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랑은 영웅의 성격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체제가 잡혀 있지 않은 초창기에는 프로메테우스적 영웅이, 그리고 체제가 관용과 유연함을 잃고 경직된 시대에는 디오뉘소스적 영웅이, 끝으로 모든 체제가 잡힌 안정된 시기에는 헤르메스적 영웅이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위해 제우스의 불과 지혜를 훔쳐 인류로 하여금 문명을 이루게 해준 은인이다. 그는 또 인간에게 집 짓기 기술, 농사, 가축 길들이기, 배를 만들어 바다와 강으로 항해하기, 글자의 발명과 글쓰기 기술, 기후 측정법과 점성술, 셈하기 기술, 흙을 빚어 토기를 굽기, 양털로 실 잣기, 천 짜기와 못 만들기, 등의 모든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에 필요한 예의와 법률, 각종 제도를 만들어 준 것도 프로메테우스였다. 이렇게 인간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발명품과 기술, 제도를 만들어 준 영웅을 문화 영웅이라 부른다.
흔히 술의 신으로 알려진 디오뉘소스는 제우스와 인간 여인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인간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기에 디오뉘소스는 가장 인간적인 신이었다. 그는 이미 신들 중심으로 짜여진 체제에 대해 인간적인 반항을 하였다. 인간보다 한없이 뛰어난 신들은 인간의 유약함과 약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사를 자기들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운영했다.
모든 면에서 유능한 존재인 프로메테우스가 만든 규범과 체제는 인간의 실수와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았다. 노동과 금기만 강요했고 축제와 일탈은 허락되지 않았다. 노동의 신성함과 경건함, 규율과 질서만을 강조하는 체제에서 인간들은 꿈꿀 자유를 잃었고 피곤할 때 쉴 수 있는 자유를 빼앗겼다.
그러나 인간은 일과 함께 놀이가 있어야 비로소 행복감을 느끼는 존재이다. 디오뉘소스는 올림포스의 경직된 체제에 대해 포도주와 광기로 반항했다. 프로메테우스의 이성적 세계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한동안 프로메테우스와 디오뉘소스의 두 세계는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충돌했다. 그러나 결국 올림포스의 신들은 디오뉘소스의 일탈과 축제의 세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주는 대타협 속에서 안정과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올림포스의 막둥이 신 헤르메스는 이렇게 모든 것이 갖추어지고 조화를 이룬 세계에 태어났다. 풍요와 질서가 지배하는 안정된 세계였다. 헤르메스는 어느 것도 스스로 창조하거나 부조리를 상대하여 투쟁할 필요가 없었다. 혼동의 세계는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 아폴론, 아테나 같은 앞선 신들에 의해 질서 잡힌 세계로 바뀌었고 이런 체제 잡기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부조리와 불균형은 뒤이은 디오뉘소스에 의해 바로잡힌 상태였다.
이런 세계에 태어난 헤르메스는 앞선 세대가 사용했던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헤르메스에게는 앞선 세대에게는 전혀 제공되지 않았던 새로운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세계와 디오뉘소스의 세계가 하나로 합쳐진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이었다. 또 그는 이미 형성된 지식과 정보, 풍부한 발명품과 기술을 여러 가지로 새로이 조합하여 새로운 물건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한마디로 헤르메스에게는 기존 체제의 모든 가능성을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이 허락되어 있었다. 그는 종합적 안목을 가지고 기존 체제의 틈새를 파고들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전령으로서 천상에서부터 지하 세계까지 자유로이 종횡무진으로 돌아다니며 세계 구석구석의 모든 정보와 소문을 듣고 다니는 권한을 누린다. 이는 앞선 세대의 신들과 영웅들이 위험한 괴물들이나 장애물들을 모두 없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서 나그네의 수호신이라는 헤르메스의 직분이 유래한다.
그리고 헤르메스는 이렇게 해서 얻은 풍부한 정보와 자신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때까지는 없었던 온갖 새로운 물건들과 장치들을 고안해 내는가 하면 이런 새로운 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소개해 준다. 이런 까닭으로 헤르메스는 상인들의 수호신의 직분을 얻게 된다.
헤르메스는 또한 바람의 신이다.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것은 바람뿐이기 때문이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한다. 산들산들 미풍으로 불 때에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일단 한곳으로 몰리면 토네이도처럼 가공할 만한 힘을 발휘한다.
인류의 역사 역시 신화처럼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유형의 영웅들이 번갈아 활약한다. 인류가 최초로 농사와 목축을 시작하고 도시를 세울 때에는 수많은 프로메테우스들이 출현했다. 인류 최초의 도시문명이라는 체제가 잡히자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하여 세계의 모든 문명권에서는 기존 체제의 부조리를 바로 잡으려는 소크라테스나 공자 같은 철학자들과 예수, 부처, 조로아스터와 같은 종교 개혁가들, 즉 디오뉘소스적인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시기가 바로 야스퍼스가 말하는 ‘축의 시대(The Age of Axis)’이다.
