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와 록펠러처럼 많은 돈을 번 사람들은 그 돈의 일부를 사회로 돌린다. 그들은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기부모델 1세대’다. <베풂의 기술>이란 책으로 유명한 폴 마이어는 아예 자선을 위해 사업을 한다. 사회에 보탬을 주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려면 장사를 해야 한다는 단순명쾌한 논리다. 그래서 그는 자선사업을 위해 이익사업을 한다. 잉여로 하는 자선이 아니라 자선 자체가 경제행위의 목적인 셈이다. 그는 후기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기부모델 2세대’다.
은퇴와 동시에, 나도 그들처럼 내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난데없이 본전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늘 ‘결핍’이고 앞으로도 그러할진대, ‘길 막고 퍼주는 자선’이란 곧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뜻이 아닐까. 좀더 근원적이고 의미있는 환원사업은 없을까.
나는 내 알량한 돈이나마 ‘잘’ 쓰고 싶었다. 그것도 ‘썩’ 잘 쓰고 싶었다. 현상이 아닌 본질에 부응하는 자선을 하고 싶었다. 탈무드가 말하는 ‘물고기 잡는 법’에 입각하고 싶었다. 나의 마지막 벤처 프로젝트는 ‘3세대형 기부’였다. 카네기의 말대로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짓”이다. 하지만 가난하게 죽는다고 해도 나름의 취향이 있고 기질이 있을 법하다. 나는 벤처인이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사주는 일은 일회성 자선이다. 목전의 갈급은 채울 수 있을지언정 ‘미래’에 대한 기약이 없으므로 따지고보면 소모적인 자선이다. 그들의 결핍은 결코 그들의 유전자나 팔자 때문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처방은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사회 인프라에서 나와야 하지 않을까.
은퇴할 시점을 고르는 한편으로 나는 ‘돈 쓸 궁리’를 시작했다. 나는 벤처기업이야 말로 차세대 한국경제의 근간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소위 ‘피라미드형 벤처 인큐베이션’이었다. 먼저 충분한 재원을 확보한 <벤처지원센터>를 설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망한 벤처기업 몇 군데를 선발하여 집중적으로 자금을 지원해준다. 파격적인 자금지원을 받은 1기의 벤처기업들 중에서 성공하는 기업이 생겨나면, 2기를 선발하여 1기가 축적한 자금으로 지원한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2기는 3기를 지원한다. 말하자면 피라미드 형식의 연쇄투자 시스템이다. 그 연쇄고리 안에서 혹시 생겨날지 모르는 균열이나 공백은 <벤처지원센터>에서 메우고 보완한다. 투자회수를 하지 않고 오히려 확대해나간다는 점에서 흔히 말하는 ‘벤처 캐피털’과는 다르다.
평소 교분이 두터웠던 모 교수를 찾아갔다. 사회사업도 많이 하고 다방면으로 박학한 분에게 내 구상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해볼 셈이었다.
“벤처라는 게 워낙에 고위험, 고수익 아닙니까. 앞으로는 더욱 그럴 테구요. 정사장님의 구상은 이상적이긴 해도 실효를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불안요소가 많아 안정적인 재원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일단 혜택을 받은 기업들이 추후 다른 기업들을 지원해준다고 해도, 그 시기나 의지를 정확히 예측하기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아닌 게 아니라 맞는 말이었다. 나도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시스템이 쉽게, 더구나 자생적으로 정착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계속 이어지는 그의 조언은 무척이나 현실적이었고 합리적이었다. 나의 낭만적인 구상은 그 앞에서 대번에 기가 죽고 말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선결과제는 정치개혁입니다. 벤처지원도 좋습니다만, 보다 근본적인 지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정치쪽입니다. 지금은 정치판 전체를 물갈이해야 할 시점입니다. 일본의 마쓰시다 정경숙(松下政經塾)같은 곳이 한국에도 필요합니다. 건강한 차세대 정치세력을 육성하는 사업을 정사장님께서 해보시면 어떨까요?”
나는 신문의 정치면도 잘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이다. 이왕 돈을 내놓을 바에야 나의 지나온 삶에 부합하는 분야를 택하고 싶었다.
“잘나나 못나나 저는 벤처인입니다. 저는 벤처업계에서 벤처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정치는 제몫이 아니지요.”
그와의 만남 이후 나는 소위 ‘피라미드형 벤처 인큐베이션’을 포기했다. 대신 ‘인재 육성’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붙잡았다. 전도가 유망한 첨단기술분야를 선택하여 그 분야의 인재를 집중적으로 키우는 방식은 어떨까. 장차 이 나라를 먹여살릴 만한 탁월한 소수 인재를 뽑아 교육비와 연구비, 생활비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전폭적인 장학 시스템도 의미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선택’과 ‘집중’이었다. 과연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그날 이후로 나는 해외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첨단기술 현황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특히 잘 할 수 있는 ‘틈새’를 찾아내는 일에 몰두했다. 마치 새로운 벤처사업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죽음이 목전에 닥쳐서야 떨리는 손으로 뭉칫돈을 내놓는 자선사업은 정말 하기 싫었다. 나는 사회사업도 열정적으로, 미래지향적으로, 무엇보다 ‘한창 때’ 하고 싶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아직 벤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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