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의 선언**
2001년 1월 3일, 신정연휴가 끝나자마자 나는 새벽같이 출근했다. 서너 종의 조간신문을 꼼꼼하게 훑으며 하루를 준비할 시간이었지만, 그날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 내 방에 홀로 앉아 마음을 다잡았다.
임원회의에서 퇴임의사를 밝히는 것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분당과 천안에서 임원들이 올라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그 틈에 나는 조용히 차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선물받은 좋은 차가 있어 오랫동안 직접 우렸다. 새해 벽두부터 긴급이사회를 소집했으니 어지간히들 긴장했으리라. 무심한 차향은 은근하고 고요했다.
얼마전 나는 어느 신문 좌담회에 참석했다가 당시 모 대학의 명예교수 L씨를 만났다. 그의 전공은 정신분석학이었다. 좌담이 끝나자마자 나는 L교수의 손을 잡고 식사자리로 이끌었다.
“사실은 제가 은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물려줄 생각입니다. 하지만 제가 꼭 해놓고 가야 할 일이 아직 좀 남아서 이삼 년 정도 더해야 하나 어쩌나, 이래저래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하지만 정사장님의 은퇴는 지금이나 2, 3년 후에나 그 의미가 똑같을 것 같네요. 효과는 똑같겠지만 후자는 아마도 결행이 더욱 힘들겠지요.”
오전 11시. 창업 초기부터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사람들, 그리고 뒤늦게 합류했지만 <미래산업>을 일으키는 데 성심을 다했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서울, 분당, 천안에서는 지금쯤 수많은 미래인들이 언제나처럼 자기 자리에서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했던 고난과 헌신과 눈물과 감격들.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회사의 주인들이었다.
“이번 연휴에 제 아이들과 밥을 먹었습니다. 부모 덕 보는 것을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세상인데, 참으로 기특한 놈들이지요. 각자 독립해 살면서도 돈 한 푼 달라는 적 없고, 힘 좀 써달라 부탁한 적도 없어요. 언젠가는 큰 녀석 취직을 도와주려다가 외려 혼난 적이 있지요. 그놈들이 엊그제 저를 울렸습니다. 이 인색하고 박정한 애비한테 존경한다고 말해주지 뭡니까.”
난데없는 아들 자랑에 어리둥절할 법도 했지만, 임원들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
“그애들한테 얘기했습니다. 이제 그만 은퇴하겠다고 말입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 아이들에게 미안했어요.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동안 사업한답시고 제가 얼마나 식구들을 고생시켰습니까. 하지만 미안해도 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임원 하나가 내 옆자리로 옮겨앉아 다짜고짜 팔뚝을 붙잡았다.
“은퇴하시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렇게 결심을 다져왔지만 또다시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혹시 내가 비겁한 건 아닌지. 진정한 모험과 도박이 시작되려는 이 때, 좋은 이름만 가지고 혼자 도망치려는 건 아닌지. 하지만 이런 순간에 장고(長考)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번 결정한 벤처는 장고도 재고(再考)도 하지 않는 법.
“미래산업은 지금 다소 부진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심만 잊지 않는다면 우린 곧 다시 도약할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의 기업들은 미래산업의 이름을 경쟁사 목록에 올리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제가 할 일은 끝났습니다.”
나라 전체가 벤처위기론에 빠져있고, 세계적인 반도체 경기의 악화 때문에 <미래산업>의 주가도 형편없이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개발에 성공한 ‘SMD마운터’는 세계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었다. 경기는 순환하지만 기술은 축적된다.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시점이야말로 후임자의 부담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적기였다. 침체는 물러나는 자의 몫으로 돌리고, 회복과 성장은 새 사람의 몫이길 바랐다.
“음식은 상한 다음에 남 주는 게 아니랍디다.”
지난 몇 년 동안 회사는 이미 부사장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점을 못 잡았을 뿐, 지난 2년 동안 나는 꾸준히 은퇴를 준비해 왔다. 어차피 나는 약간의 결정권을 부여받은 고문일 뿐이었다. 은퇴라 하지만 실무자들에게 인계할 만한 사항도 별로 없었다. 오래 전부터 정책결정과 자금운영은 팀별로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판공용 법인카드 한 장과 골프회원권 한 장을 반납하는 걸로 퇴임절차는 끝이었다. 그 두 가지를 넘겨주는 대신, 재무팀으로부터 내 인감과 통장을 돌려받았다. 집을 담보로 사업자금을 융통하던 시절부터 아예 경리과에 맡겨 둔 채 잊고 있던 물건들이었다. 기업인에서 자연인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종의 패스포트이기도 했다.
죽음이란, 태어나서 자라고 늙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한 과정이다. 미국의 한 목사는, 죽음을 삶의 정점으로 파악하고 차라리 축제로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옛부터 불교에서 가르치는 바도 그와 같거니, 진리란 역시 하나로 통하는 모양이다. 은퇴 역시 사회인으로서의 죽음이지만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축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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