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들어 지난 3년 사이의 변화는 20세기 마지막 3년에 비해 너무도 격렬해서 우리는 불과 4-5년 전의 일을 아득하게 먼 옛날 일로 생각하게 만든다. 발전과 변화란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한 특정 시기에 폭발한다.
21세기의 이 모든 격변의 도화선이 된 것은 정보-통신 혁명과 9.11 테러였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지금 한창인 이라크 전쟁은 9.11테러 사건의 연속일 따름이다. 또 지난해 우리가 겪었던 대선에서의 2030 세대의 선거 혁명도 인터넷과 휴대 전화를 통한 정보-통신 혁명의 한 면에 지나지 않는다.
환경의 변화는 우리들 삶의 코드를 총체적으로 바꿔 놓는다. 새로운 코드를 제대로 읽어야만 새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는다. 지금 이 시점에서 새로운 시대의 코드 읽기가 중요한 까닭의 하나도 여기에 있다. 여기 유재원 교수(한국외대. 언어학)가 새 시대의 코드 읽기를 시도한다. 편집자
지난 해 대선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 말들을 했다. 그리고 선거 결과를 2030세대와 5060세대 사이의 대결에서 인터넷과 휴대 전화라는 새로운 매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젊은 세대의 승리로 결론 지었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일 뿐, 현상들에 대한 설명은 아니다.
나는 지난 대선의 핵심은 C세대, 즉 캠페인 세대와 E세대, 즉 이벤트 세대의 대결이었다고 본다. 캠페인이 정치-사회적 목적을 위해 일관성이 있는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행동이라면, 이벤트는 특정 행사만을 위해 불특정한 사람들이 일회적으로 모여 벌이는 잔치이다. 다분히 즉흥적이고 일시적이다.
5060의 C세대는 선거를 캠페인으로 본 반면, 2030의 E세대는 이벤트로 보았다. 여론 조사에서 계속 박빙의 차이로 뒤진 한나라당은 선거의 끝판에는 조직이 말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 반면, 노무현 진영은 인터넷과 휴대 전화를 이용하여 젊은 세대의 선거 참여를 독려했다. 결과는 이벤트 세대의 승리였다.
젊은이들을 위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게릴라 컨서트라는 것이 있다. 인기 가수가 사전 계획 없이 방송국측의 부탁으로 자신들의 펜에게 연락하여 한 날 한 장소에 몇 명이나 모이는가를 보는 프로그램이다. 펜이 많이 모이면 가수들이나 펜들 모두가 기뻐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캠페인에 익숙한 기성 세대 눈에는 그런 기습적 행사에 모인 숫자가 뭐 그리 대단한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벤트 세대에게는 그 숫자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인터넷과 휴대 전화로 자신들이 목표로 했던 숫자를 채우는 순간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힘과 단결력을 확인하고 기쁨을 맛본다. 그리고 그뿐이다. 만족을 얻는 순간 그들은 뿔뿔이 헤어져 다시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벤트 세대는 이렇게 이벤트를 벌이고 또 참가하는 데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들에게는 인생의 목표나 장기간에 걸친 계획 같은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는 오랜 기간 동안 계획에 따라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이룬다는 심각한 도전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욕구는 일시적이고 즉흥적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또래끼리의 공감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순발력이다.
이런 E세대가 2002년은 자신들의 잠재력을 확인한 중요한 한 해였다. 연초에 김동성이 오노에게 석연치 않게 금메달을 빼앗기자 이들은 울분을 느꼈고 즉흥적으로 김동성에게 국민의 금메달을 만들어 주자는 인터넷 사이트를 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6월의 월드컵에서 이들은 붉은 악마라는 이름으로 지구촌의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고 그에 힘입은 한국 축구는 4강 신화를 일구어 냈다. 이러한 이벤트는 미군 장갑차에 치어 죽은 여중생을 추모하고 미국과의 불평등 소파 협정에 항의하는 촛불 시위로 이어졌다.
세 번의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인터넷을 통한 이벤트 만들기는 대통령 선거에서 절정을 맞았다. 선거 당일까지 이어지는 인터텟과 휴대 전화를 통한 투표 참여 독려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기적을 만들었다.
캠페인은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행동이라면 이벤트는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이다. 캠페인이 앞의 행동과 뒤의 행동 사이에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이벤트에서는 앞의 이벤트와 뒤의 이벤트가 연결 고리를 가질 필요가 없다. 매 이벤트마다 다른 이슈를 갖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 그래서 캠페인이 아날로그적이라면 이벤트는 디지털적이다.
이번 선거에서 기성 세대는 이런 젊은이들의 특성을 전혀 몰랐다. 젊은이들이 선거에 무관심하기에 투표율이 낮을 것이고 또 선거 막판에 가면 조직이 더 중요하기에 기성 세대의 뜻대로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이벤트로 본 젊은이들은 또 다시 붉은 악마가 되어 자기편을 응원하는 기분으로 투표장을 향했다. 그리고 또 한번의 성공적인 이벤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뿐이다. 이제 이벤트는 끝났다. 그들의 관심은 다시 자신들의 일상적인 문제로 되돌아 갔다. 그들은 어떤 특정 정치인의 지지자가 아니다.
다음 이벤트에서는 다시 그 순간 자신들의 영웅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정열을 불태울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이벤트가 생길 때까지 그들은 평범한 생활인이 되어 열심히 자신들의 삶을 꾸려나갈 것이다.
***유재원 교수는?**
<사진>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아테네 국립대학교 언어학 박사
-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큐닉스 자연어 처리 연구개발팀 고문
-전 마크로소프트 한국어 자연어 처리 연구개발팀 고문
-현재 한국외대 언어인지과학과 교수
-저서:
<그리스 신화의 세계> 1, 2권/<우리말 역순사전>/<표준 한국어 발음 대사전>(공저)
-소프트웨어 개발:
한국어 맞춤법 검색기(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 탑재)/바른글 한국어 전자사전(공저)
-논문:
그리스 서사시 영웅의 특성/왜 다시 신화인가?/신화로 본 정보 시대의 영웅/그리스 비극 형성의 정치 사회적 배경/신화와 영화/인간을 무엇을 꿈꾸는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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