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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울 일이 아니야?"

김승호의 휴스턴 통신 <21>

***그게 왜 울 일이 아니야?**

아이들 성화에 몇 달 전부터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서너 달 고생을 해서
겨우 똥오줌을 가릴 수 있게 되어
그런대로 한 식구로 지낼 수 있겠구나 생각하던 참이었다.

어느 날 아들들이 학교를 간 후에
아내는 집을 치우고 시장을 보러 갔다 왔다.
그 사이에 심심함을 견디지 못한 강아지는
아내가 2년 동안이나 기적적으로 키워오고 있는
화분 하나를 소파에 물어다 놓고
잘근잘근 씹어 놓은 것이다.
씹다가 흔들었는지 마루는 온통 흙더미가 뒤범벅이다.

손님이라도 음료수를 들고 앉았다가는
아내의 눈초리를 받아야 하는
가장 아끼는 하얀 소파는
온통 검은색으로 변하고 풀물까지 들어 버렸다.

내게 요즘 서운한 것이 있었던 화가 난 아내는
흙을 집어 담다 그만 울어버린 것이다.

제 풀에 겁이 난 나도 뒤통수를 맞은 듯이
안방에서 화장실까지 내가 한 강아지 같은 짓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 보던 책은 바닥에 떨어져 있고
양말을 꺼냈던 서랍은 반쯤 열려있다.
집에서 입는 바지 하나는 방바닥에 꾸겨져 있고
주머니에서 빼내어 놓은 식당 영수증들은
아내 화장대 위에 버려져 있다.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세면대 앞의 거울은 온통 물을 튀겨 놓았고
거기도 서랍 하나 열어 놓고 옷장에 전기불은 켜 놨다.
칫솔과 비누는 제자리에서 벗어나 같이 놀고
드라이기는 줄이 엉킨 채로 세면대에 박아 놨다.
속옷 위아래는 사용한 수건과 엉켜 있고
변기엔 물이 묻어 있고 화장지는 한 귀퉁이가 젖어 있다.
(이건 먼저 목욕한 아들 놈 짓이다)
샤워실을 열어보니 뚜껑열린 샴퓨통과 린스통은 바닥에 뒹굴고
머리카락과 비누땟국물이 욕조에 그냥 있다.
하나같이 모두 그 동안 아내가 말없이 치워 온 일이다.

'화를 낼만 하지, 울을만 하지' 하며
부랴부랴 치우기 시작 했다.
가정주부 하는 일이 별 거 아니라는 사람은
나처럼 말썽꾸러기 강아지 한 마리를 키워야 철이 든다.

어느 토요일 한가한 오전이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아들 세녀석은
아침 만화영화가 끝나자마자
위층 아래층으로 다니며 깔깔거린다.
아내는 작은 방부터 치우기 시작하는데,
작은방에서 쫓겨난 아이들은
위층을 난장판으로 해놓고 나오고
위층을 치우는 사이에 거실로 몰려온 이 녀석들은
레고 장난감을 바닥에 냅다 부어 놓고
놀기는 팽이와 놀고 있다.
일찌감치 아침 먹고 깨끗하게 치운 부엌에는
둘째 놈이 그새 배가 고프다고 우유와 계란 프라이를 먹는다고
벌써 그릇이 서너 개 나와 어질러 있다.

이러기를 벌써 십여 년,
어이 없어 하면서도 아무 말 없이
웃어가며 가삿일을 하던 아내가
강아지까지 닮아 가는 걸 보고 돌아 버린 것이다.

해도 해도 표도 안 나고
끝나지도 않은 일이 가사일이다.
아무리 잘해도 칭찬은 없고
그러나 양말 하나만 제때 없어도
살림을 어떻게 하느냐는 소리만 듣는 것이
가정주부의 삶이다.

저녁에 퇴근해서 반듯하고 깨끗한
집에 살수 있는 것은 순전히 아내 덕이다.
강아지가 하루 해 놓은 짓에 저리 구박받는데
내게도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얼마나 여러 말을 하고 싶었을까?

강아지 한 마리 키우다가
별 욕을 다 본다.
철이 드는 걸까?
늙어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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