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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의 손익계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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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의 손익계산법

정문술의 거꾸로 인생론-'노욕(老慾)' <20>

내가 은퇴를 발표하자마자 업계 후배 하나가 나를 찾아왔다.

“저희 회사의 사외이사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한창 주가가 폭락하던 시절이었으니 그 의중이야 묻지 않아도 알 만했다. 시장에 먹힐 만한 이름을 끌어들여보겠다는 뜻이리라.

“생각해 보게. 요란하게 은퇴해 놓고 자꾸 그 바닥에 얼굴을 내밀면 사람들이 나를 뭐라 하겠나. 당장 반짝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나중에 내 이름이 부담스러워지면 그땐 또 어떡할 텐가.”

“…….”

“회사 가치는 그렇게 올리는 게 아니네.”

“꼭 그런 의미라기 보다는….”

“자네, 코스닥 진출하면서 한 3천억쯤 모았다지?”

“대충 그 정도됩니다...”

“3년쯤 버틸 운영비만 떼어놓고 나머지 몽땅 챙겨서 입산수도하게.”

나의 엉뚱한 소리에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말씀이신지….”

“주가야 워낙에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농사짓는 농사꾼이 언제 땅값 신경 쓰는 거 봤나? 농사꾼은 농사 잘 지을 궁리만 하면 되는 거지... 농사가 잘 되면 땅값이야 자연 따라 오르지 않겠나. 아직 여유자금이 있을 때 목숨 걸고 입산수도하게. 여의도쪽은 아예 바라보지도 말게나. 눈 질끈 감고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기술 하나만 개발해 놓으란 말일세. 그게 자네와 자네 회사가 사는 유일한 길이네.”

그는 코가 쑥 빠져서 돌아갔다.

<미래산업>의 향후 미래를 책임지게 될 ‘SMD마운터’는 ‘메카트로닉스의 꽃’이라 불릴 만큼 화려하고 복잡한 장비다. 전자기판 위에 수만 종의 소형 부품을 정확하게 심어놓아야 하는 장비이니만큼 초고속과 정밀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개발하기는 어렵지만 핸드폰에서부터 컴퓨터, 텔레비전, 냉장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장비가 된다. 그것은 곧 무궁무진한 판매시장을 의미한다.

SMD마운터를 개발하던 3년 동안 <미래산업>의 총매출은 1,204억 원이었다. 그 중에서 마운터 개발에만 투자한 비용은 367억원이었다. 총매출의 30.4퍼센트를 기술개발에만 쏟아부은 셈이다. 그것도 단 한 종의 장비개발에 쏟아부은 셈이다.

특히 1997년도는 반도체 경기의 불황 때문에 600억 원대의 연매출이 117억으로 급감한 해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해에도 매출액을 넘어서는 130억을 개발비로 쏟아부었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업계 사람들뿐 아니라 주주들과 내부 직원들까지, 기술개발에 대한 나의 지나친 열정을 두려워했고 불안해 했다. 핸들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유지가 되던 우량기업을 졸지에 백척간두에 올려놓으려는 사장의 무모한 심사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오너’로서의 전횡을 행사했다. 임원들과 주주들의 불안과 불만을 애써 무시하면서까지 나는 마운터 개발에 모든 것을 걸고 고집스레 밀고 나갔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고 성패도 짐작할 수 없었지만, 연구소장에게 전권을 위임한 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SMD마운터는 국내의 대기업들이 앞다퉈 개발에 뛰어들었다가 엄청난 돈과 시간만 낭비한 채 결국 포기한 애물단지였다. 그만큼 모두가 탐내는 물건이었고 그만큼 얻기 힘든 귀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해냈다.

