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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손해보는 사람

정문술의 거꾸로 인생론-'노욕(老慾)' <19>

인도네시아의 한 동물보호단체에서 어미와 떨어져 홀로 방황하는 새끼 오랑우탄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그 오랑우탄을 야생동물보호센터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새끼 오랑우탄은 사람들이 챙겨주는 사료를 먹고, 쾌적한 우리에서 안전하게 자라났다. 시간이 흘러 오랑우탄은 완전히 성장했고,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를 좇아 오랑우탄을 밀림으로 되돌려 보냈다. 하지만 오랑우탄은 밀림에 풀어놓은 지 하루도 안 되어 다시 보호센터로 되돌아왔다.

한국의 벤처기업들은 정부의 온갖 지원정책과 ‘개미들’까지 모두 말라버린 후에야 비로소 바깥으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나라 밖은 무시무시한 정글이다. 건성으로 적응하는 체만 하다가 큰 소리로 울면서 보호센터로 돌아온다. 정책 지원이 부족했다느니 간섭이 너무 많았다느니 투자가 모자랐느니 인프라가 부족하다느니 하는 끝도 없는 투정과 함께.

사실 대한민국은 벤처기업에게 있어 요순(堯舜)의 태평성국이었다. 그러다 IT업계의 한파와 자금유동성의 위기를 겪으면서 벤처인들은 한 목소리로 정책과 인프라를 탓했다. 하지만 정작 자금이 풍부하고 온 국민이 그들을 축복해주었던 시절에, 그들은 기술개발이나 세계시장 개척 등 내적인 역량을 키우지 않고 오로지 주가지수만 바라보았다.

또한 그들 중의 일부는 증자니 M&A니 비관련다각화니 하는 대기업 흉내에만 골몰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끼어들기 위해 투자자들의 귀한 돈을 정치인들의 뒷주머니에 찔러넣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게이트’니 ‘커넥션’이니 하는 불명예스런 단어들이 다른 곳도 아닌 벤처업계로부터 줄줄이 튀어나왔다.

벤처기업을 정부에서 ‘지정’하고 뒤를 봐주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뿐이다. 그런 환경에서 ‘굶어죽지 않았다’고, ‘지원이 모자라 지금 이 모양’이라고 큰소리 치는 건 철부지 오랑우탄의 불평이다. 대갓집 도령의 칭얼거림이다. 생존본능을 잃어버리고 모험을 두려워하는 기업을 어찌 ‘벤처’라 할 수 있을까.

정부의 벤처지원 정책은 단기적인 지표 상승효과는 볼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오히려 벤처를 죽이는 독약일 수도 있다. 더구나 단기적인 그래프 상승을 노리고 공무원들의 책상 위에서 급조된 지원정책은 국가경제를 왜곡시키는 주범이 될 수도 있다. 그건 벤처거품이 사라짐과 동시에 자명하게 드러난 사실이기도 하다.

초기의 <미래산업>은 당연히 은행 신세를 여러 번 져야 했다. 하지만 그 돈을 빌려 쓰기 위해 갖추어야 할 요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때론 필요하지도 않은 돈을 이자까지 물어가면서 갖고 있어야 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괘씸죄’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정기적으로 관계자들을 ‘관리’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돈이 필요할 때 월 2~3%의 높은 이자를 물면서까지 사채(私債)를 쓰기 시작했다. 손해를 보더라도 말 그대로 ‘벤처업무’에만 전념하고 싶었다.

벤처지원자금도 성가시긴 마찬가지였다. 정책자금의 승인을 얻기 위해 온갖 서류를 준비하고 요건을 갖추느라 본업을 뒷전으로 미루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자격심사를 통과했다 쳐도 문제의 지원자금은 유입과 동시에 그동안의 뒷감당으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기 일쑤였다. 때론 필요없는 장비까지 비싸게 구입하면서 승인요건을 맞추어야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물론 정책자금을 잘 활용해서 자리잡은 기업들도 많았다. 예전에는 나도 그들을 몹시 부러워했다. 하지만 정책자금을 용케 잘 받아낸다 싶었던 기업들은 IMF가 닥치면서 대부분 도산했다. 정책이 보수화되자 곧바로 온실에 구멍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 1992년, <미래산업>은 천신만고 끝에 반도체 테스트 핸들러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다. ‘수입선 다변화 정책’ 때문이었다. ‘수입선 다변화 정책’이란 국산화한 특정 품목을 지정하여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을 원천봉쇄함으로써 국내 생산업자들을 보호한다는 취지의 정책이었다. 말하자면 대(對)일본 무역 역조현상을 시정하기 위한 정부의 특단책이었다.

당시 우리는 핸들러의 판로 개척에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국내 최초의 핸들러였지만, 세계시장 속에서는 브랜드도 없는 후발주자였기 때문이다. 세계시장은커녕 외국의 유수한 제품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내시장의 틈새를 개척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다. 국내의 반도체 공장에 포진하고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일본기업의 핸들러였다. ‘수입선 다변화 정책’만 활용한다면 손쉽게 국내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연이은 개발실패로 도산의 위기까지 몰려 있던 <미래산업>의 입장에서는 실로 대단한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그 ‘특단책’의 수혜자가 될 것을 거부했다. 첫째는 첨단의 외국제품들과 경쟁하고 그들을 벤치마킹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모방학습과 동기부여의 기회가 상실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선진 제품과 경쟁하지 않고 어떻게 선진 제품을 넘어설 수 있겠는냐는 생각이었다.

둘째는 국내 반도체생산업체들이 우리의 핸들러만을 사용한다고 했을 때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기회손실의 문제였다. 당시 우리의 핸들러는 저수준의 초기모델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제품과 비교하자면 당연히 안정성과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핸들러를 구입한 공장에서 우리 제품의 하자 때문에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면 그 막대한 손실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국내 반도체기업들이 울며겨자먹기로 우리 제품만을 계속 사야 한다면 단기적으로는 <미래산업>에 득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분명 실이 더 많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위기감과 승부욕이 없이 어떻게 기술개발에 전념할 수 있겠는가. 나는 허약한 오랑우탄이 되기 싫었다.

늘, 우리 뒤에는 온실이 있고 앞에는 정글이 있다. 온실은 안락하고 정글은 위험하다. 하지만 온실에는 발전이 없고 정글에는 가능성이 있다. 온실은 자기만족 또는 복지부동이다. 정글은 거칠되 무궁무진한 모험이자 투쟁이다. 나는 “기꺼이 손해보는 사람”이라는 세간의 평에 만족한다. 벤처는 뒤를 돌아보는 순간 더 이상 벤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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