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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술 목에 방울 달기

정문술의 거꾸로 인생론-'노욕(老慾)' <5>

***정문술 목에 방울 달기**

2003년. 나의 은퇴는 벌써 옛일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지인들의 취직 청탁은 심지어 정원 관리, 공장 청소, 구내식당에 이르기까지 한도 끝도 없이 밀려온다. 은퇴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그래도 오너는 오너”라는 식이다. 이러저러한 일에 “신경 좀 써달라”는 식의 당부도 골치 아프다. 간접적이되 훨씬 부담스러운 청탁들이다.

며칠 전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요즘 미래산업에 별 일 없나? 들리는 말로는 마운터 해외 판로가 만만치 않아 고전이라던데….”

“나보다 자네가 더 훤하구먼.”

“자네 요즘, 회사 일에 도통 관여 안하나?”

“회사 떠난 지가 언젠가.”

“보고도 안 받나?”

“보고하는 사람도 없네.”

“그래도 자네 회사 속사정 좀 알아봐 줄 수는 없나? 요긴해 할 사람이 있어서 말야.”

“미래산업이 왜 내 회산가?”

“그럼 누구 회산가? 우리끼린데 꼬장꼬장하기는.”

“전화 끊게.”

나는 결국 짜증을 내고 말았다.
이런 식의 통화에는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또 이런 예도 있다.

“요즘 미래 주가 많이 떨어졌지?”

“뭐 그런 모양일세.”

“어쩌나…. 자네 재산 많이 줄었을 텐데.”

대놓고 떠보는 거다. ‘다 알고 있는데 무얼 자꾸 딴 소리냐’는 거다. 아무리 친한 사이끼리라지만, 조용히 살려는 사람에게 너무 괘씸한 작태들 아닌가. 그럴 때마다 “난 주가 잘 모르는데…”하고 대충 얼버무린다. 하지만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신문을 볼 때마다 나도 주식란을 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TV뉴스 마지막에 시황정보가 흐르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아예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미래산업>의 주식변동을 알게 되면, 대주주로서 주가를 관리하고 싶어질 게 뻔하지 않은가. 전임 사장으로서의 ‘주가 관리’란 곧 ‘경영 참여’다. 알량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경영진에 조언을 해주겠다며 앞뒤없이 나설 게 분명하다. 자꾸 잔소리나 할 바에는 애초에 은퇴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우리 막내가 자네 회사 연구소에 들어갔네. 기특하지 뭔가. 정직한 회사에서 정직한 길을 가보겠다는구먼. 내가 특별히 권한 바도 없는데 말야.”

“아, 그런가. 참 잘 되었네.”

대놓고 표현은 못해도 ‘그래도 네가 실세일 테니 신경 좀 써달라’는 말이다. 너나들이 할만큼 가까운 지인들마저 나의 은퇴를 곧이 곧대로 믿어주지 않는다. 그게 소위 이 사회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작년 말, <미래산업>의 대표가 전화로 면담을 요청했다. 무조건 피하려 했으나 그날따라 통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한 번 들르시게”했더니 다음날로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내 앞에 앉은 그는 실없이 안부나 챙기며 횡설수설했다. 마침내 성미 급한 내가 자진해서 미끼를 물었다.

“그래, 뭔 얘긴가?”

“천안 1공장은 이제 필요가 없습니다. 2공장이면 충분합니다.”

“팔았으면 좋겠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사람아, 아직도 날 모르나? 전임 사장 심기까지 배려할 정도로 한가한가. 그 정도로 여유가 있으면 팔지 말게.”

“죄송합니다.”

천안 1공장은 <미래산업>의 발원지이자 내 벤처인생의 고향집이었다. 창업한지 꼭 11년 만에 미래식구들이 처음으로 갖게 된 ‘내 집’이었다. 부천에서 천안으로 전직원의 살림집을 이주시켰던 이른바 ‘천안 대이동’의 신화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나는 그곳에서 일어났고 <미래산업> 역시 그곳에서 일어났다. 그곳은 나의 ‘첫 작품’이자 자랑이었다.

정문술과 <미래산업>의 상징이요 자존심을, 그것도 심각한 상황도 아닌 시점에 단지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처분하겠다는 말이다. 아마도 임원들은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의 문제로 고심했을 것이다. 결국 대표가 된 죄로 그가 나를 찾아왔을 것이다. 천안 1공장을 팔겠다는 건, 추억과 자존심밖에 남은 것이 없는 늙은이의 앙상한 목에 비수를 들이대며 용도폐기를 선언하는 일일 수도 있었다.

내가 후임자 하나는 제대로 세워둔 모양이다. 나는 그들에게 서운하면서도 감사했다. 그가 돌아간 후로도 꽤 오랫동안 나는 서글펐고 뿌듯했다. 나의 진짜 속마음을 얄밉도록 잘 알아주는 건 미래인들밖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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