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한국시간) 아르헨티나는 동구의 강호 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6-0으로 대파했다. 공격축구를 선호하는 페케르만 감독은 아르헨티나의 골 잔치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예선 탈락이라는 쓰라린 아픔을 맛 봤던 아르헨티나 축구가 위력을 되찾게 된 셈이다.
독일 월드컵에 출전한 아르헨티나 축구의 힘의 원천은 페케르만 감독에게 있다. 현 대표팀 23명의 선수 중 17명이 페케르만이 청소년 대표팀 감독 시절 발굴하고 키워 낸 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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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주장인 후안 파블로 소린이 16일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를 통해 한 말은 페케르만 감독이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어떻게 완전히 바꿔놓았는지 잘 설명해준다.
"페케르만 감독과 선수 대부분은 이미 청소년 시절 함께 우승을 했었기 때문에 선수들은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 페케르만 감독은 매우 개방적인 지도자다. 그가 있었기에 아르헨티나 축구가 전진했다."
페케르만 감독은 아르헨티나를 대표할 23인의 선수를 선발할 때 노장들을 제외시켰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터주대감이던 하비에르 자네티와 월터 사무엘도 탈락했다. 대신 페케르만 감독은 젊은 피를 수혈했다.
그는 아르헨티나팀의 공격 조율사인 후안 로만 리켈메의 운명도 바꿔 놓았다. 스피드가 다소 느린 리켈메는 마르셀로 비엘사 전 아르헨티나 감독 밑에서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리켈메의 천부적 재능을 알고 있던 페케르만 감독은 리켈메를 중용했다. 리켈메에게 기회를 주면서 던진 페케르만 감독의 한 마디는 축구에 미쳐 사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축구경기에서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은 공이지 사람이 아니다."
리켈메는 이번 월드컵에서 '스승' 페케르만의 선택에 수비를 무력화시키는 '킬러 패스'로 화답했다. 특히 코트디브와르 전에서 나온 리켈메의 스루 패스를 두고 독일 <ARD>의 해설자이자 전 서독 대표팀 선수였던 귄터 네처는 "리켈메는 마라도나 이후 아르헨티나가 배출한 최고의 선수"라고 격찬했다.
페케르만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우승을 이끈 카를로스 테베즈와 2005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우승의 일등 공신 리오넬 메시에게도 큰 기대를 걸었다. 두 선수는 세르비아와의 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으며 아르헨티나의 화끈한 공격축구에 기름을 부었다.
'대표선수들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는 것 외에도 페케르만이 가진 장점은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강한 카리스마 대신에 부드러운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페케르만의 전임 감독들이었던 다니엘 파사레야나 마르셀로 비엘사는 다혈질이었다. 두 감독의 성격은 일시적으로 선수단을 장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었겠지만 개성 강한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하나로 묶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페케르만 감독은 "시스템보다 선수가 중요하다. 축구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개개인의 기술"이라며 선수들의 개성을 우선시 했다. 시스템에 선수를 맞추기 보다는 선수들의 특징을 고려해 시스템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의 이 같은 지도자 철학은 선수들에게 강한 신뢰감을 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광대한 목축지대인 팜파스의 목동은 '가우초'라고 불린다. 푸른 그라운드를 야생마처럼 질주하는 자존심 강한 아르헨티나의 신예들이 진정한 가우초 페케르만에 의해 다시 태어난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일전을 펼치는 프랑스, 스위스의 감독도 모두 전 청소년 대표팀 감독 출신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레몽 도메네크 감독과 스위스의 야콥 쾨비 쿤 감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도메네크 감독은 재능이 많은 '외인부대' 프랑스의 조직력을 키우는 데 실패했다. 대표팀 내부에서 선수기용과 전술 등을 둘러 싼 잡음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에 반해 쿤 감독은 스위스 선수들에게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존경의 대상이다. 센데로스, 바르네타 등 젊은 피가 대거 포진된 스위스의 빈틈없는 조직축구는 쿤 감독의 지도력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감독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남은 한국과의 경기에 그대로 반영될지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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