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국회를 통과하고 3월 14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대북송금 특검법’은 산업은행의 현대상선 대출금 2억달러가 정상회담 뒷거래에 사용된 의혹,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주도의 5억 5천만 달러 송금의혹, 현대전자 스코틀랜드 공장 매각대금 1억 5천만달러 송금의혹을 수사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미 의회조사국의 지난 3월 17일자 ‘한미관계보고서’는 “김대중 정부 당시 현대가 북한으로 송금한 돈은 모두 9억달러 이며, 이중 4억달러는 금강산관광사업과 관련 1999~2001년 사이에 보냈고 나머지 5억달러는 현대가 2000년 6월 정상회담 직전에 제공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보고서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래리 닉시 연구원은 “9억달러 가운데 1억달러는 김정일 위원장의 개인용도로 사용됐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같은 정황들에 대한 진실은 정주영 회장이 그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단순히 송금 액수 뿐만 아니라 송금의 배경, 목적, 방법 등에 이르기 까지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인데,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현대는 수억달러에 달하는 대북 송금액에 대해 북측으로부터 철도, 전력, 통신, 관광, 개성공단 등 7대 사업권을 독점하기 위한 대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5억달러가 큰돈이지만 현대가 북한의 사회간접시설 전반인 7대사업의 30년 독점권을 따냈다면 그 대가로는 크게 부족한 금액’ 이라는 평가도 있다. 또한 현대에서는 ‘광범위한 대북 사업권 획득 뿐아니라 남북정상회담 성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5억달러를 북한에 송금했으며 대북송금이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일정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와 정치는 긴밀히 연관되어 있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변화, 발전한다. 이는 남북경협과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경제와 정치, 기업과 정부의 상호작동 메카니즘을 통해 확인되는 사실들이다. 기업과 정부가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국가간의 거래는 대단히 복잡성을 띠는 경우가 많아 정부간 공식 관계와는 다른 차원에서 한쪽에 불리한 외형적 협상결과를 상쇄하기 위해 민간기업에 대한 사업적 특혜 또는 이권을 주는 경우도 많다. 단지 선진국과 후진국간에는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이 얼마만큼 세련되어 있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를 앞둔 지난 5월 2일 미 텍사스주에서는 삼성전자의 반도체공장 5억달러 투자유치 설명회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는 조지 부시 전 미국대통령 등 미 정계의 고위인사들이 참석하였다. 한편 노 대통령은 방미시 아시아 지역에 1백억달러 규모의 반도체공장 투자대상지역을 탐색중인 인텔사의 CEO를 만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세련된 경제외교가 있는 반면에 일본 미쯔비시사의 경우처럼 태국 왕실에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대가로 태국에 브라운관 공장 하나 지으면서 시장에 대한 이권, 공장에서 항만까지의 도로공사. 항만공사를 독식하는 등의 세련되지 못한 사례도 있다. 이처럼 세련되지 못한 사례는 제3세계ㆍ독재국가들에서는 거의 보편화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우리 기업들이 중국이나 제3세계 개발독재국가등의 시장에 진입할 때 이같은 방식을 통한 비용지출 등에 대해서는 기본상식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 정주영 회장이 2001년 3월 사망했을 때 한국사회는 그에게 ‘한국경제 발전과 발자취를 함께해 온 산 증인이자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한 근대화의 주역’ 이라는 찬사와 더불어 ‘ 정경유착과 노동자 탄압의 대표적인 인물’ 이라는 양극단의 평가가 내린 바 있다.
필자는 이같은 평가들보다 그가 한반도의 분단과 냉전의 장벽을 허물어뜨린 주역이었다는 점을 더 중요하게 평가하고 싶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화해협력정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정주영 회장이 ‘98년 소떼 방북’ 98년부터 시행된 ‘금강산 관광사업’ 그리고 개성공단 등 다방면의 남북경협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면, 과연 2000년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했을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수 없다. 아마 훨씬 우여곡절이 많고 시간도 많이 소요됐을 것이다.
또한 사업적인 차원에서도 만약 정주영 회장이 약 10년 정도 제대로 경영활동을 지속했더라면 대북사업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소위 ‘왕자의 난’ 도 없었을 것이고, 현대 그룹 전체적인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면서 대북사업을 전개했더라면 남북경협과 한반도 문제는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 됐을지도 모른다.
남북경협의 폭과 깊이의 확대와 심화 → 남북관계의 평화분위기 제고 → 일본 자본 및 다른 국내 대기업의 북한진출 → 북한내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실용주의 세력의 확대 →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가능성 제고 → 대북투자의 확대와 북한 개혁개방의 가속화라는, 한반도가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선순환의 흐름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성공적으로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등소평의 개혁개방에 대한 올바른 설계와 뛰어난 리더십도 크게 작용하였지만 이를 화교자본이 뒷받침하였기 때문이었다. 시장경제의 도입을 통한 경제회생과 개혁개방전략은 외자유치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인 1991-1996년 소위 투자리스크, 컨트리 리스크가 많다고 하여 서방자본들이 중국에 대한 투자를 꺼려할 때 화교자본들이 외자유치의 약 70%를 담당하였다. 그 결과 중국경제는 시장경제를 지렛대로 하는 경제 활력을 찾기 시작하였고 이후 서방자본은 중국에 대한 투자를 대대적으로 확대하게 되었다. 당시 초기 투자에 참여 하였던 화교자본가들은 새로운 시장개척과 수익창출이라는 자본가 고유의 이해관계만 계산한 것이 아니고 자신들 조국의 경제를 발전시켜보자는 애국심도 적지 않게 작용하였다고 한다.
현재 남북경협은 현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세한 중소기업, 벤처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사실 자본가적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대북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고 그 결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기여하였으며 민족경제 공동체의 발전이라는 과제에도 기여하였다. 그런데 이에 대해 상은 주지 못할 망정 소위 ‘특검’ 이라는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재벌들의 자본축적의 역사성을 고려할 때, 재벌들은 당연히 남북경협에 적극 참여하여 민족경제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에 적극 나선 이는 피해를 당하고 수익성만을 앞세운 다른 재벌들은 잘 나간다면 사회정의 차원에서도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이라면 누가 앞으로 남북경협에 적극 나서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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