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페르몬 냄새부터 맡는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아침에 일어나면 페르몬 냄새부터 맡는다

유재원의 코드읽기<5>-개미 닮아가는 인간

불과 한 세대 전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시계에 태엽을 감았다. 그리고 직장으로 가서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난 뒤에 하루의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일어나자마자 시계에 태엽을 감지 않는다.(요즈음 아이들은 아예 태엽이란 낱말조차 모른다) 대신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부터 열어본다.

중요한 메일이 있으면 출근 이전부터 그에 대한 적당한 조치를 한 뒤에야 출근을 한다. 직장에서도 사람 얼굴을 보는 시간보다 모니터 화면을 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길다. 어떤 날은 거의 하루종일 모니터를 보고 업무를 처리하느라 옆의 사람하고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메일과 인터넷뿐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휴대 전화는 출퇴근 길도 가리지 않고 식사 시간에도 용서가 없다. 길을 가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 잠을 자다가도 응답해야 하는 것이 휴대 전화이다. 이제 사람들은 집이나 사무실 전화로 전화하지 않는다. 휴대 전화로 직접 전화한다. 아무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메일과 인터넷, 그리고 휴대 전화와 씨름하고 나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하루종일 통신망의 그물을 헤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정보시대 인간의 행태는 개미의 행태와 흡사하다. 개미들은 일어나자마자 다른 개미가 뿌려 놓은 페르몬(pheromone) 냄새부터 맡는다. 그리고 그 냄새가 지시하는 대로 다음 행동을 한다.

개미 사회에서 페르몬을 통한 업무 지시는 끝이 없다. 한 일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지시가 기다린다. 하루종일 페르몬의 지시에 따라 바삐 움직이다 보면 하루 해가 진다. 이런 쳇바퀴 돌기가 개미의 일생 동안 계속된다. 정보 통신 시대의 인간도 일생 동안 통신망의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개미는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문명 행위를 이미 오래 전부터 하고 있다. 엄청난 건축물을 짓고, 잉여 생산물을 비축하며, 또 농사를 짓고 전쟁도 한다. 심지어 노예도 부리고 약탈도 한다. 이와 같이 개미는 잘 조직된 사회 생활을 하기에 생태계에서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를 차지한다.

그런데 개미 사회는 이렇게 위대하지만 개미 한 마리 한 마리를 떼어놓고 보면 아주 보잘것없는 미물이다. 그렇다면 개미들이 농사를 짓고 전쟁을 하는 그 복잡한 정보와 지식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여왕개미의 머리 속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특정 집단이 관리하는 것일까?

개미들이 벌이는 대규모 사업에 비해 개미들의 두뇌는 아주 조그맣다. 여왕개미의 머리라고 해봐야 콩알만큼의 크기도 안 된다. 그 머리 속에 개미 사회의 엄청난 지식과 비밀이 다 들어갈 수는 없다.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개미와 개미 사이의 관계망에 개미 사회의 모든 지적 정보가 있다. 개미의 두뇌는 사고의 도구가 아니라 신호 처리를 위한 접속의 도구일 뿐이다. 이 간단한 신호 처리기에 의존하여 각 개미는 공동 목적을 위해 한 몸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개미 전문가의 말처럼 일개미는 여왕개미와 숫개미를 만들기 위한 체세포에 지나지 않고 여왕개미는 생식 세포에 지나지 않는다.

개미 집단은 각기 살아 움직이는 수많은 개미로 구성된 초개체(superorganism)이다. 그러기에 집단을 떠난 개미는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개미는 오직 다른 개미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의 이유를 갖는다.

인간 역시 개미와 마찬가지로 고도로 조직된 사회 안에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지만 개개인이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서 존재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다.

인터넷과 접속하여 인간 페르몬이라 할 수 있는 이메일을 열어야만 생활이 가능한 정보 시대의 인간은 점점 개미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인터넷에 연결된 개인 컴퓨터는 신호 처리를 위한 접속 도구일 뿐이다.

인터넷에 깔려 있는 엄청난 양의 정보에 비해 개인이 알고 있는 지식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는 인간은 그 정보에서 소외된다. 그것은 정보 시대에 있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집단을 떠난 개미처럼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인터넷망과 함께 인간 사회에서도 개성을 가진 인격체로서의 인간은 사라지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성격만 남게 될 것이다. 기술과 과학의 발달이 과연 인간을 위한 발전인지 갑자기 의구심이 생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