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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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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

유재원의 코드읽기<3> E세대의 고민

근면과 성실, 그리고 투쟁으로 지금의 세계를 일구어 온 기성 세대의 눈에 이벤트 세대, 즉 E세대의 행동은 무책임하고 경솔하게 보인다. 그리고 이들이 주관이나 철학이 없고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기성 세대 덕분에 누리는 물질적 풍요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부모들이 어떤 역경을 헤쳐 나왔는가를 이야기하면 듣기 싫다고 외면하는 젊은이들이 배은망덕하고 이기적이라고 못마땅해 한다.

그러나 아무런 물질적 부족함이나 체제의 골치 아픈 문제를 모르고 자라난 E세대의 젊은이들에게도 기성 세대가 헤아리기 어려운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다.

E세대는 모든 것이 다 잘 정비되어 파고들 틈새가 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마주할 때 좌절감을 느낀다. 더 이상 창조적이거나 영웅적인 일을 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은 세계에 젊은이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스스로가 초라하고 왜소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기성 세대는 헤아리지 못한다.

이들 이벤트 세대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졌을 뿐이다. 그들이 태어났을 때 풍요와 민주주의, 자유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가난을 극복하고 지금 정도의 부와 안정을 이루어 내기 위해 온갖 것을 희생하고 자신의 청춘을 다 바쳤다는 부모 세대의 넋두리 뒤에는 무에서부터 유를 창조했다는 자부심과 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온몸으로 항거해 이 땅에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영웅심이 숨겨져 있다.

그렇게 고생하며 하나하나를 이루어간 기성 세대에게는 도전이 있었고 모험이 있었다. 그런 거창한 과업을 하는 동안 사명감과 성취욕을 느낄 수 있었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동안 즐거움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미 다 갖춰진 시대를 살아가는 이벤트 세대에게는 도전이나 모험을 할 기회가 없었다. 그들은 가난을 극복하고 산업 사회의 체제를 창조하는 성취감이나 독재와 부조리에 항거하여 싸울 비장감을 맛볼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했다. 영웅이 되고 싶어도 될 수 없고 모험을 하고 싶어도 할 모험이 남아 있지 않다. 도전할 것이 없는 젊음은 어쩌면 저주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E세대의 비극이다.

이런 그들에게 남은 기회는 기성 세대가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가능성을 파고 들어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 받는 것뿐이다. 이벤트 세대는 체제나 이념에 대해 무관심하다. 이들에게 체제는 주어진 값이고 이념은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기존 체제의 틈새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 받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다행히 새로운 기술이나 아이디어, 지식, 정보 등이 넘쳐 날 정도로 풍부하게 널려 있었다. 이런 기술과 정보를 잘 엮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이 가능했다.

때마침 불어 닥친 정보-통신 기술의 혁신이 이들의 작업을 훨씬 손쉽게 만들어 주었다. 이들에게 컴퓨터와 인터넷, 휴대 전화는 하나의 탈출구이다. 이들에게 인터넷과 휴대 전화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자신의 연장이고 분신이다. 이들은 새로운 통신 수단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기성 세대가 새로운 기계와 매체를 잘 다룰 줄 모른다는 점도 이들이 인터넷과 휴대 전화에 빠져드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하나가 되고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이들에게는 가상 공간이 현실 공간 못지않게 현실이다. 기성 세대의 중압감으로부터 일탈을 맛볼 수 있는 해방구이다.

그러기에 이들에게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표어 대신에 ‘접속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표어가 더 현실감이 있다. ‘나는 접속하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말도 이들에게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기성 세대는 이벤트 세대의 이런 모습에 우려를 나타낸다. 이들이 창조적이지 못하고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이벤트 세대의 입장은 기성 세대의 입장과 전혀 다르다. 이들에게는 넘칠 정도로 많은 유용한 기술과 작품, 아직도 쓰이기만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얼마든지 널려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발명품이 아니다. 기존의 기술이나 정보를 어떻게 종합해서 새로운 부가 가치를 만드느냐 하는 것이 더 큰 과제이다. 기성 세대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미래를 준비해 나가고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은 이 점에 있어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기성 세대의 걱정은 정보 통신 시대의 특성을 미처 알지 못한 기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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