축의 시대를 뒤따른 로마-헬레니즘 시대나 중국의 당나라 시대, 인도 마우리아 왕조 시대에는 고도로 세련된 문화가 꽃피었다. 이 시대에는 새로운 창조나 사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앞선 세대의 지식과 기술, 아이디어를 종합하는 헤르메스적 영웅들이 등장한 시대였다. 이 시대의 지배자들은 당시의 지식과 정보를 끌어 모으려는 시도로 수십만 권에 달하는 장서를 가진 도서관들을 세웠다. 이런 지식과 정보의 종합화에 의해 유클리드의 기하학이 쓰여졌고 스토아학파에 의해 문법이 정리되었는가 하면 구약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 이 시대는 위대한 종합의 시대였다.
이런 역사는 반복된다. 중세가 끝나면서 유럽의 지식인들은 커다란 정신적 위기를 겪어야만 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같은 천문학자들이 지동설을 주창하자 그때까지 우주의 중심인 지구에서 만물의 영장으로 자부하던 인간이 졸지에 우주의 미아로 전락하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인간만이 하느님으로부터 이성을 부여 받은 존재임을 내세워 이 위기를 벗어나려 했다. 데카르트의 이성주의 철학은 과학의 시대를 열어 주었다. 과학과 학문의 발전은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이어서 산업 혁명을 이루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또 한번의 위대한 창조의 시대였다.
그러나 산업 사회는 빈부 격차와 환경 파괴,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인간적 체제를 가져 왔다. 이에 대한 반항은 18세기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이성보다는 감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낭만주의 운동이 그것이다. 그러나 디오뉘소스적 영웅들이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 것은 19세기 말부터였다.
반지성주의를 기치로 들고 나온 니체와 유물론의 마르크스, 성욕과 무의식을 강조한 프로이트는 프로메테우스적인 데카르트의 체제에 대한 디오뉘소스적인 반항을 이끈 영웅들이었다. 반체제의 반항과 투쟁은 1968년 5월 혁명으로 절정을 맞아 대부분의 요구사항을 관철 시킨 뒤 통합된 하나의 체제로 스며들어 갔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헤르메스의 시대인 정보-통신의 시대가 도래했다. 고속 전철과 비행기, 자동차에 의해 교통 혁명이 뒤따르고 이어서 컴퓨터와 인터넷, 휴대 전화의 통신 혁명이 뒤를 이은 후, 세계는 앞의 시대와 전혀 다른 세계가 되었다. 이제 세상에는 수많은 지식과 아이디어, 정보가 넘치게 되었다.
따라서 한 개인이 새로운 발명을 하거나 큰 발견을 하기에는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우리 주변에는 헤아릴 수 없는 새로운 물건들이 만들어졌지만 이 발명품들에 대한 발명을 주장하는 발명가들은 없다. 전화는 벨이 발명했지만 휴대 전화를 발명한 발명가는 없다. 백열등은 에디슨이 만들었지만 형광등이나 할로겐 등의 발명가는 누구인지 모른다. 페니실린은 플레밍이 발명했지만 비아그라의 발명가는 없다. 모두 이런 식이다.
모든 정보와 지식, 고급 기술이 넘치는 세계에서 더 이상 에디슨이나 베토벤, 피카소 같은 창조적 영웅이 나타날 가망성은 작아졌다. 정보 시대에는 곳곳에 널려 있는 정보와 기술을 조합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이 영웅이다. 어디에 정보와 기술이 있고 누가 자본을 가지고 있으며 어디에 시장이 있는가를 정확히 알고 이를 하나의 전체로 엮어 낼 수 있는 헤르메스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 영웅인 시대이다. 따라서 이 시대 영웅의 코드는 창조나 투쟁이 아니라 종합이다.
우리 나라는 서양에서 3백년 동안 일어난 이런 발전과 변화를 지난 한 세대 동안 겪었다. 절대 빈곤으로 헐벗고 굶주리던 60년대에 지금의 5060세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프로메테우스적 혁명을 일궈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찬란한 물질적 성공 뒤에는 개발 독재라는 어두운 그늘이 있었다. 젊은 날의 5060세대는 체제의 횡포에 온몸으로 저항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 잡으려 투쟁했다. 그리고 마침내 민주화를 이끌어 냈다. 이런 의미에서 5060세대는 프로메테우스의 역할과 디오뉘소스의 역할을 동시에 한 세대이다.
이와 같이 한 세대 동안의 기적 같은 변화를 겪은 뒤에 어느덧 우리 나라는 인터넷 사용과 휴대 전화 보급률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는 정보 강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의 주역도 차츰 프로메테우스나 디오뉘소스적 인간에서부터 헤르메스적 인간으로 바뀌어 갔다. 그것이 지난해에 2030세대가 사회의 전면으로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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