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CEO를 물으면 열의 아홉이 잭 웰치를 꼽았다. 그의 번역된 자서전도 오랫동안 출판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잭 웰치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전(前) 회장이었던 사람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내에도 훌륭한 기업인들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잭 웰치였을까.
1981년에 <GE> 사상 최연소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꼬박 20년 만에 <GE>의 연매출은 5배로 늘어났고 순이익은 8배로 성장했다. 잭 웰치가 물러나던 시점에는 <GE>의 시장가치가 무려 5천3백억 달러로 평가되었다. 우리나라 예산의 5, 6년치에 맞먹을만한 거액이다. 말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가 된 것이다. 그만한 성장을 견인한 사람이니 우리 젊은이들과 언론들이 열광할 만도 하겠다.
하지만 잭 웰치를 향한 열광으로부터 한발쯤 벗어나 냉정히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잭 웰치가 과연 ‘우리’의 모범인가. 탁월한 경영인이었던 것만은 분명하고, 그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경영방식을 도입해 회사를 살려낸 사람인 것 역시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 기업인들과 예비 기업인들은 모두 잭 웰치를 배우자고 했다. 아니, 외우자고 했다. 잭 웰치를 외우면 우리 기업들이 모두 <GE>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기라도 한 양.
그가 이끌었던 <GE>의 성공신화는 파괴적이리만치 과격했던 감원과 사업축소 덕분이었다. 그의 스타일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과감한 다이어트의 반복이었다. 미국 언론들은 그를 ‘중성자탄’이라고 부르며 비난하기도 했다. 사람들만 잡는다는 뜻이리라. 경영합리화와 효율지상주의의 모토 아래 엄청난 직원들이 회사에서 쫓겨나야 했다. 공익성이나 미래가치와 상관없이 매출이 신통찮은 사업은 과감히 정리해버렸다. 온갖 비난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20년 동안 잭 웰치가 외친 구호는 한결 같았다. “고쳐라! 팔아라! 폐쇄시켜라!”
한편, 얼마전까지 국내 출판가에서는 최인호의 소설 <상도>가 바람을 일으켰다. 소설을 각색한 TV드라마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 <상도>에서 의주 만상 홍득주는 어린 임상옥에게 이런 말을 한다.
“장사는 돈을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벌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을 벌면 돈은 저절로 벌리게 되어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잭 웰치는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버렸고 그 덕분에 찬사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동시에 <상도>의 홍득주와 임상옥은 돈보다 사람을 중히 여기라 가르쳐 또한 찬사를 받고 있다. 잭 웰치에 감탄하고 임상옥에 감동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인가? 아니다. 우리는 묘하게도 잭 웰치와 임상옥을 둘 다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전 영역에서 마찬가지겠지만, 경영‘론’ 또는 경영 ‘스타일’을 말할 때도 우리는 그러하다. 우리는 흔히 인간적이면서도 풍류를 아는 선비의 모습을 CEO상에 대입하곤 한다. 그러나 합리와 효율, 냉정함과 용의주도함을 체화한 마키아벨리 같은 CEO를 보며 믿음직스러워하기도 한다.
모순적이나마 이렇듯 긍정적인 태도만 존재한다면 그나마 별 문제가 없다. 동일한 이분법에 근거하면서도 매우 부정적인 태도도 있을 수 있으니, 선비를 향해 “냉정하지 못하다”고 욕하면서 마키아벨리를 향해 “인간적이지 못하다”고 욕하는 것이다. 우리의 가치관이 정말 이중적이라고 하는 것은, 선비와 마키아벨리의 공존 때문만이 아니다. 오로지 눈앞의 결과에 따라 동일한 근거로 매번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기 때문이다.
한 기업 또는 기업인에 대한 언론들의 평가를 불과 1년 전과 비교해 보라. 동일한 정보들에 근거하여 전혀 상반되는 평가를 내리는 기사들이 부지기수다. 어디 언론들만의 문제이겠는가. ‘우리식’ 경영론, 경영원칙, 경영스타일이 없는 한, 우리 사회의 모든 기업인들, 모든 직장인들, 그들에게 딸린 모든 식구들 즉 ‘전국민’이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아무런 내적 모순 없이 임상옥과 잭 웰치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강제되고 급작스런 근대화를 거쳐왔던 우리들의 필연적인 혼란이었다 치자. 이제는 진짜 ‘우리 것’을 만들어야 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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