국내 대기업 중 한 곳은 마운터의 개발에 성공했지만, 세계시장에 적극적으로 내놓을 만한 상품으로까지는 연결시키지 못했다. 외국의 타사 제품들에 비해 여러 모로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플렉스트로닉스>의 공장장은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회사의 제품과 미래산업의 제품을 비교하자면, 한 마디로 자전거와 자동차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막 개발에 성공한 마운터를 비행기에 싣고 미국 애너하임으로 날아갔다. 세계 최대의 PCB 제조장비 전시회인 <넵콘웨스트 쇼>가 열리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개발을 총괄했던 연구소장도, 그 자리에 참가했던 다른 직원들도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전세계의 마운터 생산업체와 가전업체 사람들이 팀을 짜서 우리 부스에 견학을 올 정도로 우리 물건은 그곳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그들의 대부분은 <MIRAE>라는 브랜드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 때 나는 직원들의 눈물을 지켜보면서,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고생하고 노력한 것도 이 정도면 200% 보상받은 셈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체류하는 동안 나는 각국 인사들의 식사초대에 응하느라 정신없었다. 본사로 귀국하자마자 나는 전직원들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이제 더이상 외국사람들에게 밥 사주지 마세요. 그들이 살 겁니다.”

미국, 스위스, 영국 업체들은 모두 판매망이나 서비스망을 훌륭히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생산하고 있는 마운터는 수준 낮은 제품이었다. 판매망은 있는데 유통시킬 만한 변변한 제품이 없는 상황이었으니 그들이 우리의 제품을 보고 앞다퉈 달려드는 건 당연했다. 당시의 우리에게는 물건은 있으되 판매망과 서비스망이 없었다. 당연히 서로 통하는 바가 많았던 것이다.

파트너 선정에 들어간 우리는 외국의 몇몇 업체를 최종 물망에 올리고 실사에 들어갔다. 그 중에서 스위스의 <지바텍>은 <에섹 그룹>에 속한 업체였다. 내가 반도체제조장비 사업에 막 뛰어들 무렵만 해도 <에섹>은 그야말로 하늘처럼 우러러보이던 ‘꿈의 기업’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그 회사를 직접 실사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실로 감개무량했다.

나를 포함한 실사팀은 스위스로 떠났다. 공항에서부터 <지바텍>의 대접은 송구할 정도로 극진했다. 낮에는 사업장 곳곳을 시찰했고, 밤에는 모기업인 <에섹>의 회장이 직접 주최하는 최고급 만찬에 초대되었다. 마케팅팀의 한 젊은 부장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 말을 했다.

“회사를 잘 만나니 젊은 나이에 별 대접을 다 받아봤습니다.”

이듬해, <넵콘웨스트 쇼>에 다시 출품한 우리의 마운터는 최고상을 수상했다. 자신감이 생긴 우리는 일본 마쿠하리에서 열리는 <프로텍 재팬쇼>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리니어 모터’를 장착한 신형 마운터와 함께였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리니어 모터’는 회전운동을 직선운동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구성이 단순하고 몸집도 작은 반면, 힘이 좋고 정밀도가 우수한 신개념의 동력장치였다.

일본 현지의 관계자들은 우리의 마운터 기술에 놀라고, 리니어 모터의 우수성에 다시 한번 놀랐다. <파나소닉> <카시오> <산요> <미쯔비시> 등을 포함한 일본 현지의 무려 42개 업체가 우리에게 기술이전을 요청해왔다. 체류하는 동안 나는 이리 저리 끌려다니느라 말 그대로 ‘밥 살’ 틈도 없었다.

원래 마운터는 미국의 <유니버설> <쿼드> 등이 먼저 개발했지만, 후발주자인 일본이 미국기업들을 추월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영국도 마운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도태되고 말았다. 유럽에서는 <지멘스> 정도가 그나마 마운터 업체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였고, 세계의 마운터 시장은 거의 일본 업체들이 독식하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을 우리가 놀라게 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기술 쾌거였다.

사업하는 ‘맛’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장차 마운터로 돈을 벌고 말고는 내게 큰 의미가 없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손익계산이 끝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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