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자님이 살던 그 작은 별이 소행성 B-612호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믿을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 별은 1909년에 터키의 천문학자가 망원경으로 한 번 살핀 일이
있는 별인 것입니다."(<어린 왕자> 중에서)
소행성 B-612호 출신의 외계 소년 <어린 왕자>는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임금님이 옥좌를 지키고 있는 이상한 나라를 지나, 자가당착에 갇힌 바보 어른이 사는 나라를 거쳐서, 5억 1백만 62만 2천 7백 31개의 별 사재기에 목숨을 건 우주의 부동산투기꾼이 살고 있는 나라를 통과하여 우주여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신분이지만 임금님도 술주정뱅이도 사업가도 무시할 수 없는 진실한 자아를 발견한 점등원이 살고 있는 작은 소행성 왕국에서 휴식을 취하고, 책상머리에 딱 달라붙어서 중요한 일을 손끝으로 처리하는 게으른 지리학자의 별을 지나, 생떽쥐베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에 막 도착하였다.
외계 소년 <어린 왕자>의 작가 생떽쥐베리는 1900년 프랑스 리옹의 옛 귀족집안에서 태어나 1919년 파리 예술 대학에 들어가 15개월 동안 건축학을 공부하고 스트라스부르 항공 대학에서 조종사 전문 교육을 받은 과학기술자 출신 작가이다. 그의 직종은 그 당시로선 최첨단 과학기술분야인 것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과 정열을 지닌 작가는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행동으로 실천하는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1926년부터 생명의 위험이 따르는 초창기 우편비행사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용기 조종사로 종군하게 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7월 31일 8시 30분 코르시카의 바스띠아 북쪽 1백 킬로미터 부근에서 정찰비행 도중 독일군 정찰기에 격추당하여 행방불명이 되었다.
생떽쥐베리가 1943년 <어린 왕자>를 발표할 무렵은 19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 호크에서 지구별 역사상 최초로 59초 동안 동력 비행에 성공하여 항공 시대를 연 이후 1927년 5월 21일 찰스 린드버그가 대서양 무착륙 단독 비행에 처음 성공한 것을 구경하러 프랑스 파리에 몰린 대인파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항공산업의 초창기에 불과하다.
행동주의 작가 생떽쥐베리는 우편비행회사의 업무를 시작한 지 1년 남짓 되어 생라파엘에서 사고를 당했으며, 35세 되던 해에는 리비아 사막에 출동했다가 불시착하여 겨우 목숨을 건진 경험을 직접 하기도 했다.
그래서 소행성마다에 다양한 캐릭터를 열거한 <어린 왕자>에는 생떽쥐베리가 염원한 우주 탐사의 꿈과 초창기 우주 조종사의 실전 경험이 회화체로 잘 그려져 있다.
시베리아 사막에 사뿐히 내린 <어린 왕자>가 태어난 소행성 B-612호는 앉은 채로 의자의 방향을 살짝만 돌리면 해 지는 광경을 바라 볼 수 있어 하루에 43번이나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왕국이다.
"무엇이든지 마음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무엇이든 잘 보려면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지.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어린 왕자> 에서 여우의 말 가운데)
과학과 인물이 하모니를 이룬 <어린 왕자>는 천문학이란 배경지식이 현란할 정도로 반짝인다. <어린 왕자>는 소행성의 고향, 소행성 왕국의 크기, 많고 많은 소행성 군단 등을 훤히 꿰뚫고 있다.
소행성이 지구인의 눈에 처음 들어 온 것은 1801년이다. 그 해 정월 초하루 이탈리아 천문학자이자 교수로 활동하던 파렐모 천문대의 피아치 대장이 황소자리에서 8등급 천체를 최초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자들은 피아치 대장의 발견을 놓고 잃어버린 행성을 찾아냈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18세기말부터 독일에선 무명의 청년 티티우스의 발상에 따라 독일 천문학계 6총사가 미지의 행성 발견 연맹을 발견하고 우주를 영역별로 나눠 수색하던 중이었다. 과학자들은 화성과 목성 사이에 미지의 행성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피아치 대장이 발견한 미지의 천체는 소행성으로 끝내 판명되었다. 그리고 이 소우주는 시실리섬의 수호신의 이름을 따 세레스라고 명명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화성과 목성 사이로 난 약 5억 ㎞ 폭의 우주 틈바구니에 망원경을 겨냥하고 수많은 작은 천체들을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다.
소행성은 태초에 행성이 원인 불명으로 폭발해 우주에서 부서진 행성의 조각들이다. 이들을 모두 모아 짜 맞추면 하나의 행성 모델을 만들 수 있어 천문학자들은 소행성을 태양계의 기원을 밝히는 데 좋은 천체로 주목하기도 한다. 천문학자들은 목성이 물질끼리 뭉치게 하는 속성과는 정반대로 서로 충돌하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 이곳에 소행성 무리가 널려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우리 태양계 안에는 지름 1백 ㎞ 이상 급 소행성이 약 2백개, 10㎞ 급 이상이 2천여개, 1㎞급 미만이 50만개, 1m 이하가 약 1천 억 개 가량 배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어린 왕자>에 등장한 욕심 많은 사업가가 5억 개가 넘은 별을 사재기할 수 있었나 보다.
<어린 왕자>가 해가 지는 횟수까지 정확히 들려준 소행성의 하루는 매우 짧다. 실지 소행성들의 하루는 각기 다르지만 아무리 큰 몸집일지라도 일반적으로 7시간 10분에서 10시간 45분대를 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 작은 우주의 꼬마들 몇몇은 달까지 거느리고 있다.
지금까지 부지런한 과학자들이 소행성의 공전 주기를 계산한 것만도 2천2백여 개가 넘고, 소행성 전담기관인 미국 윌슨산 천문대에 설치된 2.5m 반사망원경으로 잡은 소행성은 4만4천여개에 이른다.
지금까지 밝혀진 소행성 10걸은 피아치대장이 발견한 세레스를 비롯해, 팔라스ㆍ베스타ㆍ하기에와ㆍ데이비다ㆍ사이케ㆍ인테람니아ㆍ뱀베가ㆍ포투나ㆍ유나 따위이다.
이 소행성 10걸 역시 하나같이 울퉁불퉁 볼품없는 우주의 난쟁이들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소행성을 공포의 혜성과 함께 지구를 위협하는 '우주의 킬러'로 주목하고 여러 방법으로 제거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1억 6천 만년 동안 지구를 지배한 적이 있는 공룡을 멸종시킨 대 테러단으로 소행성을 꼽는다.
지구의 위성인 달의 경우 30만 번 이상 소행성의 테러를 당한 흔적이 표면에 그대로 보관돼 있어 우리를 더욱 불안에 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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