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0일 평양에서 열린 제10차 남북장관급 회담이 6개항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하고 폐막했다. 주요내용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노력에 대한 원칙적 언급,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경의선ㆍ동해선 철도 및 도로연결, 개성공단 착공 등과 관련한 경제협력추진위 개최(5월 19일 평양) 등에 대해 합의했다.
이번 회담은 예정보다 하루 연장까지 되었는데 그 이유는 정세현 장관의 언급처럼 ‘북핵문제를 공동보도문에 넣는 문제를 가지고 2박 4일 동안 50시간을 버틴’ 것 때문이다. 이는 국내 정치적 고려 때문이라고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실제 핵심적으로 진전시켰어야 할 남북경협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성이 부족한 것을 볼 때 현재의 북핵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법(지난번 연재글 참조), 남북협상 속에서 핵심적으로 획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들어 남북경제협력사업관 관련한 신규승인이 한 건도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최근의 북핵문제와 관련해 신중한 사업검토가 상당부분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데 첫째는 '북핵문제 해결돼야 남북경협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라는 정책담당자들의 잘못된 인식이고, 둘째는 미국 부시정부의 북핵과 관련한 정책, 즉 군사적 해결은 유보한다 하더라도 경제제재를 핵심으로 하는 소위 외교적 해결정책에 의거한 직접적ㆍ간접적 압력이 작용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런데 대북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관료들을 만나보면 두 번째가 근본원인인데 첫 번째의 이유를 변명으로 앞세우는 경우도 많다.
첫 번째 요인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이같은 남북경협과 관련한 잘못된 단계론적 인식은 결국 경제적 제재를 지렛대로 한 외교적 해결단계를 거쳐 군사적 해결을 추구하는 미국 매파와 더욱 악화되는 북한경제 상황을 기반으로 핵무기 등을 빅딜의 카드로 내세우고자 하는 북한의 강경파들간의 충돌을 가져와 결과적으로 남북경협의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남북간 철도 연결공사가 한창일 때 주한미군중 강경파로 꼽히는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제임스 솔리건 소장은 ‘군사분계선 통과는 반드시 유엔사 승인을 거쳐야 하고 북측이 유엔사를 배제한다면 남북간 교류ㆍ협력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 이라고 하여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또한 필자가 남북통신 협상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겪은 것은, 우리나라가 상용화하고 있고 미국식 기술인 CDMA방식 이동통신 기술의 북한 진출과 관련하여 미국정부의 공식적인 입장도 아닌데 미 정부 및 주한 미대사관 일부 관리가 이 사업과 관련해 부정적인 언급을 한 것을 이유로 정보통신부 정책담당자 등이 대단히 소극화 되는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
남북경협과 관련해 만났던 북한측 인사들은 이같은 현상들에 대해 ‘당신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 합의해 놓고도 미국이 헛기침만 해도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라는 식으로, 조금은 과장됐지만 무시할 수 없는 비판도 하곤 한다.
현 윤영관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남북경협에 대해, 남북한간 경제협력과 신뢰유지가 우리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를 높여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며, 또한 미국에게 대화와 협상으로 북한문제를 풀게 만드는 한국정부의 능력을 제고시킬 것이고, 만일 한국이 핵개발 제재를 위해 경제협력을 중단한다면, 미국과 북한사이에서 한국정부가 담당해야 할 외교적 입지를 스스로 버리는 일이 될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올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외교안보통일정책 특히 남북경협과 관련한 구체적인 동향을 보면 이같은 인식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단계에서 추진하는 남북경협은 ‘그랜드 디자인’을 가지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중앙일보가 기획했던 ‘예산 1% 북한지원에 쓰자’에서 지적된 것처럼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북한의 경제발전전략과 남북경제 공동체로 가는 로드맵, 나아가 노무현 정부의 핵심적인 국가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는 동북아경제중심 추진 등과의 연관성을 세우고 이에 기반하여 예산지원의 문제, 민간기업과 ‘2인 3각’식 협력의 문제, 지속적이고 규모있는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펀딩 문제등의 구체적인 계획이 요구된다.
현재 한반도의 사활이 걸려있는 핵심이슈인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족공조와 한미공조를 핵심으로 하는 국제공조를 지혜롭게 조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정부의 입장과 정책에 대해 최대한 존중하되 남북경협과 관련해서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정책을 관철시켜야 한다.
이는 노무현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자주외교를 실현하느냐 못하느냐라는 핵심적인 가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길만이 북한내에서도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개혁개방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실용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미국 매파의 군사주의적 해결을 추구하는 흐름도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한반도는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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