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미래산업>이 수도권에서 천안으로 이사를 결정하고 이사 준비에 모두들 정신없던 시절이었다. 한 여직원이 내게 면담 요청을 해왔다.
“저는 정말 회사를 따라 가고 싶습니다만, 도무지 안 되겠어요.”
눈물까지 글썽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떤 사정이길래 그러나?”
“남편이 부천에서 직장생활을 하거든요. 남편에게 멀쩡한 직장을 포기하라 할 수도 없고…. 아직 신혼인데 주말부부도 너무하는 것 같고….”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가?”
“조그만 금형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잘되었군. 그럼 바깥사람도 우리 회사로 오라고 하지. 비슷한 업무를 줄테니 거기보다 더 낫게 대우해준다는 조건으로 설득을 한번 해보게.”
한국인의 주요 동인은 신명이다. 굿이 그렇고 풍물놀이가 그렇고 우리의 노동이 그렇다. 한국 사람들이 특히 유사종교에 목숨까지 바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사람이라면 따라가다가 죽어도 좋다’는 확신만 생기면 어디라도 따라나설 수 있는 게 한국사람들이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오로지 이 ‘신명’을 끌어내기 위해 종종 불합리한 결정을 한다. 구성원들에게 감동을 줄 수만 있다면 불합리가 어떻고 비효율이 어떨까. 그들의 ‘신바람’이 우리 모두를 살릴 수 있다면 눈앞의 손해는 어떻고 원칙 파괴는 어떨까.
낭만적(?)인 경영방식 때문에 수시로 한계에 봉착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믿게 하고, 감동하게 하고, 신바람나게만 해주면 한국사람들은 더없이 위대해진다는 것을 나는 알았고, 믿었고, 보았다. 공평에 대한 신뢰가 있고 미래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나는 우리 회사에 사업계획조차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사훈도, 슬로건도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꽤 오래전, 모 기업체 사장으로 있는 고등학교 동창이 전화를 해온 적이 있다.
“우리 학교 후배 중에 괜찮은 녀석이 하나 있거든. 우리 회사 정보통신계열에서 일하는 친구야. 괜찮은 사업계획이 있는 모양인데, 자네가 한번 만나보게.”
나처럼 인탐(人貪) 심한 작자가 사람을 마다할까.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데다 말투까지 어눌하기 짝이 없어서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힘들 지경이었다. 우물거리며 사업계획을 늘어놓는데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신통찮은 녀석’이라는 게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대충 덕담이나 나누다 돌려보내고 나니 일주일쯤 후에 다시 나를 찾아왔다. 지난 번 만남이 스스로에게도 석연찮았는지 이번에는 제법 모양을 갖춘 사업계획서를 들고 왔다. 여러 모로 고심의 흔적이 보이는 충실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첫인상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고 있던 나는 즉답을 유보하고 다시 그를 돌려보냈다.
며칠 후 그가 어눌한 말투로 내게 또 전화를 해왔다.
“사장님. 30억만 주십시오. 물건 하나 만들어보겠습니다.”
“30억? 그렇게나 필요한가?”
“꼭 그만큼 있어야 하거든요.”
괴짜였다. 그 순간 나는 마음이 움직였다. 앞뒤없는 끈기와 자신감, 이 정도면 언젠가 사고 한 번 제대로 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계좌번호 불러보게.”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현금으로 30억을 송금했다. 그리곤 내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한 마디 보탰다.
“나는 자식들한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이 없네. 그저 좋은 집이나 한 채씩 사줄까 생각하고 있었지. 헌데 자네한테 자식들 집 사줄 돈을 몽땅 줘버렸으니 이제 어쩔 셈인가.”
열심히 해보라는, 내 식의 격려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는, 핸드폰 모듈을 내장한 PDA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그들이 내놓은 첫 모델은 2000년과 2001년 미국 <컴덱스쇼>에서 ‘Best of Award’ 2등상을 수상했다.
내가 이끌던 시절의 <미래산업>은 “고삐 풀린 것 같다”는 소리를 곧잘 들었다. 모두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대신 신바람이 있었다. 변화무쌍한 적응력과 추진력을 갖추고 있었다. 맹목적일 정도의 결속력과 상호신뢰도 갖추고 있었다. 회사를 경영하는 동안 수없이 마주쳤던 급박한 기로에서 나는 늘 그 ‘신바람’을 뒷심 삼아 과감한 선택을 했다.
경영교과서에 나와있는 서양식 경영법은 모든 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다. 주체도 분명하고 방향도 분명하다. 표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화살이 날아갈 거리를 계산해야 하고 정확한 궤도를 필요로 한다. 그러한 거리와 궤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힘의 양과 각도가 있다. 힘이나 각도가 조금 모자라거나 넘쳐도 화살은 제대로 날아가지 못한다. 사소한 계산의 착오가 큰 재난을 불러올 수 있다.
나는 지금 서양식 경영법은 무조건 잘못이며 결과적으로 내가 옳다고 우기고 있는 게 아니다. <미래산업>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핸들러 사업’은 어떻게든 주문을 받아 제작하고, 납품하고, 수금하면 그만인,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사업이었다. 그래서 ‘정문술 스타일’이 그런대로 주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문술 스타일’은 SMD마운터를 주력으로 하는 요즘의 <미래산업>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마운터는 핸들러와 달라서 장기적인 그래프에 입각한 엄정한 계획생산이 필요한 제품이다. 하지만 나와 함께 회사를 일으켰던 전통 멤버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혹은 내 영향 때문에 모두들 어느 정도는 ‘낭만주의자’들이다. 은퇴 직전까지 나의 주된 고민은 바로 그것이었다.
현재 내가 물러난 <미래산업>은 기업문화의 과도기에 처해 있다. 핸들러로 일어서서 증권거래소에 상장되기까지의 <미래산업>에는 ‘정문술 스타일’이 제격이었다. 하지만 나스닥에 진출하여 마운터로 세계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미래산업>은 이제 ‘정문술’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혼란스럽기도 하겠지만, 이제 <미래산업>은 기업문화와 경영방식에 있어 격렬한 투쟁과 완충의 과정을 겪어야 할 것이다. 내가 쌓았던 ‘낭만의 기업문화’가 합리성과 효율성의 새옷을 입어 좀더 세련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던 ‘우리식 경영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미래산업>은 현재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반도체 업계의 장기 불황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스타일의 혼란’이 크리라 짐작된다. 주주들의 불만도 팽배해 있음을 안다. 주위에서도 많은 질책이 있는 줄로 안다. 지금 <미래산업>은 기업문화와 경영기법적 측면에서 투쟁과 완충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하지만 내가 남겨둔 미래인들은 ‘정문술 시대’를 넘어서는 또 다른 미래를 반드시 만들어낼 것이다. 나는 적어도 내 안목과 그들의 신명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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