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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으로 돌아온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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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으로 돌아온 인연

정문술의 거꾸로 인생론-'노욕(老慾)' <12>

나는 <미래산업>을 창업하기 전에 18년 동안 <중앙정보부>에서 일했다. 모두가 짐작하겠지만 그 시절 <중앙정보부>의 위세는 정말 대단했다. 최상부에서부터 최말단까지 각종 이권 청탁이 끊이질 않는 곳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쏠쏠한’ 자리가 따로 있었다. 수완 좋고 배경 좋은 사람들은 그런 자리만 찾아다녔다.

낮은 직급 중에서도 괜찮은 자리가 있었으니, 출입국 보안을 관리하는 공항 파견부서였다. 당시로서는 이륙한 비행기를 다시 회항시킬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지닌 곳이었다.‘여행용 가방 하나에 트랜지스터만 가득 실어와도 떼부자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따리 밀수가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보따리 밀수꾼들이 가장 잘 보여야 하는 데가 바로 ‘출입국 보안 부서’였다.

비단 밀수꾼들뿐만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친지 중의 누가 해외여행을 간다고 하면 십시일반으로 부조금을 모아주고, 당사자는 귀국하면서 하다못해 양담배라도 사다 돌리는 게 일종의 풍습이었다. 선물 보따리 중에는 당연히 세관에 적발될만한 것들이 섞여 있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 ‘우리 사람들’이 나서면 만사형통이었다. 그러니 당연 ‘돌아오는 것’이 많을 수밖에.

입사한 지 몇 년 후 나는 <기획조정과>에 배속되었다. 사병 출신에, 전라도 출신, 지방대 출신인 나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요직’이었다. 그나마 나의 꼼꼼한 일처리 방식이 참작된 인사였다. 내가 <기획조정과> 부과장으로 있을 때 C라는 친구가 내 밑으로 들어왔다. 앞서 말했던 ‘출입국 보안 부서’를 거쳐 또 다른 ‘요직’을 찾아온다는 게 바로 내 밑이었다. C라는 친구는 그만큼 수완이 좋고 정치감각도 탁월한 사람이었다.

1980년, 신군부가 등장하고 <보안사>가 득세하자 나는 <중앙정보부>에서 쫓겨났다. 우리 부서가 언젠가 <보안사> 조직의 축소개편에 관여한 적이 있다는 황당한 이유였다. 말하자면 신권력의 ‘보복인사’였던 셈이다. 그 풍파의 와중에서도 C는 용케 살아남았다. 하지만 얼마 후 자기 사업을 하고 싶다며 스스로 공직을 그만두었다. 책상 위에 놓인 해직통보서를 보자마자 눈앞이 아득했던 내가 보기에는 매우 경솔하고 배부른 처신이었다.

해직된 후 부실한 금형업체 하나를 인수해서 내가 전전긍긍하는 동안, 돌연 C가 파산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허허벌판의 눈밭에 발가벗겨 내놓더라도 살아남을 사람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후 나는 <미래산업>을 창업했고, C의 존재는 까마득히 잊었다. 그리고 몇년 전, 나는 의외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바로 <중앙정보부> 시절의 그 C였다.

“정과장님!”

과거의 정분을 되살리는 재치있는 호칭이었다. 물론 나도 몹시 반겼다.

“제가 그동안 미국에서 몇 년 지냈습니다. 정과장님이 훌륭한 벤처사업가가 되셨다는 소리를 거기서 들었어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아, 그럼 지금 미국에서 전화를 하는 건가?”

“아닙니다. 일 때문에 잠시 들어와 있습니다.”

서울 시내의 모 특급호텔 스위트룸에 묵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몰라도 스위트룸에 묵을 정도라니 꽤나 성공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내 강남 사무실과 지척이기도 해서 당장 만나보고 싶어졌다.

“그럼 식사부터 한 끼 하세. 나도 자네가 보고싶구먼.”

