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벤처’는 한국경제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여겨졌다. 정부는 파격적인 정책수단을 동원해가며 벤처육성정책을 펼쳤고, 증시에서는 연일 ‘벤처대박’이 터졌다. 굳이 경제전문지가 아니더라도 모든 신문들은 ‘벤처 소식지’가 된 듯했고, 주변의 지인들 중 벤처사업가 한둘쯤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굳이 과거형을 사용하는 이유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벤처’라는 단어를 희망의 어감으로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심한 경우에 ‘벤처’는 허황한 창업붐과 타락한 머니게임을 조롱하는 농담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토록 시끄럽던 ‘벤처 게이트’들도 따지고 보면 별 일 아니다. 확대해석하는 것도 문제라는 얘기다. 70, 80년대 한국경제가 ‘무역입국’을 기치로 내세웠을 때에도 무역 사기꾼들은 많았다. 무역 사기꾼들이 설친다고 해서 무역입국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벤처 사기꾼들이 설친다고 해서 벤처입국을 포기해선 안 된다. 벤처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벤처캐피털이 처음 등장한 이래 수많은 비리사건이 있었고, 그런 단계를 거치며 미국은 벤처를 학습하여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를 일궈냈다.
몇 년 전, 일본의 한 경제신문이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가한 적이 있다. 도쿄에서 열렸던 세미나의 주제는 ‘아시아의 미래’였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의 대통령과 총리가 참가한 대형 행사였다. 이 행사의 하일라이트인 정보통신혁명에 관한 토론회에 <NTT 도코모>와 <차이나닷컴>의 최고경영자와 함께 내가 패널리스트로 초청되었다.
그 토론회의 참석자들은 한국의 벤처현황에 대해 내게 집중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한국의 벤처열기를 매우 부러워하고 있었고, 벤처에 관한 한 일본보다 한국이 한 수 위라고 모두들 인정하고 있는 듯했다.
아닌 게 아니라 부존자원이 없지만 우수한 두뇌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벤처만큼 효율적인 산업모델은 다시 없다. 벤처산업의 필요충분조건인 정보통신 관련 인프라도 놀라운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21세기, 한국경제에 아직도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벤처에 있다. 한국의 벤처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지만 또한 아직 실패하지도 않았다. 포기하긴 아직 이르다는 뜻이다.
정작 문제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조급증이다. ‘굴뚝 회귀론’이니 ‘벤처 포기론’이니 하는 주장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벤처는 이제 시작이다. 여전히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려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인생을 걸고 벤처 비즈니스에 뛰어들고 있다.
당연히 그 중에는 까마귀도 있고 백로도 있다. 우리는 혹시 까마귀떼에 놀라 백로까지 쫓아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는 너무 빨리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그래서 너무 빨리 너무 많은 것을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건강한 백로 한 마리를 키워내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무엇이 희고 무엇이 검은지,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그른지에 관한 선명하고 간결한 판단력만 잃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쉬운 일도 없다.
기자들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처음 기업 경영에 뛰어든 내게 교과서나 바이블 따위는 없었다. 내가 교만했기 때문이 아니다. 사업경험도 전무했고, 관련 공부를 해본 적도 없으며, 경제신문에조차 관심을 둔 적 없었던 일개 공무원이었기 때문이다.
아는 게 없으니 확신이 있을 턱이 없었다. 덜컥 회사를 만들어놓으니 무엇인가 잘못 돌아가는 건 분명한데, 그 원인은커녕 사태의 본질조차 모른 채 좌충우돌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내가 우연히 집어든 것이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녀석의 도덕교과서였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솔선수범해야 한다,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따위의 너무나 뻔하고 따분한 경구들이 그 안에 잔뜩 나열되어 있었다.
그 하찮은 순간이 내 경영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줄곧 초등학교 도덕교과서가 시키는 대로만 회사를 운영하려고 애썼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철없는 사람이니, 엉뚱한 사람이니, 독불장군이니, 융통성 없는 사람이니 갖가지 말로 비웃고 걱정했다.
나의 이런 경영 스타일을 두고 사람들은 ‘거꾸로 경영’이라고 했다. “도덕교과서에 적혀 있는 것들만 피하면 성공한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세상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처세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확신’을 잃어본 적이 없다. 스스로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에 속도와 패기의 구현에 주저함이 없었다. 교본에서 시키는 대로 해도 실패한다면, 교본이 잘못되었거나 세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지 결코 내 잘못은 아니라는 배짱도 있었다. 낙관과 확신은 나의 유일한 ‘경영 노하우’였다. 낙관과 확신의 근거는 물론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있다.
지금도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벤처의 꿈을 꾸고 있다. 그 중에서 나는 드물지 않게 ‘인물’들을 본다. 진흙탕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소위 ‘벤처 1세대’들이 세상에 남겨놓은 ‘양질의 유전자’가 꾸준히 증식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 유전자가 멸종하지 않는 한, 포기는 이르다.
내가 말하는 ‘양질의 유전자’란 결코 신개념의 돌연변이가 아니다. 그 염기서열은 벌써 오래전부터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다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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