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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치기 당한 월급

정문술의 거꾸로 인생론 제2부 -'일과 삶' <29>

매거진의 성공은, 사업가로서 나의 첫 성공이자 <미래산업>의 첫 성공이었다. 하지만 나는 매거진 정도로는 아직 성에 차지 않았다. 좀더 획기적인 것, 좀더 위험한 것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매거진으로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한 나는 곧장 또다른 도전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수출 업무를 대행해주던 한 업체 사장을 통해 나는 아서 타일러라는 미국인을 소개받았다. 그는 <왕 컴퓨터>라는 중견 벤처의 창업멤버였고, 다국적 장비업체인 <델트론 오토메이션>의 경영자이며 수석 엔지니어였다. 그는 한국인 부인과 함께 한국에서 살고 싶어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같이 사업할 수 있는 파트너를 물색 중이었다.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필리핀 마닐라로 날아갔다.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프로젝트는 ‘무인 웨이퍼 검사장비’의 개발이었다. 웨이퍼(Wafer)란 반도체의 가장 기본이 되는 소자를 말한다. 당시의 반도체를 제조하는 과정 중에서 유일하게 자동화되지 못한 것이 바로 웨이퍼의 검사공정이었다. 웨이퍼를 검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미경과 육안(肉眼)을 필요로 했다. 아서 타일러는 현미경과 육안을 기계로 대체하겠다는 욕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 장비가 개발되기만 한다면 시장성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만큼 첨단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장비였다. 내가 찾고 있던 ‘물건’이었다.

나는 ‘무인 웨이퍼 검사장비’의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기존의 부천 공장과는 별도로 서울 압구정동에 새 연구소를 얻었다. 아서 타일러와 별도의 합작법인을 설립한 후 <미래산업>의 주력 엔지니어들을 모두 압구정동으로 불렀다. 부천의 공장은 당분간 매거진 생산에만 주력시킬 계획이었다. 매거진은 우리의 유일한 재원이기도 했다.

매거진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규모도 컸고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웨이퍼 검사장비의 개발비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나는 개발자금을 구하기 위해 아예 길거리로 나섰다. 주변에서 끌어올 수 있는 사채라는 사채는 다 끌어들였고, 은행과 신용금고에 들락거리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빚은 차츰 늘어갔다. 반면에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연구는 큰 성과 없이 더디기만 했다. 1988년은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해라 온 나라가 축제열기에 휩싸여 있었지만, 나에게는 지옥과 같은 한 해였다. 내 집은 물론이요 처남의 집과, 조카의 곗돈까지 모두 연구비로 쏟아부은 상태였다. 집안에는 그림 한 점 남아 있지 않았다. 당시의 내 수첩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 적혀 있었다. 빚 명세서였다. 은행과 사채 이자만 해도 하루에 대여섯 건이었다. 어음도 쉼없이 돌아왔다. 매일 아침마다 화장실에 앉아 수첩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기가 막히고 눈앞이 깜깜했다.

없는 집안에 제사 잦다더니, 그런 형편 속에서도 월급날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직원과의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므로 급료를 미루는 짓만은 절대 하지 말자고 창업과 동시에 다짐했었다. 어느 월급날 아침, 나는 더 이상 돈을 구할 곳이 없어서 출근도 못한 채 전화통만 붙잡고 있었다. 전화를 받는 친구들과 친지들은 아예 나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비참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수도 없었다. 겨우 회사 잔고를 맞춰놓고 나니 정오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내색은 안하려 노력했지만, 회사 사정이 엉망이라는 걸 직원들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내가 나타나면 직원들은 항상 내 눈치를 보았다. 나는 그게 못견디게 싫었다. 아무 신경 쓰지 말고 그저 일에만 매달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직원들 앞에 설 때마다 더 쾌활한 척해야 했다. 하지만 그날만은 자신이 없었다. 직원들을 보자마자 울컥 눈물을 쏟아버릴 것 같은 심정이었다. 나는 공중전화로 경리에게 전화를 해서 월급 지불을 당부한 후, 주차장 구석에 차를 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잠시 쉬고 싶었다.

실컷 울다가 시계를 보니 오후 다섯 시였다. 지갑을 뒤져보니 만 원권 한 장이 있었다. 슈퍼마켓에 들러 빵과 음료수를 사들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날따라 사무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입사한 지 한 달밖에 안된 어린 소녀 경리는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직원들도 일손을 놓은 채 침통하게 앉아 있었다. 개발팀장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은행 앞에서… 날치기를 당했답니다…”

몇 차례나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받고, ‘정신 좀 차리고 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가며 친구에게 구걸하다시피 구해놓은 돈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더 있다간 무슨 실수를 저지르게 될는지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나는 엎드린 경리의 어깨를 힘껏 두드렸다.

“괜찮아, 임마!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만 울어!”

나는 초라한 빵봉지를 그 옆에 내려놓고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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