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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사례

정문술의 거꾸로 인생론-'노욕(老慾)' <24>

작년에 미국 모 대학의 글로벌 MBA 코스가 한국에서 개설되었다. 그 오프닝 행사에 내가 강연자로 초청되었다. 미래의 경영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나는 세 가지를 당부했다.

“정의로운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기업체도 보편적인 윤리와 도덕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기업도 사회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얕은 꾀나 재주를 부리지 말고 상도의를 지켜야 합니다. 사업이란, 제압하고 제압당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셋째, 기업이란 주주와 종업원 모두의 소유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 원칙을 끊임없이 실천해야 합니다. 특히 벤처기업에는 원래 주인이 따로 없는 법입니다. 말단 경리나 CEO나 모두 동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회사에 다녀야 합니다. 회사가 누구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나야 합니다. 이렇게 정의로운 기업이 되면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정의로운 기업을 추구하는 것은 곧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기업은 꼭 성공한다. 진리를 따르면 쓸데없는 고민이 사라지고 방황이나 갈등도 없어지므로 아주 쉽고 평화롭게, 합리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 떳떳하기에 과감해질 수 있게 되고, 서로 숨길 것이 없으므로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기업의 ‘해피엔딩’에 대해서도 통념과 다르게 생각한다. 기업은 반드시 ‘크게’ 성장해서 ‘많이’ 벌어야만 하는가. 모든 기업들이 대기업의 꿈을 꿔야만 하는가. 그런 사회가 정말 자본주의적으로 바람직한 사회인가. ‘적당히’ 성장해서 ‘적당히’ 버는 기업은 정녕 꿈이 없고 발전이 없는 기업인가.

작은 규모일지라도 안정된 이윤을 냄으로써 종업원들의 생계를 보장하고, 거대조직에서는 불가능할 진취적이고 발랄한 기업문화를 실천하는, 젊고 가벼운 기업이 되는 건 해피엔딩이 아닌가. 그렇게 다양하고 혁신적인 기업문화들이 존중되고 장려되는 사회야말로 진짜 정의롭고 해피한 사회는 아닐까.

앞서의 예비 경영자들에게 했던 강연은 다소 장황했지만, <미래산업> 사장직을 내놓는 자리에서 내가 후임자들에게 당부한 내용은 딱 한 가지였다.

“부디 착한 기업을 만들어주십시오.”

나는 내 후임자들이 반드시 <미래산업>의 사세를 더욱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상황과 분수에 자족하며 언제나 정도(正道)를 걷는 기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착한 기업’이란 모자랄지언정 결코 사(邪)의 길을 가지 않는 기업이다. 그게 그토록 어려운가. 혹시 아무도 시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렵다고만 생각해왔던 건 아닌가.

착하고 정의로운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먼저 그렇게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윗사람’들이 먼저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 또한 아들녀석의 도덕교과서로부터 배운 바다. 그래서 나는 <미래산업>에서 일하는 동안 애써 지시사항이나 캠페인을 만들지 않았다. 오로지 ‘나’ 하나를 제대로 만들어보고자 노력했다. 직원들을 붙잡고 시시콜콜 따지고 훈계하는 사장이 아니라, 스스로 사장다운 모습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 여겼다. 정도를 걷는 모습을 선두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스스로를 ‘참아줄만한 사장’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야 말로 사장의 주요 업무라 여겼다.

<미래산업>의 초창기부터 사장이었던 나의 주된 업무는 공장 청소, 관공서 수발, 부품 구매였다. 엔지니어들이 현장에서 생산과 개발에 열중하는 동안 사장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내 것을 자꾸 버리고 스스로를 낮출수록 존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렇게 배워갔다.

나는 또한 친인척을 병적으로 멀리했다. 직원들로 하여금 사장과 회사를 진심으로 믿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IMF때 두 사위가 실직을 하자 딸들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내게 취직을 부탁했었다. 나는 그때 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 남편들을 받아들이면 우리 직원 두 명을 내보내야 한다.”

언젠가는 큰 처남이 작은 처남의 취직을 부탁한 적도 있었다. 큰 처남은 <미래산업>이 한창 어려웠던 시절에 자기 집을 담보로 사업자금을 융통해주기까지 했던 개인적인 은인이었다. 배은망덕하게도 나는 큰 처남의 청탁을 거절했다. 그때는 아내도 나를 몹시 원망했었다.

‘믿을 수 있는 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돈 문제에도 철저해야 했다. 내가 사적으로 유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공금은 대표이사의 월급 4백50만 원뿐이었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먹을 때조차 나는 반드시 내 주머니를 뒤졌고, 사적인 용도로 차를 써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개인카드로 주유를 했다. 주변인들은 오히려 째째하고 소심하게 군다며 나를 타박했지만, 무릇 원칙이란 것을 지키려면 사소한 유권해석조차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민망함을 견뎠다.

오랫동안 나와 미래산업을 지켜봐왔던 한 언론인은 어느 매체에서인가 이렇게 적었다.

“그의 가장 큰 능력은 ‘타인과의 일체화’였다. 조그만 공장 시절부터 그의 곁에서 훈훈한 눈길로 쳐다보던 4명의 공원들과 그는 하나였다. 그리고 수백 명이 넘는 지금의 직원들과도 그는 완벽한 하나였다. 회사가 나의 것이고, 그가 바로 나라는 ‘일체화’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간이었던 셈이다.”

낯부끄러운 기사를 인용하면서 이제 다시 나를 돌아본다. 과연 혹자들의 칭찬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살았던가. 나는 정도(正道)를 걸어왔나. 나는 정말 ‘미래인’들과 하나였나. 우리들은 착하고 정의로운 길을 걸어왔나.

내가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자 서울, 분당, 천안에 있는 <미래산업> 식구들은 며칠 동안 눈물바람이었단다. 사랑받는 사장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미래인’들에게 다만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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