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가혹한 부정(父情)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가혹한 부정(父情)

정문술의 거꾸로 인생론-'노욕(老慾)' <11>

한국의 아버지들은 가엽다. 사욕없이 평생을 민주화에 헌신했던 두 정치인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었고, 또 차례로 고개를 숙였다. 아들들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비 대신 여기저기 나서라고 가르치거나 시켰을 리 만무하다. 그들의 주제넘음을 알면서도 심약한 부정 때문에 어쩌지 못했을 뿐이다.

권력자는 주변인들에게 ‘내 아들을 무시하지 말라’고 훈시하지 않는다. 다만 아랫사람들이 ‘아드님’을 알아모실 뿐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너는 직원들에게 2세의 진로를 부탁하지 않는다. 오너가 묵시하면, ‘아드님’이 저 알아서 나서고, 직원들은 그것을 알아모실 뿐이다. 오만방자해지는 건 당연하다. 리더가 측근 단속에 냉정하고 가혹하지 못하면 그렇게 된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망가진다.

한국의 다른 아버지들처럼, 나도 자식들을 끔찍하게 사랑한다. 그래서 사실은 냉정하고 가혹하게 굴 자신이 없다. 우리 식구들이 회사 근처에 얼씬도 못하도록 했던 것은 나의 한계를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없기 때문에 원천봉쇄하는 셈이다.

내 가족들은 <미래산업>의 사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구경했을 뿐이다. 회사 사람들도 내 가족들의 얼굴을 모른다. 명절이나 내 가족일에 회사 직원들이 찾아오는 것을 나는 엄금했다.

막내녀석이 장가가는 날에도 나는 직원들에게 절대로 찾아오지 말라고 일렀다. 선물이나 부조도 일절 금했다. 그것은 바깥어른 혼자서 검소하고 조용하게 꾸려왔던 사돈댁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사장을 위시한 창업멤버 몇몇은 기어이 결혼식장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내 아들의 친구녀석을 가리키며 “아드님 참 훤하게 생기셨습니다”하며 어이없는 덕담을 했다.

딸들은 각자 시집을 가서 평범하게 살림을 하고, 아들들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공채를 거쳐 다른 기업의 평사원으로 들어갔다. 그 아이들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평생직장이라 여겼던 곳을 그만두고 뒤늦은 유학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불신’ 때문이다.

직장에 다니던 시절의 작은 아이가 어느 날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버지. 회사 사람들이 저를 진정한 동료로 여기는 것 같지 않아요.”

나는 깜짝 놀랐다. 수재 소리를 들을 만큼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심성 좋고,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대인관계 원만한 자식들이야말로 늘 나의 자랑이었다.

“경험 삼아 남의 직장을 잠깐 다녀보는 걸로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정리해고다 팀 해체다 해서 동료들 몇몇이 퇴사한 후로는 저를 보는 눈들이 더 이상해졌어요.”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리냐? 정리해고랑 너랑 무슨 상관이길래...”

“일전에 아버지께서 저희 회사에 강연 오셨던 이후로 제가 아버지 자식이라는 걸 다들 알게 된 모양이예요.”

가슴이 아팠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첫직장에서, 대단치도 않은 아비의 이름값 때문에 내 아들이 따돌림을 당해야 하다니. 그들은 필경 이렇게 수군대고 있을 것 아닌가.

“멀쩡한 자기 회사 놔두고 여기 와서 뭐하는 거야?”

그들은 ‘미래산업’과 ‘내 이름’과 ‘아들의 이름’을 똑같은 의미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