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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술 처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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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술 처세술’

정문술의 거꾸로 인생론-'노욕(老慾)' <13>

언젠가 여당의 한 유력한 정치인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직접 작성한 게시물을 올리면서 내게도 동일한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명목인즉 ‘미래산업 정문술 대표께 드리는 공개 질의’였다. 국가 경제와 정치 구습에 관한 공개 토론을 벌이자는 내용의 공개제안서였다.

읽는 순간, 내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누군가의 정치적 행보에 동원된 셈이 아닌가. 나는 곧바로 답장을 적었다.

“저는 사업가입니다. 저는 사업초기부터 지켜온 원칙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사적인 일로 회사돈을 유용하지 않습니다. 둘째, 절대 친인척을 회사에 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셋째, 힘 있는 곳을 무조건 멀리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연구개발과 판매활동을 통해서 기업의 가치를 키우려 하지 않고 권력과 가까이 하여 이권을 챙기려 든다면, 그 기업뿐 아니라 이 사회도 결코 건전한 생산활동을 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동창회에도 잘 나가지 않습니다. 또한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 정치권에서 입신을 하면 아예 연락을 끊어버립니다. 남들은 결벽증이라고까지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권력의 향배에 따라 부침하는 수많은 기업들을 지켜보아온 저로서는 이러한 결벽증이 저 자신과 저희 회사를 지키는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느날 출근을 해보니 책상 위에 웬 세미나 초청장이 놓여 있었다. 그의 측근들이 주최하는 경제개혁 세미나였다. 초청장을 뜯어보자마자 휴지통에 버렸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이나 지났을까. 그이의 정치 주가는 급등세를 타고 있었다.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꽤 유력한 대권 후보로까지 거명되고 있었다. 그로부터 직접 전화가 걸려왔다.

“저 같은 사람한테 직접 전화를 다 주시고….”

“선성이야 익히 들었지요. 아시겠지만 제가 요즘 조언과 격려가 절실한 사람입니다. 정사장님을 한번 꼭 뵙고 식사라도 하고 싶습니다만, 시간 좀 내주실 수 없겠습니까? 현장 경제에 관해 정보도 좀 주시고, 비전도 좀 주세요.”

“주변에 훌륭한 전문가들이 많으실 텐데요. 저는 우리 직원들 꼬박꼬박 월급 챙겨주는 게 유일한 낙인 사람입니다. 멀리서나마 그저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진심을 이해했을까, 아니면 ‘건방진 인사’라며 불쾌해했을까. 어쨌든 그와의 인연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돈을 주는 것이든 이름을 주는 것이든 그저 다리품을 파는 것이든 어쨌든 나의 행동반경 내에 정치와 관련된 일은 전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지만, 비슷한 제안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모 정당의 총재측에서 연락이 온 적도 있다. 그런 이들의 어법은 늘 똑같다.

‘나라를 위해 한 번쯤 쓴 소리를 해주십사….’

모를 것 빼고는 다 안다는 정치인들이 나 같은 무식한 장사꾼한테서 듣고 싶은 ‘쓴 소리’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의 유혹을 거듭 거부하는 나를 두고 그들은 바보 취급을 할 게 분명하지만, 나는 그런 유혹 자체가 이미 나를 바보 취급하는 것이라 여긴다.

내 이름이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치권의 손짓은 눈에 띄게 잦아졌다. 나와 잘 아는 한 정치인사는 내게 후원회장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거절했다. 재계와 정계의 거물들이 모인 동성(同姓) 모임에서도 총재직 수락을 요청한 적이 있지만 역시 거절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들의 커뮤니티 안에서 내 이름 석자가
‘별 것도 아닌 주제에 콧대만 높은 작자’의 대명사처럼 회자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몇달 전, 새 내각의 모 부처 장관 인사의 최종 물망 4인 중에 내 이름이 올랐다는 일간지 기사를 읽었다. 진위야 알 수 없었지만, 아무리 파격 인사로 유명한 새 정부라 하더라도 ‘정문술 장관’은 넌센스였다. 기대도 하지 않지만 될 리도 만무하고, 만에 하나 진짜 그런 제의가 오더라도 나는 당연히 거절할 것이었다.

정작 우스운 것은 지인들의 반응이었다. 그 기사가 나간 후로 하루에 수십 통씩 용건 없는 전화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은퇴 이후 내가 정치 쪽으로 운신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 뒤에서 수군거리고 때론 앞에서 부추기던 사람들이었다. 견디다 못한 나는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떠났다. 귀찮고 다급한 김에 모 여행사의 싸구려 패키지 여행을 구매한 것이다. 그런 정도가 기껏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 처세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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