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추 밥값은 한 듯하여 이제야 마음이 겨우 편안하다. 사실 그동안은 너무 쫓기듯 살아왔다. 차라리 모든 것을 내주고 나니 모종의 경계선을 넘어 비로소 안식처로 돌아온 느낌이다.
‘이 자리’에 서보니, 일단 재물에 대한 태도부터 달라짐을 느낀다. 돈이라는 물건, 처음에는 없어서 고통스러웠고 골치였다. 나중에는 있어서 좋았지만 또 있어서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늦깎이로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 모든 번뇌의 근원은 다름 아닌 ‘돈’이 아니었던가.
KAIST에 300억을 기부하기로 약속한 것이 2001년 7월 19일이었다. 애초 약속한 내용은 “2개월 안에 기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기일’이 또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서둘러 주식으로 액수를 맞춰 기부를 마무리지었다. 대충 20일만이었다.
반도체 불황이 예상외로 길어진 탓에,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때도 주가는 이미 충분히 떨어져있는 상황이었다.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가 주가가 다소 회복된 다음에 내놓는 것이 여러모로 현명하지 않겠느냐는 사람도 있었다. 주가가 좋지 않을 때 주식으로 그만큼 내주는 것은 ‘손해’라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손해 따질 놈이 기부는 뭐하러 하겠나.’
사실, 기부처를 물색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평생 모은 재산을 헐어내야 한다는 상실감과 허전함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막상 기부를 결정한 다음부터는 그런 호사스런 느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오히려 ‘혹시 약속한 2개월 안에 주가가 완전히 폭락해서 내 주식들이 전부 휴지조각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천재지변이 생겨 전재산이 모두 잿더미가 되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겨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내 꼴은 뭐가 되나’ 등등 어리석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과 스트레스는, 돈을 잃는다는 상실감보다 훨씬 지독했다.
너무 앞당겨 기부금을 건네준 사실에, 또한 주식이라는 ‘잠재적 가능성’까지 얹어준 사실에 놀라고 탓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냥 줘버렸어!”라는 표현으로 얼버무리고 만다. 그건 빈말이 아니다. 정말 내 머릿속에는 ‘얼른 줘버리고 편히 살자’는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지게를 지고 뒷산에 올라 땔나무를 하곤 했다. 삭정이가 모자라면 톱을 들고 나무 위로 기어올라 죽은 가지들을 잘라냈다. 어린 나이에 땔감 모으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지게 한 짐을 다 채우려면 별 수 없이 산길을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등짐은 갈수록 무거워지고 구슬땀이 흘렀다. 하지만 멜빵이 뻐근히 조여올수록 느껴지는 뿌듯함이 나는 좋았다. 그러면서도 만에 하나 발이라도 잘못 디뎌 애써 모은 나뭇짐이 기슭으로 쏟아져내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성취감과 조바심 사이를 오락가락하다 겨우 집마당에 도착해 나뭇짐을 부려놓으면, 그 때 느끼는 청량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마당에 잠시 서있노라면, 산에서 내려오는 초저녁의 미풍이 부드럽게 온몸을 감싸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게 ‘돈’이라는 물건이 꼭 그 시절의 나뭇짐과 같았다. 모이면 모일수록 더 모아야 한다는 욕심이 끊이질 않았고, 모인 돈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었다. 요즘 내가 느끼고 있는 해방감은, 그 시절 집앞 마당에 나뭇짐을 부려놓던 순간의 느낌과 너무나 똑같다.
“나는 용궁에 갔다 온 사람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촌스럽고 진부하지만, 내가 한때 경험했던 절망의 나락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비유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없음’의 극한을 경험해 본 사람이다. 짐 부리고 난 뒤의 청량감이 이토록 절실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오히려 ‘없음’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나는 마흔 셋에 공직에서 쫓겨나 등 떠밀리듯 경영에 입문했다. 온실에서만 커왔던 내게 세상은 너무나 비협조적이었다. 협조는커녕 수시로 등을 치고 목을 졸랐다. 사기로 시작해서 배신으로 끝났던 첫 번째 사업을 정리한 후, 한참동안이나 넋 나간 사람처럼 지냈다. 그렇게 상처투성이가 되어서야 나는 뒤늦게 세상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돈 때문에 죽을 고비까지 넘겨야 했던 나는, 언젠가 반드시 ‘그놈의 돈’을 극복해보겠다는 일종의 보복심리를 지니며 살아왔던 것 같다. 사기와 배신이 아니라 신의와 의리로 여보란듯이 성공해 보겠노라, 그렇게 번 돈을 또한 아낌없이 포기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리라, 그래서 인간이 그까짓 돈보다 얼마나 우월하고 귀한 존재인지를 끝내 증명해 보이리라, 이 악물고 맹세해가며 오늘까지 버텨왔던 것 같다.
복수가 되었는지 어쨌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이제는 그런 오기조차 열적다. 요즘은 ‘그저 곱게 늙으며 추하지 않게 죽어야겠다’는 것이 유일무이한 인생목표가 되었다. 사업을 하는 동안 크게 욕먹을 짓은 하지 않았고, 쓸만한 인재들도 제법 키워냈고, 권력이고 돈이고 모두 제자리에 돌려주었으니, 적어도 내 이름 석 자가 세인들의 안주감은 되지 않겠구나 싶어 자못 안심한다.
비록 그리 길지는 않았으나 ‘돈을 버는 즐거움’은 나름대로 충분히 누려봤다. 진짜 부자들이 들으면 웃을 소리인지 몰라도 내 배포 안에서는 그마저도 과했다는 느낌이다. 어쨌든 이제는 ‘버리는 즐거움’을 누려보고 싶다.
돈을 포기하고 나니, 더 가져야겠다는 욕심과 지켜야한다는 초조감, 가지고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속이고 이용해야 한다는 자괴감 등등의 온갖 번뇌까지 말끔히 사라졌다. 이 세상 누구도 살아오면서 먹은 것과, 남에게 대가없이 준 것들만이 진짜 자기 재산이라는 말이 있다.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짜 내 재산’만 꼭 품고 살다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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