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부터 사흘간 북경에서 열린 북미중 ‘3자회담’에서 최근 최대 이슈인 북핵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시인’했다는 것이고, 북한은 현재 이에 대해 모호한 상태를 유지한 채 북핵문제와 관련해 소위 ‘대담한 제안’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한국정부는 북한의 핵보유 시인 발언 충격 이후 북핵정책과 관련한 심각한 고민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지난 번 글(23일자)에서 북한이 핵보유와 관련해서 1단계 전략적 모호성의 단계, 2단계 NCND 입장, 3단계 핵보유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단계로 빠르게 진전시켜 나가고 있음을 분석한 바 있다. 이번 북경의 북미중 3자회담에서 북한이 취한 태도는 2단계에서 3단계 사이 정도라고 해석된다.
북한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핵보유와 관련한 정책을 진전시키고 있는 이유는 자신들의 체제 생존전략과 현재 미국 부시정부의 정치경제적 조건과 연관이 있다. 아다시피 현재 북한의 전략적 목표는 체제안전과 경제회생이라 할 수 있는데 이의 실현은 부시정부가 미국의 9.11테러사태 이후 전개하고 있는 소위 ‘악의 축’에 대한 공격, 대이라크전과 같은 긴박한 상황변화들과 연관되어 있다.
또한 이라크전 이후 부시정부는 국내경제문제 수습의 중요성, 이라크전 이후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적 여론, 이라크전을 통한 미사일 등 중요 무기의 소진, 북폭과 관련해 중요한 변수인 주한미군 2사단의 오산. 평택으로의 이전 등이 해결되지 않은 조건에서 대북 강경책으로 나가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감정을 앞세우거나 원칙적인 주장만 하기보다는 대단히 실용주의적이고 냉정한 현실인식을 밑바탕으로 해왔음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건에 대해서는 북한도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되며 나아가 이같은 인식을 기반으로 즉 미국 부시정부가 만약 대북강경책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필요한 상황임을 활용하여 NPT 탈퇴, 핵보유에 관련한 높은 단계로의 선점 등의 수순을 진행시켜 협상력의 제고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10일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주최 북핵문제와 관련한 토론회에서 북한의 유엔 차석대사 한성렬은 최근 북한의 동향과 관련한 중요한 발언을 한 바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해보면, 북한은 2002년 7월1일 소위 시장경제적 요소를 상당부분 도입했다는 ‘7.1 경제관리 개선조치’ 와 9월 12일 파격적인 신의주 특별행정구 지정 발표등을 통해 개혁개방으로 나가고자 하는 정책전환을 추진하였고 대외적으로는 과거와 비교할 때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인 납치문제’ 인정까지 하면서 북ㆍ일수교를 추진하는 등 다방면에서 서방세계와 관계개선을 시도하였는데, 2002년 10월 미국 켈리특사의 북핵문제 제기로 한반도정세가 긴장국면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이 결과로 자신들의 소위 개혁개방정책은 어렵게 되었으며 특히 경제적으로 더욱 악화되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실제 켈리특사의 북한 핵문제의 제기 의도로는 북일정상회담과 북일수교에 의한 미국중심의 동북아체제 변화에 대한 우려와 한국의 햇볕정책에 의한 북한체제의 숨통틔우기에 대한 제어, 그리고 북한의 핵ㆍ미사일등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강경대응, 비타협적 입장과시 등이 결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켈리특사의 핵문제 제기로 위의 의도들은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빠졌으며, 반면에 미국을 상대로 한 군사적 강경 대응정책들이 단계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남북관계개선, 북일수교의 추진, 시장경제적 요소의 도입과 특구정책 등을 통한 개혁개방을 통해 체제안전과 경제회생이라는 자신들의 전략적 목표를 추진하다가 작년 10월 켈리특사의 핵문제 제기로 개혁개방정책을 통한 자신들의 전략적 목표달성이 어려워지자 미국을 상대로한 핵카드를 능동적, 적극적으로 빅딜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인식에 비추어볼 때 한국정부의 북핵정책은 현실인식과 대응정책에서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 예를 들면 북경의 3자회담에 대해 한국정부의 불참에 대한 불만표시와 무리한 참여요구 등은 북핵문제를 구조적으로 인식해 본다면 적절하지 못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북핵문제는 역사적, 구조적으로 인식해볼 때 본질적으로 미국과 북한간에 해결되어져야 하며, 현 상황에서도 회담의 형식보다 실질적 해결이 중요한 시점인데 부차적 문제로 협상을 어렵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이 문제는 향후 미국 강경파들이 3자회담을 무산시키는 정책전개를 추진할 때 적절한 구실로 이용될 수도 있다.
또한 더 중요한 문제는 현재 진행중인 남북장관급회담 등 남북협상과정에서 북핵문제가 해결된 뒤에 남북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한다느니, 해결되기 전까지는 지금까지 진행되어왔던 것 중에서 최소한의 것만 해야 한다라는 등의 입장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태도는 북핵문제를 최악의 국면으로 몰고가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북한의 전략적 목표는 체제안전과 경제회생인데, 체제안전 문제는 이미 분석한 바대로 핵카드를 매개로 북한과 미국사이에 치열한 외교전이 전개되고 있으며 한국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대단히 적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추진해야 할 정책과제는 북한경제를 매개고리로, 협상의 지렛대로 하여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하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세력과 군사주의적 해결을 선호하는 세력간에 미묘한 긴장관계가 있다(이에 대해서는 추후기고). 그런데 미국의 지속적인 경제제재, 나아가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이루어진다면 북한은 전쟁도 불사하는 정책으로 나갈 것이다. 실제 북한은 외무성 발표로 ‘유엔의 경제제재에 대해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까지 한 바 있다.
북한이 현재의 어려운 경제상태에서 더욱 악화된다면 이는 단순한 주민생존문제 차원을 넘어서서 체제위협문제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 직면할 때 북한 지도부는 특히 군사주의적 해결을 선호하는 세력은 핵무기보유의 공식적인 선언에서 더 나아가 전쟁도 불사할 공산이 높다.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은 이같은 상황을 유도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상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현재 부시, 특히 럼즈펠드조차도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 노력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상황변화에 따라 언제든 바뀔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반면에 남북경제 협력이 대폭적으로 활성화 되고, 북한에서도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세력이 힘을 얻는다면 북핵문제의 해법에 대해서도 훨씬 유연하고 합리적인 접근을 해올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한국정부가 해야할 핵심고리는 남북경제협력사업의 대폭적인 활성화인 것이다.
그런데 이는 시간싸움의 측면이 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미국 부시정부의 강경파들은 북핵문제를 강경책으로 해결을 추진하더라도 시간이 필요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정부는 남북경협에 대해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으며 경의선, 동해선 철도. 도로의 연결, 개성공단의 속도감 있는 추진, 금강산 육로관광 활성화, 남북통신협력의 빠른 해결등 적극적인 대북 경제 협력사업을 전개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것이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디딤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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