“그렇지 않아도 뵙기 전에 허락부터 구하려던 참입니다.”

“우리 사이에 허락이라니 무슨….”

C는 당시 대한민국 최고권력자의 안주인과 친척지간이라 했다. <중앙정보부> 시절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 ‘집안 일’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처지라고 했다.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권력자의 아들이 모종의 구설수에 올랐을 때에도, 자신이 기자들과 담판을 지어 깔끔하게 해결했노라 자랑을 했다. 자신에 대한 ‘그 집안 사람’들의 신임이 대단하다고도 했다. 특히 아들에 관한 일은 거의 자신에게 맡겨두고 있다고 했다.

“이번에 제가 그 아이와 같이 들어왔거든요. 제가 데리고 나갈 테니 과장님께서 한번 만나주셨으면 하구요. 후회는 안 하실 거예요.”

나는 똑 부러지는 대답은 하지 않고 어물거리며 일단 전화를 끊었다. 이른 바 ‘벤처붐’의 시절이었다. ‘정문술’이라는 시답잖은 이름 석 자가 벤처업계에서는 한창 ‘스타 브랜드’가 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그 아이’는 자기 장래와 관련하여 몇 가지 상의를 하고 싶다며 나를 ‘지목’했단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이게 뭔가. 당대 최고권력자와 ‘선’을 대주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내가 직접 시나리오를 짠다면 ‘그 아이’를 쓸만한 벤처 경영자로 키우는 일쯤은 가능할 것 같았다. 별다른 기대 없이 그저 ‘인재 하나 맡아 키워준다’고 생각하면 굳이 오명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자리는 분명 ‘정치판’이었다. 정치판이란 게 내 의도대로 굴러갈 턱이 없었다.

꼭 한 시간 만에 C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 정치판 근처에는 절대로 가지 말자고 작정한 지가 벌써 오래되었네. 자네도 알잖은가. 내가 왜 중앙정보부에서 쫓겨났는지.”

“그냥 저녁 한 끼 사주시면 되는 걸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조카뻘 되는 녀석한테 인생조언이나 해준다고 생각하세요.”

“싫네.”

그는 몹시 서운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일단 아니라고 결정하면 절대 재고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더 이상 보채지 않았다.

“과장님도 참. 융통성 없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네요. 그럼 저 혼자 나갈 테니 밥이나 한 끼 사주세요.”

“그거야 언제라도 좋네. 내일 저녁에 당장 만나지. 어디가 좋겠나. 내가 자네 숙소로 찾아갈까?”

다음날 저녁, 약속 시간에 맞춰 사무실을 막 나서려는데 C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과장님, 오늘 저녁 약속 잊지 않으셨지요?”

“여부가 있나.”

“동석이 있더라도 놀라시면 안 됩니다?”

“이 사람도 참! 싫다고 하지 않았나! 저녁 약속은 없던 걸로 하세!”

“아, 알겠습니다. 혼자 가지요. 정과장님도 참….”

식사를 하는 동안 그는 내내 서운한 심사를 숨기지 않았다.

“도대체 뭔 상관이라고 그러십니까. 기자들이야 어련히 제가 막아놨을라구요. 별 용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인생 선배로서 조언이나 좀 해주시고, 경영 선배로서 노하우나 좀 일러주시면 되는 걸…. 과장님도 정말 매정하시네요. 그렇게 정치판과 거리를 두고 싶다면 그 마음만 굳게 지키시면 될 것 아닙니까.”

“미안하게 됐네. 내가 내 마음을 굳게 지킬 자신이 없어 그랬네.”

“어른들께서도 아들 장래 때문에 근심이 많으십니다. 다음 주에 아들 문제를 상의하고자 하시는데, 웬만하면 저랑 같이 한번 들어가시죠? 아무 부담 안 드리겠다고 제가 약속드립니다.”

그가 가져온 선물 꾸러미까지 남겨놓고, 나는 서둘러 그 자리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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