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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그런 실례의 말씀을..."

김승호의 휴스턴 통신 <22>

***무슨 그런 실례의 말씀을......**

몇 일전 어느 분의 소개로
유명한 의사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대뜸 날 불러 주는 호칭이 "승호씨"이다.
이름자 중에 "승" 이라는 글자가 조금은 중성적이다.
그래서인지 승호라는 이름을 별반 좋아하지 않는데도
성을 빼고 "승호씨"라 불러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그 외에도 여럿이다.
처가에 처형 셋이 모두 나를 승호씨라고 부른다.
예의와 한문을 공부하시는 장인어른은
제부라고 부르라며 처형들에게 한마디하시지만
벌써 고칠 수 없는 버릇이 되어 버렸다.
그 바람에 제부와 처형, 처제 사이보다는
친형제나 친구 같은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아내 없이 들리는 처가에 묵으면서
느닷없이 방문을 열었다가
옷을 갈아입는 옥희씨(큰 처형)와 마추쳐도
쑥스러움 없이 손뼉을 치고
웃으며 놀리고 나올 수 있고
내 외투 주머니에
영미씨(셋째 처형) 손을 집어넣고
거리를 걸어 다녀도 내외하는 느낌이 없다.

사람 사이에 인연을 맺어가면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 따라
인연의 정도가 변해간다.
결혼 전에 아내는 나의 여동생에게
희야와 언니라고 서로를 부르다가
아버님의 명령에 따라 아가씨라고 호칭을 바꿨다.
한 해가 지나더니 자매처럼 지내던 두 사람은
호칭 그대로 아가씨와 새언니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호칭을 지키다보니,
딸 다섯 집에서 혼자 미국까지 시집와서
외롭게 살고 있는 아내와 외동딸인 여동생이
다시 자매처럼 지내게 되기엔
몇 년이 더 지난 후였다.

나이 사십을 앞에 두고
주책없는 버릇이 하나 생겼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다짜고짜
친구하자고 덤비는 일이다.
늦은 나이에 사귄 친구와
마치 어린 시절에 사귄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가장 좋은 방법의 시작은
적절한 호칭이 우선이다.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만난 오랜 친구는 내게
아직도 존대와 함께 "김승호 형제님"이라는
결코 형제 같지 않는 호칭으로 부른다.
그러니 그 주책없는 버릇 덕에 사귄
동갑내기 현문씨나
두 살 많은 진구씨의 아량 덕분에
말끝에 "요"를 빼고 만난 몇 개월의 우정이
더 정이 가는 것이다.
존대하는 친구와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거리감을 좁혀 갈 수가 없다.
항상 평행선 같은 기찻길 우정일 뿐이다.
이메일 열 번 주고받은 일밖에 없는 진구씨가
처음 만나는 내게 헤어진 부랄친구 대하듯 함은
바로 그 호칭 덕분이다.

아이들 두셋 키우면서 뒤늦게 사귄 친구들로부터
승호야! 승호씨! 라는 이름을 들으면
등골을 짠하게 하는 매력을 느낀다.
내 허물을 보여줘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그 호칭이 주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책 한 권을 내고 보니
느닷없이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뜬금없이 선생님이란 호칭을 듣게 된다.
예의와 다감함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경우이리라.

"먼저 태어난 이"이라는 의미도 있는 선생이란 호칭을
연배가 있는 분에게 들을 때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더구나 내 회사 직원들도 사용하지 잘 하지 않는 사장님,
심지어는 회장님 소리를 들으면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제 이메일을 열어보니
두 아이의 엄마라는 분과
전주에서 고등학교선생 한다는 남자 분이
"승호씨에게"라며 메일을 보내왔다.
그 중에 한 분은
실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하고 토를 달아놨다.
실례라니?
무슨 그런 실례의 말씀을......

나를 그렇게 불러 주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사람 냄새가
미쳐 오지 않은 봄 냄새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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