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 제 모습을 갖춰나가자 우리는 ‘금형(金型)업체’로의 탈바꿈을 추진했다. 기술력 확보를 위해 고심하던 나는 수소문 끝에 S라는 일본인 퇴역기술자를 초빙했다. 월급 150만원과 월 1회의 일본여행 경비 50만원, 도합 250만원 규모의 보수를 약속했다. 80년대 초반의 임금수준으로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대우였다.
S는 그만한 대우가 어울리는 장인(匠人)이었다. 시력도 좋지 않은 노인이었지만 기계 앞에만 서면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정밀한 금형을 다루면서 어찌 장갑을 끼느냐며 그는 항상 맨손으로 쇠와 기름을 만졌다. 우리 직원들은 그로부터 금형기술을 배웠다. 오래지 않아 “잘 안 되는 일이 있으면 풍전기공을 찾아가라”는 말이 부천공단에 나돌기 시작했다.
금형사업은 고도의 정밀기술을 필요로 하는 반면, 시장 안정성이 없었다. 어설펐던 나의 판단착오였다. 늘 새로운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속도가 붙어주질 않았고, 그 때문에 대개는 납품기일을 맞추기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흐지부지 잔금 떼어먹히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와중에도 A/S 요청은 날마다 쇄도했다. 별수없이 거래처와의 잡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잔금을 떼어먹고 금형기술을 훔쳐가려던 한 거래처 사장의 모함으로, 나는 열흘 동안이나 유치장 신세를 진 적도 있었다.
무혐의로 풀려났으니 몸뚱이 고생한 것 말고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금형사업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수지 맞추기도 힘이 드는 판에 고생은 죽도록 하면서 늘 욕 먹고 마음 상하는 일만 반복되었다. 금형을 필요로 하는 건 대부분 부품생산공장들이다. 말하자면 다른 기업의 ‘하청업체’인 것이다. 그러한 업체들에 금형을 납품해야 하는 우리는 다시 그들의 ‘하청업체’인 셈이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알아준다고도 하건만, 이들의 질 낮은 행패는 참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금형을 대체할 새로운 사업을 연구하는 와중에도 금형주문은 끊임없이 밀려들어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짜증만 쌓여가던 즈음, 당시 오산에 공장을 두고 있던 모 그룹 <K전기>에서 금형주문이 들어왔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우리 같은 영세업자가 어떤 식으로든지 대기업과 관계를 맺어 나쁠 이유가 없으리란 생각이었다.
당시의 전화 교환기용 단국장치에는 베릴륨카파라는 금속소재를 재료로 하는 복잡한 형상의 커넥터 부품이 반드시 필요했다. 마침 대기업인 <K전기>에서 이 부품의 국산화계획을 세웠고, 파트너를 물색하던 중 마침 “풍전기공의 금형이 부천에서 으뜸”이라는 소문을 듣게 된 것이다. 개발비는 전액 <K전기>에서 지원하겠으니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금형을 제작해달라는 요구였다. 기일이 촉박하긴 했지만 금형이라면 어쨌든 자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기한에 정확히 맞춰드리겠습니다. 대신에 완성된 금형은 저희가 관리하도록 해주십시오. 어차피 그 금형을 가동해서 부품을 공급할 생산업체를 물색하셔야 할텐데, 금형을 개발한 저희쪽에서 커넥터를 생산한다면 피차에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금형의 유지보수에도 효율적이고 말입니다.”
실속없는 금형사업에 언제까지고 목을 매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의 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대기업의 부품 생산업체로 안정된 수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상부와 상의를 해봐야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던 금형부장은 곧 돌아와 선뜻 대답했다.
“그렇게 합시다.”
너무 감격한 나머지 나는 금형부장의 손을 덥썩 잡았다. 잠시후 계약서에 서명하려다 보니 그 내용은 빠져있었다. 조심스럽게 내가 그 부분을 지적하자 금형부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아, 그 점은 이해를 해주셔야 해요. 본사까지 올라가야 할 공식문서에 그런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한다는 건 좀… 전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예,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구두로 합의된 이면계약쯤으로 알고 있으면 되나요?”
“그렇지요.”
엔지니어들은 당장 그날 저녁부터 금형제작에 들어갔다. 하지만 베릴륨카파라는 금속을 다루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나는 백전노장인 일본인 기술자 S에게 기대를 걸어보았지만, 그 역시 베릴륨카파라는 낯선 소재에는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다급해진 나는 부천공단 일대를 돌며 베릴륨카파를 다뤄본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를 수배했다. 한 금형공장에서 맞춤한 기술자를 겨우 발견했지만 나의 스카우트 제의는 단호히 거절당했다. 다만 퇴근 이후 시간에 공장으로 방문하여 기술전수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금형을 완성했다는 연락을 하자마자 <K전기>의 기술평가단이 나는 듯이 달려왔다. 금형으로부터 떨어지는 시제품을 붙잡고 부위별로 세밀하게 검사하고 측정하던 그들은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단해요. 기대 이상이네요. 합격입니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동안 밤잠 못자고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무엇보다 <풍전기공>의 살 길이 열린 셈 아닌가.
그런데 잠시 후 크레인과 인부 대여섯 명이 공장에 도착했다.
놀란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금형부터 둘러쌌다.
“무슨 일이요?”
평가단과 함께 그 자리에 있던 <K전기>의 금형부장이 나섰다.
“기계 좀 잠시 가져갔다가 돌려드리겠습니다.”
“아니,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금형은 여기에 두고 제품도 저희가 생산하기로…”
“본사 간부들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 두더라도 엄연한 저희 재산이니 재산등록절차도 거쳐야 하구요. 금방 돌려드리겠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넘도록 기계는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K전기>에 전화를 했다. 금형부장은 자리에 없었다. 몇 차례나 전화했지만 그는 부재중이었고, 메모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답답해진 나는 <K전기>를 찾아갔다. 이미 여러 번 드나들어 정답게 인사까지 나누는 사이였던 정문 수위가 그날따라 나를 붙잡았다. 사전약속 없이는 들여보낼 수 없다는 얘기였다. 기가 막혔다.
수위가 급하게 내 팔을 잡았지만 나는 거칠게 뿌리치면서 곧바로 건물로 들어갔다. 금형부장은 멀쩡하게 자리에 앉아있었다.
“힘 없는 하청업체라고 이렇게 등쳐먹어도 되는 겁니까!”
나의 갑작스런 출현에 당황하던 금형부장은 금세 냉정한 표정을 되찾았다. 그는 느린 동작으로 책상서랍 속에서 문서 한 부를 꺼냈다. 계약서였다. 기가 막혔다.
그토록 기대했던 일마저 무산되고 나니 지독한 허탈감이 몰려왔다. 금형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사기로 시작해서 배신으로 끝났던 나의 첫 사업이었다. 1년 동안 사력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세상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혹독했다. 나는 직원들에게 훗날을 기약하며 <풍전기공>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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