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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인정과 몰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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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인정과 몰상식

정문술의 거꾸로 인생론-'노욕(老慾)' <6>

어떤 행인이 길에서 두툼한 지갑 하나를 주웠다. 돈도 돈이지만 주인되는 사람의 신분증이며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전화번호부 등이 그 안에 들어 있었으니 주인되는 사람의 안타까움을 알 만했다. 행인은 그 지갑을 경찰서에 갖다준다. 경찰서에서 상주하고 있는 각 신문사의 사회부 기자들은 다음날 조간 사회면에 그 ‘사건’을 일제히 기사로 올린다. 이게 우리 사회의 ‘세태’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을 ‘미담’으로 기려야 할 만큼 우리 사회는 비상식적이다.

내가 <미래산업>의 경영권을 종업원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한다는 발표를 하자 기자들이 몰려왔다. ‘주식회사’란 일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므로 사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2세에게 경영권을 넘길 권리라는 게 도대체 사장에게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이 상식적인 논리를 세상은 비상식으로 여긴다. 눈앞에서 상식을 실현해 보여도 믿기지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극찬’이다. 이 극찬들은 내게 부끄러움과 과분함을 넘어 때론 거북함까지 느끼게 한다.

평생에 걸쳐 모은 자기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준다고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아니, 그러한 비난은 부당하다. 정당하게 축적한 재산을 사랑하는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속이란, 사적(私的)인 이윤추구의 가장 동물적인 원동력이 아닌가.

정작 문제는 ‘자기 재산이 아닌 것’을 물려주려는 데 있다. 구멍가게도 아니고 주식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교회마저도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성직자가 있다고 하니, 못 가진 자들의 가진 자들을 향한 ‘불신’은 이래서 어느 정도 정당하다.

자손만대의 번영을 확신하며 죽고 싶은 사람들은 돈뿐 아니라 권력까지 물린다. 얼마전 사석에서 한 대기업의 간부를 만난 적이 있다.

“정사장님, 요즘 칭송들이 대단합니다. 큰 모범을 보이셨어요.”

“순리대로 행동한 걸요. 과찬이십니다.”

“그래, 자제분들이 섭섭해 하지는 않던가요?”

“남의 것을 못 가졌다고 섭섭해 한다면 자식이 아니라 도둑놈들이지요.”

“하하. 원, 말씀도 과격하게 하십니다. 자식들이 똑똑하다면야 그것도 괜찮은 일 아닙니까?

“자식들 똑똑하다는 판단은 누가 한답니까?”

“보고 자란 게 있을 테니 리더십 같은 게 아무래도 남다를 수 있지요. 어려서부터 경영훈련을 시키는 경우도 있고….”

“자질이 그렇게 뛰어나다면, 아비가 신경쓰지 않아도 어디에서든 좋은 리더가 되겠지요.”

“로얄 패밀리라는 낙인 때문에 기회를 박탈하는 것도 역차별 아닙니까.”

“하나의 기회를 박탈해서 수백, 수천의 기회가 생긴다면 당연히 그래야죠. 그게 장사하는 사람들의 계산법 아니던가요?”

일상적인 덕담으로 시작한 자리는 결국 어색한 침묵으로 끝나고 말았다. 소위 ‘로얄 패밀리’에 대한 대기업 간부들의 과잉충성에 대해서야 내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투에서 은근한 냉소와 경고의 냄새마저 맡았다. ‘너무 잘난 척 설치고 다니지 말라’는 어감 말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라는 표현이 있다. 내게는 며느리들이 그렇고 손주녀석들이 그렇다. 아내는 늘 내게 ‘정이 없고 무심하다’고 불평을 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참 가족들에게 인색한 편이다. 하지만 며느리들과 손주들에게는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어 안달을 하니 나도 참 많이 늙었다.

어쨌든 그토록 귀한 아이들이지만, 때론 눈물을 머금고 매정하게 굴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막 시집온 며느리의 애교와 어리광에 꼼짝 못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엔가 이 아이가 다짜고짜 내 팔짱을 끼고 찰싹 들러붙는다.

“아버님. 회사 구경 한번만 시켜주세요.”

아직 나를 잘 몰라 철없이 하는 소리겠거니 싶어 다정히 타일렀다.

“아가, 느이 신랑도 아직 우리 회사에는 못 와봤단다.”

“어머, 정말요? 말도 안돼요!”

“사장 식구들이 회사에 자꾸 들락거리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란다.”

“아이, 아버님, 그러시지 말고 딱 한번만 구경시켜 주세요.”

“안된다.”

“기자들도 맨날 들락거리는 회산데…. 아버님 정말 너무 하세요….”

“가족이라서 더 안 되는 거다. 네가 나랑 회사구경을 갔다 치자. 이렇게 크고 멋진 회사가 아버님 거라니, 우리 집은 정말 부자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지 않겠냐? 사장의 가족들이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직원들 입장에선 사장이나 회사를 못 믿게 되겠지. 회사는 그렇게 망하기 시작하는 법이다. 그래도 꼭 가야겠냐?”

새며느리의 어리광을 대번에 물리쳐야 하는 내 마음도 좋을 리는 없다. 하지만 나는 창업초부터 사장이나 간부의 친인척이 회사 근처에 얼씬거리는 것을 엄금해왔다. 오래전, 내 아내가 막내 처남의 취직을 내게 상의해온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호통을 치며 아내의 말문을 막았다. 며칠 후에는 큰 처남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큰 처남은 회사가 어려웠던 시절에 큰 도움을 준 은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냉정하게 거절했다. IMF때 두 사위가 실직을 하고 곤경에 처한 적도 있었지만, 나는 아내의 원망스런 눈초리를 모른 척하며 그 일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게 상식이라고 알고 있다. 만약 세상이 나를 독하고 매정한 사람이라 욕한다면, 오히려 그런 세상이 몰상식한 것 아닌가. 상식을 극찬하거나 오히려 비난하는 사회가 더없이 비상식적인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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