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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구두쇠 산타크로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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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구두쇠 산타크로스' 이야기

김승호의 '휴스턴 통신' <23>

***중국인 산타크로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토이스알어스라는 한 장난감 상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루이사…….
이름표에 적혀 있던 그녀의 이름이다.
미국으로 이민 온 멕시코계 새댁으로
아직까지 영어도 서툴고
임신 8개월째로 남산만한 배를 가지고
열심히 계산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가끔 들리는 이곳에서 만난 루이사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고,
부모와 함께 장난감을 사러 오는 아이처럼
즐거운 모습이었다.

돈을 주고받고 거스름돈을 돌려주는 데
사용하는 영어는 불편이 없었지만,
전기 자동차의 사용법이나
장난감자동권총의 건전지 수명 기간을 물어 보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빙긋이 웃기만 한다.
마치 그 모습이 흘러내리는 안경을
광대뼈로 막아 보려는 듯하여
억지로 끌어 올린 양쪽 입술이 우스워
더 이상 묻지도 못하고 함께 웃고 만다.

문 닫을 시간이 거의 다 되었고
시험전날 벼락공부 하듯 뒤늦게 달려 온 부모들이
이런저런 여러 가지 장난감을 들고
계산대 앞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건은 그 때 일어났다.

중국인 부부 한 쌍이 아이들을 셋이나 데리고 와서
그 상점에서 가장 커 보이는
3백불짜리 2인용 전기짚차를
사겠다며 흥정을 시작한 것이다.

" 저기 진열되어 있는 짚차를 60불만 깎아주세요."
중국인 아내가 말했다.

그 상점은 오늘 하루 종일
수만 불의 장난감을 팔았을 것이고
루이사나 기다리는 손님들이나
다들 빨리빨리 계산을 끝내고
크리스마스이브를 가족과 보내기 위해
집으로 가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루이사는 그렇게 깎아 줄 권한도 없었고
진열품을 깎아 달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게 분명했다.

" 우리 아이들이 이걸 꼭 사고 싶어 합니다.
좀 깎아주세요."
이젠 중국인 남편까지 나서서 조른다.

루이사는 뭔가 영어로 말을 했지만
우리 모두 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뒷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우리들은
3ㅂ백불짜리 장난감을 사려는 사람들이
아이들까지 데리고 와서
남대문마냥 흥정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결말이 궁금해 지켜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결국, 만삭에 무거운 배를 지탱하기 위해 뒤
허리춤에 손을 갖다대며
루이사가 하려는 말은
옆줄에서 일하던 다른 종업원에 의해 통역되어 나왔다.

그 뜻은 짐작대로
"저는 깎아드릴 권한이 없고 물건은 모두 정찰제로 팝니다.
원하면 매니저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이었다.

" 그렇게라도 해 주세요."
중국인 남편은 물러서지 않았다.

뒤쪽에서 폐점 준비를 하던 매니저는
상황을 전해 듣고 정중히 말했다
" 저 진열품은 판매용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희 회사 방침은 모든 상품에
정찰제를 고수함으로 할인해 드릴수가 없습니다. 손님!"

"그렇지만 바퀴 한쪽이 약간 찌그러졌고 핸들이 벗겨졌더군요.
지금 팔지 않더라도 어차피 팔 것 아닙니까?
아이들이 이렇게 조르는 데 그냥 파시지요.
저희가 가진 돈이 딱 2백40불 밖에 없습니다."
중국인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고 뒤에
기다리는 손님들도 있고
오늘은 매출이 많이 올라 기분이 좋았던 매니저는
한발 물러서 한숨 한번 쉬더니
"그렇게 하시죠" 라며 루이사에게
뭐라고 지시하더니 들어가 버렸다.

중국인들과 베트남 사람들은
어딜 가더라도 흥정을 해서
가격을 깎는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현장을 목격한 나머지 우리들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중국인 부부의 성공이 약간은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마 돈은 모자라고 아이들은 꼭 그 짚차를 사고 싶었겠지…….

중국인 부부의 세 아이들은 신이 났다.
아마 깎아 주지 않으면
짚차를 사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 듯하다.

남자 직원들이 묵직한 짚차를 끌어 오는 사이,
중국인 아내는 지갑에서 백 불짜리 세장을 꺼내
루이사에 지불했다.
" 아니! 딱 2백40불 밖에 없다더니......"
우리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20불짜리 세장을 거슬러 받은 중국인 아내는
그 돈을 남자 직원을 도와
장난감 짚차를 끌어내던 남편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 돈을 들고 다시 루이사에게 다가왔다

"우린 그 동안 이 상점에 여러 번 당신을 봤습니다.
난 당신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저희들이 처음 미국으로
이민 와서 보내던 시절이 생각나더군요.
아내가 첫째 아이들 가졌던 크리스마스엔
돈이 없어 굶기도 했거든요.
이 돈으로 남편 분과 근사한 저녁 식사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옥으로 만든 부처님 목걸이를 한 중국인 산타에게
엉겁결에 60불이란 거금의 팁을 받은 루이사가
알아들은 말이란
메리 크리스마스가 고작 이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구두쇠 중국인 부부의 따듯함은
이미 마음으로 루이사와 우리에게 전해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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