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중, 공고출신의 한 엔지니어가 때맞춰 사고를 낸다. ‘핸들러’라는 장비를 우리가 입에 올리기 시작한 지 불과 일주일만에, 그 녀석이 핸들러 설계도면을 들고온 것이다. 비록 핸들러 중에서 가장 단순한 트랜지스터 핸들러였지만 우리는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이 자식! 이거 어디서 났어!”
사람들은 반가움과 불안함이 뒤섞인 얼굴로 그를 다그쳤다. 그의 대답이 또한 걸작이다.
“제가 그렸는데요.”
워낙에 눈썰미가 좋은 녀석이긴 했지만 이 정도이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장비전시회에 가서 핸들러를 유심히 관찰한 것이 그가 가진 유일한 사전지식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정당한 산업스파이었고, 걸어다니는 사진기였다. 우리는 그때부터 그를 ‘찍사’라고 불렀다.
물론 그의 도면은 헛점투성이였다. 하지만 그의 도면은 막연하기만 했던 우리들에게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중요한 지침서였다. 아침에 출근을 하자마자 나는 엔지니어들이 밤새 휘갈겨놓은 메모쪽지를 들고 차를 몰아 청계천 부품상가로 달려갔다. 오후가 되면 10만원이고 100만원이고를 가리지 않고 무작정 돈을 구하러 다녔다. 집에 돌아가 서둘러 저녁을 먹은 후에 다시 차를 몰아 산업연구원으로 달려가 새벽까지 핸들러 관련 외국 자료를 검색하여 엔지니어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우리는 오래지 않아 핸들러 설계도와 개발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나는 당시에 핸들러 국산화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대기업 <A사>를 무작정 찾아갔다. 그들은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티가 역력했다. 하지만 설계도와 개발계획서를 보여주는 순간 그들의 태도는 일변했다.
“대단한데요… 대단해요.”
“한번 믿어주십시오. 할 수 있습니다.”
“설계도는 완벽해보입니다만… 아무래도 매거진 만들던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닌데…"
“비록 실패했지만, 저희는 3년동안 웨이퍼 검사장비를 개발한 경력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핸들러의 헤드만 먼저 만들어오세요. 그걸 보고 나서 향후 계획을 잡아보는 걸로…”
주어진 기간은 한 달이었다. 나를 포함한 전직원은 공장에 야전침대를 준비해놓고 곧바로 합숙에 들어갔다. 정확히 한 달 후, 우리는 헤드를 들고 <A사>를 다시 찾아갔다. 하지만 역시 대기업다웠다. 확언은 다시 유보되었다.
“음… 정말 대단들 하십니다. 내친 김에 시제품을 하나 만들어보시죠.”
“계약은…”
“아, 걱정 마세요. 시제품 만들어오시면 그때 결정하는 걸로 하지요.”
이번에는 6개월의 기한을 받았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핸들러에 무지한 사람들이었다. 반년 만에 시제품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당시의 우리에게는 다른 길이 없었다. 무슨 수가 있더라도 6개월 안에 핸들러 비슷한 물건이라도 만들어야 할 상황이었다. 정확히 4개월 후, 우리는 핸들러를 만들었다. 조잡하고 엉성한 기계였지만 우리 손으로 만든 국내 최초의 핸들러였다. 기한은 남아 있었지만 사정은 우리가 더 급했다. 뿔뿔이 흩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하루빨리 계약을 따내야 했다.
그렇게 만든 최초의 핸들러를 <A사>로 가져가기 위해 차에 싣고 있는데 다리받침이 건들거리는 게 내 눈에 보였다. 나는 급하게 소리쳤다.
“저거 왼쪽 다리 흔들리잖아! 누구 얼른 올라가서 이동하는 동안 볼트 조여!”
만약 그 순간에 나라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시험가동 중에 장비가 주저앉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 지경이었으니 <A사> 간부들 앞에서 장비에 전원을 넣는 내 손이 그리 떨렸던 것도 당연했다.
다행히도 장비가 주저앉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테스트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당시 <A사>에서 사용하고 있던 일본 <테섹>의 ‘TO-92’ 핸들러보다 우리 시제품이 처리속도에 있어 훨씬 우수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3대의 핸들러 주문을 받았다. 드디어 납품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비로소 여유가 생긴 우리들은 핸들러 관련 기술을 보강하는 한편으로 시제품의 문제점을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홍릉에 있던 <산업연구원>과 <과학기술원>으로 달려가 매일같이 자료수집에 매달렸다. 쉰이 넘은 사람이 하도 극성을 부려대니 그곳의 연구원들도 성심껏 도와주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선진국들의 핸들러를 분석하고, 대략적인 시장파악까지 할 수 있었다.
안팎으로 고생한 보람이 있어 우리는 <미래산업> 최초의 고유모델 ‘MIRAE-3000’을 생산했다. 한 번에 트랜지스터를 하나씩 로딩해서 테스트하고 분류하는 매우 원시적인 장비였지만, 우리에게는 실로 감개무량한 쾌거였다. 우리가 납품한 3대의 ‘트랜지스터 테스트 핸들러’는 당연하게도 현장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우리는 거의 전직원이 <A사>의 공장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MIRAE-3000’의 문제점을 모니터링하고 실시간으로 고쳐나갔다. 1년 전, 나에게 수면제를 사게 했던 <미래산업>은 어느새 핸들러 국산화의 주역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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