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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업무

정문술의 거꾸로 인생론 제2부 -'일과 삶' <32>

최근 <미래산업>은 핸들러에 이어 SMD마운터라는 장비를 개발했다. 마운터란 쉽게 말해서 회로기판 위에 전자제품들을 결합시키는 장비다. 휴대폰에서부터 텔레비전에 이르기까지,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라면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장비인 것이다. 초고속, 초정밀의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장비의 개발이 힘든 만큼, 시장은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미래산업>은 마운터의 개발비용으로 367억 원을 지출했다. 개발기간 동안 발생한 회사의 총매출 30.4%에 해당하는 비용이었다. 매출이 적었던 1997년도에는 오히려 매출액을 넘어서는 비용을 개발비용으로 투자했다. 핸들러의 성공으로 한동안 느슨하게 지냈던 나는 마운터 개발에 다시 한번 목숨을 걸었다. 또한 연구원들이 마운터에 기꺼이 목숨을 걸 수 있도록, 목숨 이외의 모든 것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3년 만에 SMD마운터를 개발했다. 우리의 마운터는 개념의 참신성에서, 기능의 효율성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물론 우리는 ‘후발주자’였다. 외국의 고객들은 우리의 마운터를 보며 감탄하는 동시에 ‘Mirae’라는 브랜드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듣도 보도 못한 아시아 변방의 조그만 중소기업 제품을 선뜻 구매하기에는 마운터가 워낙 고가였다. 게다가 한 번에 다량을 구매해야 하는 장비였다. 우리는 미주와 구주, 일본, 중국, 동남아 지역의 시장을 각각 담당해줄 해외 파트너를 선정해나가는 한편으로 새로운 자금원을 물색했다. 세계시장에서 마운터로 승부를 하려면 장차 막대한 운영비가 필요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껏 <미래산업>을 이끌어왔던 ‘핸들러 사업’은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은 후 선수금으로 30%를 받고, 납품 후에 60%를 받고, 현장 검수 후에 나머지 10%를 받는 시스템이라 자금의 흐름이 별로 까다로운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마운터 사업’은 장비를 먼저 생산한 후에야 고객을 찾고, 납품한 뒤에도 한참 후에 수금을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핸들러보다는 상대적으로 긴 호흡이 필요했다. 풍부한 자금력이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 것이다.

1999년 3월, <미래산업>의 주식은 액면가 100원 한 주에 3,000원의 가격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섣부른 유상증자는 주주들의 불이익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고심 끝에 나는 미국의 나스닥(NASDAQ)을 떠올렸다. 여전히 대부분의 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을 ‘한국전쟁과 올림픽의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우리의 마운터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기술력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세계적인 지명도’도 필요했다. 전세계의 기업들이 나스닥에 진출하려 그토록 애쓰는 이유가 바로 풍부한 자금확보와 브랜드 제고라는 탁월한 이중효과 때문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10여 개 업체가 나스닥 상장을 추진한다고 밝힌 상황이었다. 물론 그 중에는 주가폭등을 노린 작전상 허언들이 태반이었다.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미래산업>과 인터넷 회선사업자인 <D사> 정도가 그나마 진골이었다. 우리는 상장 주간사, 한국의 법무회사, 외국의 법무회사와 함께 워킹그룹을 만들어 나스닥 진출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돌입했다.

1999년 7월 1일, 워킹그룹의 첫 오픈 미팅이 열렸다. 그때까지 <미래산업>을 끌어왔던 것은 기자들이 흔히 ‘거꾸로경영’이라고 부르던 나의 파격적인 경영스타일이었다. 연초에 한번씩 눈인사를 하는 것 말고는 1년 내내 회의라는 것도 한번 해보지 않고, 보고나 결재라는 시스템에도 익숙하지 않던 사람들이었으니, 나스닥이 요구하는 까다로운 신청서 항목에 일일이 기입할만한 내용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코스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자기 회사의 자랑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과장도 해야 하고 때론 거짓말도 해야 한다. 그게 우리의 상식이다. 하지만 나스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단점부터 늘어놓아야 한다. 가장 먼저 회사가 안고 있는 고질적이거나 잠재적인 리스크 요인들부터 상세히 공개해야 한다. 만약 회사가 책정한 리스크 목록에 누락된 요인 때문에 주가가 떨어진다면, 발행사가 투자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나스닥 규정 때문이었다. 굳이 감추려고 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리스크 요인들까지 억지로 찾아내야 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상장 신청을 위한 필수자료 중에서 이 ‘리스크 백서’가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1/4이었다. 우리는 예컨대 “미래산업이 위치한 천안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사정거리 내에 위치함” “동아시아 지진대가 위도, 경도 몇도에서 몇도를 통과하므로 미래산업이 지진 피해를 입을 확률은 몇 퍼센트임” 등등의 다소 황당한 항목까지 마련해야 했다. 비즈니스 플랜과 기업의 비전이 또한 1/4, 재무재표 분석이 역시 1/4, 그리고 나머지 1/4이 재무상황 및 영업상황에 대해서 경영자와 논의하고 점검하는 내용이었다.

신청서를 준비하고, 신청서를 접수하고, 다시 수정권고안과 함께 반려된 신청서를 수정하고, 다시 접수하는 일련의 작업들은 미국 현지 기업들의 경우에도 수십 명의 인원과 몇 년의 시간이 투여되는 대작업이다. 하지만 <미래산업>의 경우에는 이 모든 작업이 반 년만에 끝났다. 나스닥 역사상으로도 흔치 않은 케이스였다. <미래산업>은 숨겨야 할 만한 ‘비밀’을 거의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해놓은 것은 없었다 해도 나스닥이 요구하는 원칙과 순서에 맞춰 하나씩 준비해나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인터넷 회선사업자인 <D사>와 같은 날 나란히 나스닥에 진출했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최초였다.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별도의 소득도 있었다. 인재의 유입이다. 워크그룹으로 함께 일하던 인재들 중에는 우리의 비전과 기업문화에 반하여 미국에서 하던 일을 접고 연봉의 80%를 줄이면서까지 <미래산업>에 입사한 법무 변호사가 있었고, 워크그룹에서 회계업무를 총괄하다가 역시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 <미래산업>에 입사한 사람도 있었다. 당시 실무자로 일하던 한국계 미국인 몇 명도 그때 입사하여 지금까지 <미래산업>의 해외영업파트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나스닥 상장이 완료되고 새로운 경영스타일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을 기하여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회사를 종업원들에게 물려줌으로써 내가 할 일은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미래산업>과 함께 했던 고난과 행복의 순간들을 반추하며 아내와 함께 곱게 늙는 것이 내게 남겨진 마지막 업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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