 라디오에서는 장중한 서양음악의 장송곡들이 흘러나온다.

에드바르드 그리그의 ‘페르 퀸트’ 가운데 ‘오제의 죽음’, 모차르트의 레퀴엠(Requiem)을 비롯한 서양의 진혼미사곡들, 쇼팡의 피아노 소나타 제2번 3악장인 장송곡(funeral), 역시 장송 행진곡으로 널리 쓰이는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의 2악장 등이다.

‘개발 명분의 전통 파괴’란 오명을 안고 있는 박대통령은 장례식에서조차 전통을 쓸어냈다는 원망도 듣는다. 적어도 하와이에서 타계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경우 이 땅에서 장례식이 치루어질 때 수많은 만장들이 펄럭이는 가운데 어느 정도로나마 ‘한국적 장례식’의 면모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전통 장례식을 ‘장례처리’한 박대통령이지만 한국 무속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역사상 참혹한 최후를 맞았던 최영 장군, 임경업 장군 등과 같은 반열로 모시며 그를 무속의 신으로 받드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지금의 국장에 해당하는 옛 나라님과 왕후, 왕태자와 그 비
등의 장례식인 인산(因山)때 특별히 쓰였던 국악은 없다. 5백년 유교 전통에서 송사위대(送死爲大), 죽은 이를 보내는 일생의 대사는 애도와 경건함이 있어야 했다. 국상이 나면 전국적으로 가무음곡이 금지되고 아마 인산이 나갈 때는 연도에 도열한 국민들의 곡성이 음악을 대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권인 서양에 레퀴엠과 장송곡이 있듯, 동양권에서도 나라마다 독특한 장례음악이 있다. 캄보디아, 태국 등 동남아 불교권에서는 왕실 장례에도 특별한 음악이 있고 문화에 따라 춤과 노래도 다양하게 펼쳐진다.

중국에서도 민간 장례식에는 요령을 흔들기도 하고 나팔을 불기도 하며 사자춤 등으로 벽사의 과정을 연출하기도 한다.

나라마다 만가(輓歌)라는 것이 있어 문화의 차이를 비교하기도 하는데 인도나 캄보디아의 만가에는 신과 사후 세계에 대한 영창이 이어지나 한국의 경우 ‘삶에 밀착된 애정과 해학’이 오히려 두드러진다.

죽은 이를 보낼 때 부르는 상두꾼들의 만가(輓歌)는 양반계급은 물론 민초에 이르기까지 저승길을 떠나는 이들 모두와 이승에 남는 이들을 위로하는 내용들로 독특한 한국적 레퀴엠을 형성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몇 백가지를 헤아리는 만가에는 무속을 비롯, 불교 도교 유교적 가사들이 혼재해 있다.

가장 흔한 가사는 ‘북망산이 멀다더니 저 건너 앞산이 북망이네’다. 한국
인이 죽어서 가는 산을 북망산이라 불렀으나 그 북망산은 중국에서 비롯된 산이다. 북망산(北邙山)은 중국 하남성(河南省)의 낙양(洛陽) 북쪽에 있는 작은 산으로 한(漢)나라 이후의 역대 제왕과 귀족 명사들의 무덤이 모여있던 곳이다.

자연히 북망산은 ‘무덤이 많은 곳’으로 결국은 ‘사람이 죽어 가는 산’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한국 만가의 주된 가사들은 삼국시대에서 조선조에 걸쳐 나온 시가들이며
민요 농요 시조 속담 등이 광범위하게 녹아 있다. 왕생가 찬불가 회심곡 백발가 원적가 등은 그 중 사용빈도가 높다.

-...나는 가네 나는 가네 이 세상을 하직하고, 백수나 상수나 하쟀더니 단 칠십도 못 살았네. 가네 가네 나는 가네 이 문전을 하직하고, 일가친척 다 버리고 이내 몸은 홀로 가네. 잘 가시오 잘 기시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슬픈 이별 장면을 노래하는 이 같은 만가는 장례식의 분위기를 한껏 슬프
게 해준다.

장례식에 죽은 이의 혼을 달래는 노래가 있는 곳은 기독교 전통의 유럽이다. 레퀴엠(Requiem), 즉 가톨릭의 장례식 때 부르는 진혼미사곡으로 많은 작곡가들의 레퀴엠이 있으나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그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죽음 직전 작곡한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모차르트는 어느 날 마른 몸매에 짙은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이 찾아와 레퀴엠 작곡을 의뢰했는데 그를 저승사자 쯤으로 여기면서 레퀴엠 작곡에 이상한 열정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경우 장례식다운 장례식을 치룰 수 없었으므로 음악 또한 연주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베토벤의 경우 그의 장례식에는 그가 작곡한 장송행진곡, 교향곡 3번 2악장이 연주되었다 한다.

39세에 폐병으로 숨진 쇼팽. 장송행진곡이 들어있는 피아노 소나타 2번( 3악장)의 작곡 역시 모짜르트의 레퀴엠처럼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작곡한 것이라니 작곡가와 장송곡의 관계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쇼팽의 경우, 정작 그의 장례식에는 전주곡 ‘빗방울’이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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