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을 정리하면서 공고출신의 엔지니어 네 사람과 수위아저씨에게 나는 분명히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반드시 다시 시작합니다.”
뻔뻔한 부탁이었지만 그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실패는 했을망정 나를 ‘오너’로 인정해주는 그들이 나 역시 눈물겹게 고마웠다.
다행히 내게는 아직 퇴직금 2천만 원이 남아 있었다. 공무원 시절부터 틈틈이 사모았던 그림도 몇 점 있었다. 집을 담보하면 은행대출도 얼마쯤 가능할 터였다. 문제는 사업아이템이었다. 금형에는 자신 있었지만, 절대로 그 일을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일종의 회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호기심과 열정, 패기, 낭만, 모험심, 승부근성들은 오랜 세월동안 공무원 서랍 깊숙히 숨어있었다. 지금의 나는 막 세상에 튀어나온 사회 초년생이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사회 초년생에게는 서랍 속의 그 물건들이 다시 필요하지 않을까. <풍전기공>의 쓰라린 경험은 18년동안 잠들어 있었던 진짜 나를 자극하고 일깨워주었다. 낯선 곳으로 끝도 없이 뛰어들었던 나, 그 덕분에 항상 남들보다 한 발 앞서있었던 나를 되찾고 싶어졌다.
나는 반도체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방면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반도체가 근미래에 크게 각광받을 만한 사업이라는 상식 정도가 당시의 내가 가진 사전지식의 전부였다. 다시 겁이 없어지기로 작정한 나는, ‘반도체라고 내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다소 엉뚱한 오기를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와신상담의 고사를 생각하며 다짜고짜 반도체 공부를 시작했다.
반도체 산업에는 크게 세 가지 갈래가 있다. 첫째가 반도체 생산업체, 둘째가 원부자재 공급업체, 셋째가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다. 그 중에서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거나 원부자재를 공급하는 분야는 대기업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만큼 막대한 자본과 거대한 시장, 전방위적인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다. 하지만 제조장비라면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까지 매우 다양했다. 반도체 제조장비라면 내가 뛰어들 만한 틈새가 있을 것 같았다.
‘반도체 제조장비’ 분야로 결심을 굳혀가던 시점과 거의 동시에 나는 ‘미래산업’이라는 단어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풍전기공>을 정리하면서부터 줄곧 새로운 회사의 이름을 고민하던 나는, 어느날 경제일간지를 뒤져보다가 무릎을 탁 쳤다. 당시만 해도 ‘미래산업’은 신조어였다. 고안자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나는 ‘미래산업’이란 단어를 고유명사로 바꾸는 일에 곧바로 착수했다.
나는 부천에 있는 조그만 공장 하나를 전세로 얻은 후, <풍전기공> 시절의 식구들을 다시 불러모았다. 그동안 각자 흩어져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그들은 내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달려왔다. 우리는 허름한 공장에 모여 재회와 창업을 자축하는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반도체 제조장비를 만들 겁니다. 겁 먹지 마세요. 그동안 연구 많이 했습니다.”
그들은 금세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연신 싱글벙글한 나를 보며 이내 마음을 놓는 눈치였다.
“사장님만 믿겠습니다. 뭐든지 해보죠. 금형만 아니라면요.”
우리는 오랜만에 마음껏 웃었다. 그 자리에서 탄생한 <미래산업>은 자본금 8천만 원, 전직원이 여섯 명밖에 안되는 ‘반도체 제조장비 회사’였다. 1983년 2월이었다.
나는 ‘리드 프레임 매거진’을 우리의 첫 프로젝트로 선정했다. 반도체 소자에 단자를 부착하기 위해 사용하는 복잡한 형상의 금속상자였다. 소모품은 아니었지만 반도체 공정에 있어 필수적이면서도 다량으로 필요한 물건이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6개 업체가 매거진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모두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영세한 규모였다. 그러므로 국내에서 필요로 하는 매거진은 거의 전량을 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나는 국산 제품과 미국, 일본의 제품을 구해와 직원들과 함께 기술검토에 들어갔다. 결론은 싱거웠다. 그 정도 제품을 만드는 데에는 별다른 기술력도 필요 없었다. 규격만 정확히 나와준다면 조립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단순작업에 불과했다. 직원들은 당장이라도 생산에 돌입하자며 서둘렀다. 하지만 전체 소비량에 비해 무의미할 정도로 협소한 국산 매거진 시장에서, 여섯 개나 되는 업체가 경쟁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획기적인 개선 제품이 아니라면 우리가 들어갈 틈은 전혀 없어보였다.
우리는 현재 유통되고 있는 매거진들의 문제점을 찾아보았다. 모두들 원가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에만 목숨을 걸고 있으니, 후발주자인 우리는 품질개선으로 맞서야 그나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기존 매거진의 가장 큰 문제는 정밀도와 내구력이었다. 여러 개의 금속판을 조립해서 만드는 장비이기 때문에 조립과정에서 이미 오차가 생길 확률이 높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오차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오차를 줄이기 위해 조립과정에 신중을 기하자면 생산속도가 너무 느려 문제였고, 그렇게라도 오차를 줄이더라도 내구력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우리는 몇 달 동안 그 문제로 씨름했다. 조립에 사용되는 볼트와 너트도 개선해보고, 금속판의 소재도 다양하게 교체해보았다. 하지만 성과는 별로 없었다. 모두가 차츰 지쳐갈 무렵, 나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금형으로 통째로 찍어 이음새를 없앤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금형기술이라면 국내 최고를 자부하던 우리들 아니었던가.
우리가 개발한 ‘이음새 없는 리드 프레임 매거진’은 출시 후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국내 시장을 석권했다. 반년 후에는 해외로부터 주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대여섯 명의 직원들로는 감당할 수가 없는 물량이었다. 당시의 <미래산업>의 거의 매일 인력을 충원해야 할 지경이었다. 순식간에 매출은 억단위로 뛰어올랐고, <미래산업>은 비로소 ‘반도체 제조장비 업계’에 명함을 내밀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